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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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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강만수
(姜萬洙 / KANG MAN-SOO)
출생년도 1945년
직업 금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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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

뉴스

조인스

| 지면서비스
  • [권혁주의 시선] 북새통 기획재정부가 그립다

    [권혁주의 시선] 북새통 기획재정부가 그립다 유료

    ... 말고는, 별다른 브리핑이나 백 브리핑(배경 설명)이 없다고 한다. 2008년 말~2009년 초 금융위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억하기에 당시 기재부는 매일매일 브리핑과 백브리핑이었다. 강만수 장관, 김동수·배국환 차관을 비롯해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전 금융위원장), 육동한 경제정책국장(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최종구 국제금융국장(전 금융위원장) 등이 릴레이 하듯 나섰다. 브리핑 ...
  • [중앙시평] 홍남기, 예스맨으로 남을건가

    [중앙시평] 홍남기, 예스맨으로 남을건가 유료

    ... 강봉균·진념·전윤철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도 경제부총리만큼은 자기 사람을 고집하지 않았다. 이헌재·한덕수 같은 보수 색채의 경제관료를 중용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10년 만에 돌아온 강만수가 경제팀장을 맡아 노련하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그 바통을 '경제관료의 맏형' 윤증현이 넘겨받았다. 중량감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경제팀장은 딱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 중반부터 인력풀이 ...
  • [서소문 포럼] 한·미 통화스와프를 넘어서

    [서소문 포럼] 한·미 통화스와프를 넘어서 유료

    ... 고문은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고, 가이트너 총재는 재무부의 부차관보였다. 로즈 회장은 98년 한국 정부가 외국 금융회사와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을 할 때 역할을 했다.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던 강만수 2008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차관이었으니, 이들과는 질긴 인연이 있었던 셈이다. 이번에도 이주열 한은 총재와 연준 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도움이 됐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