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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반포문

통합 검색 결과

뉴스

  • [송호근 칼럼] 한글날, 세종이 묻다

    [송호근 칼럼] 한글날, 세종이 묻다

    ... 중심에는 항상 천명으로서 도(道)가 자리를 잡았다. 도의 영역 밖에 내쳐진 인민들을 재도지(載道之文)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글과 말을 일치시킨 훈민정음이었다. 한자에 담긴 성리가 ... 운(韻)을 통해 글로 표현되는 언문일치의 세계에서 인민은 비로소 도덕적 주체로 거듭났다. '훈민정음 반포문'을 백번 읽어도 전율하는 까닭이다.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핧배 이셔도 마침내 제 뜻을 ...
  • 문 대통령 "일제 때 한글 지켜낸 독립운동가 정신 되새겨"

    대통령 "일제 때 한글 지켜낸 독립운동가 정신 되새겨"

    [앵커] 오늘(9일) 한글날에 정치부회의를 하고 있는데요. 재인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한글을 지켜낸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되새겨야한다"는 메시지를 냈습니다. 독립운동가 정신을 재조명하면서, ... 브레인, 국문학과 출신 최 반장에게 한글날의 의미 들어보겠습니다. 한글날 1446년 세종대왕 훈민정음 반포 1926년 '가갸날' 지장 1928년 '한글날'로 개칭 2006년 ...
  • [송호근 칼럼] 훈민정음의 나라

    [송호근 칼럼] 훈민정음의 나라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한글 반포 1446년, 올해로 572돌을 맞았다. 만조백관의 항변과 명(明)의 눈치를 살피느라 창제 3년 뒤 세종이 결단을 내렸다. 어린 백성이 자를 갖게 됐다. 한글 572년의 장구한 역사에서 최고의 장은 단연 두 개다. 세종의 [훈민정음] '서', 전봉준의 [무장포고]. 한양 진격을 결의한 농민군의 절박한 ...
  • 이낙연 총리 "겨레말 큰사전 남북 공동편찬 이어갈 것"

    이낙연 총리 "겨레말 큰사전 남북 공동편찬 이어갈 것"

    ... 한글날이 올해로 572돌을 맞았습니다. 국경일로 격상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서울 광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야외 경축식도 열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남북의 언어를 지키고, 또 ... 있을까요?'조선글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을 하는데, 날짜는 1월 15일입니다. 우리가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창제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글날에는 ...

조인스

| 지면서비스
  • [송호근 칼럼] 한글날, 세종이 묻다

    [송호근 칼럼] 한글날, 세종이 묻다 유료

    ... 중심에는 항상 천명으로서 도(道)가 자리를 잡았다. 도의 영역 밖에 내쳐진 인민들을 재도지(載道之文)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글과 말을 일치시킨 훈민정음이었다. 한자에 담긴 성리가 ... 운(韻)을 통해 글로 표현되는 언문일치의 세계에서 인민은 비로소 도덕적 주체로 거듭났다. '훈민정음 반포문'을 백번 읽어도 전율하는 까닭이다.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핧배 이셔도 마침내 제 뜻을 ...
  • [송호근 칼럼] 훈민정음의 나라

    [송호근 칼럼] 훈민정음의 나라 유료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한글 반포 1446년, 올해로 572돌을 맞았다. 만조백관의 항변과 명(明)의 눈치를 살피느라 창제 3년 뒤 세종이 결단을 내렸다. 어린 백성이 자를 갖게 됐다. 한글 572년의 장구한 역사에서 최고의 장은 단연 두 개다. 세종의 [훈민정음] '서', 전봉준의 [무장포고]. 한양 진격을 결의한 농민군의 절박한 ...
  • [열려라 공부] 언문 깨친 조선 백성들 '정승아, 공사 망령되게 하지 말라' 벽서도

    [열려라 공부] 언 깨친 조선 백성들 '정승아, 공사 망령되게 하지 말라' 벽서도 유료

    ...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직접 나서 백성이 쉽게 익히고 그들의 말을 적을 수 있는 자를 창제했다. 이는 백성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던 당대의 패러다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훈민정음 반포에 대해 최만리 등 위정자들은 '한자를 두고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으며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반대했다. 지배계급의 반응은 단지 새로운 글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