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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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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서비스
  • [박보균 칼럼] 시진핑의 '신 조선책략'

    [박보균 칼럼] 시진핑의 '신 조선책략' 유료

    ... 고통스러웠다(류성룡의 『징비록』). 시진핑의 강연은 19세기 말 『조선책략』을 연상시킨다. 그 책은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썼다. 러시아의 진출을 막으려는 전략서다. 그 수단은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이다. 조선은 황준헌의 권유를 실천하려 했다. 시진핑 강연은 '신 조선책략'으로 다가온다. 21세기 중국의 전략은 동북아 신질서 구축이다. ...
  •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망해버린 한국의 잃어버린 공관, 102년만에…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망해버린 한국의 잃어버린 공관, 102년만에… 유료

    ... 험악했다. 고종은 질렸다. 조선은 중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1894년 청일전쟁(청나라 패배)까지다. 고종의 외교적 감수성은 미국에 꽂혔다. 두 가지에 의존했다. 하나는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 “미국은 남의 땅을 탐하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다른 하나는 조미수호통상조약. 그 조약의 거중조정(居中調整·good offices·분쟁해결) 항목에 기대했다. 고종은 미국을 조정자로 ...
  • 공론화 없이 추진한 개화, 척사파 설득 못해 실패

    공론화 없이 추진한 개화, 척사파 설득 못해 실패 유료

    수신사 김홍집의 행차 온건개화파 김홍집은 1880년 일본에 다녀오면서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지고 와 척사파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사진가 권태균 개국군주 ... 이런 와중에 고종 17년(1880) 8월 김홍집이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도쿄 주재 청국공사관의 황준헌(黃遵憲)이 쓴 조선책략(朝鮮策略) 을 갖고 와 반포하면서 큰 소동이 일었다. 조선책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