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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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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서비스
  • [뉴스 속으로] 역사학자 이덕일의 임청각 이야기 “바로잡을 역사 너무 많다”

    [뉴스 속으로] 역사학자 이덕일의 임청각 이야기 “바로잡을 역사 너무 많다” 유료

    ... 횡도촌에 1차로 집결해 독립전쟁의 결의를 다졌다. 같은 해 4월 횡도촌에서 멀지 않은 대고산에 모여 군중대회를 열어 경학사를 결성하고 이상룡을 사장으로 추대했다. 경학사와 그 뒤를 이은 부민단은 만주 한인들의 자치정부였는데, 이상룡은 『만주기사(滿洲紀事)』에서 “정부의 규모는 자치를 명분 삼고/ 삼권 분립은 문명을 본떴네”라고 읊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세울 정부는 군주제가 ...
  • [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유료

    ...가 국사 교재였는데, 만주를 단군의 옛 강역으로 기술한 사서(史書)였다. 1911년의 큰 흉작으로 경학사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해체되고, 1912년 가을에 새로운 한인 자치 조직인 부민단(扶民團)이 신흥무관학교와 같이 합니하에 조직됐다. 이상룡은 부민단 설립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부의 규모는 자치가 명분이고, 삼권분립은 문명국을 따른 것이네(政府規模自治名, 三權分立倣文明)”라고 ...
  • [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통의부로 뭉쳤다, 그러나 청사진이 달랐다

    [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통의부로 뭉쳤다, 그러나 청사진이 달랐다 유료

    ... 러시아령에서 자유시 참변을 겪고 만주로 돌아온 독립군들은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당시 압록강 대안의 서간도(남만주) 독립운동 세력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망국 직후 집단 망명해 경학사(부민단·한족회)와 신흥무관학교를 만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세력으로 광복 후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는 공화주의자들이었다. 또 하나는 의병전쟁 끝에 만주로 망명한 유림(儒林) 계열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