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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36 Patriotic marketing returns

진행자
리암 카피 에디터 홀리 카피 에디터
KOREA JOONGANG DAILY

Patriotic marketing returns

On June 16, 1998, when the shocks of our foreign currency crisis still lingered, the Kospi closed at 280.0. The historic low is a record that has never been broken and is unlikely to ever be broken. After a series of fluctuations, a form of relief made a spectacular appearance in March 1999, when the Kospi had barely hit 500.

외환위기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1998년 6월 16일 코스피는 280.0에 거래를 마쳤다. 아직 깨지지 않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역대 최저치다. 위태로운 등락을 거듭하며 99년 3월 간신히 500선을 밟은 증시에 구원투수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It was the “Buy Korea” fund. With the slogan, “I believe in the Korean economy,” patriotic marketing started. It was called the second gold collection campaign. After 12 days, 1 trillion won ($826.4 million) was raised, and after five months, it surpassed the goal of 11 trillion won. In July 1999, when the Kospi hit 1,000, the fund showed nearly a 70 percent return. As the fund was invested in stocks, stock prices soared, and more money flowed in.

‘바이 코리아’ 펀드다. ‘한국 경제를 확신합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애국 마케팅에 불을 지폈다. ‘제2의 금모으기 운동’으로 불렸다. 발매 12일 만에 1조원의 자금이 몰리고, 5개월 만에 설정액은 11조원을 넘어섰다. 99년 7월 코스피가 1000을 돌파하며 수익률은 70%에 육박했다. 몰려드는 자금으로 주식을 쓸어담다 보니 주가가 올랐고, 돈은 더 몰려들었다.


But the craze did not last long. After the Daewoo crisis in August that year, the IT bubble burst, and the Kospi dropped to below the 500 level again. The rate of return, which was nearly 100 percent in 1999, fell to a negative 77 percent. As many people suffered losses, money started to leave the local stock market.

열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8월 대우사태 이후 IT 버블이 터지며 2000년 9월 코스피는 다시 500선 아래로 떨어졌다. 99년 100%에 달했던 수익률은 이듬해 -77%로 꼬꾸라졌다. 손실 본 사람이 속출했고, 자금 이탈이 이어졌다.


I was reminded of the Buy Korea fund from 20 years ago because of the “Victory Korea Fund,” released by an asset management company. It is a product investing in companies pursuing the localization of parts, materials and equipment. It is considering investing in companies related to the 100 core parts that the government is promoting. Half of the income from managing the fund is to be donated to related research. The head of the company said that it is a meaningful attempt to join the efforts to overcome the crisis of the trade discord with Japan.

20년 전의 ‘바이 코리아’ 펀드를 떠올린 건 한 운용사가 출시한 ‘필승 코리아’ 펀드 때문이다. 부품ㆍ소재ㆍ장비 국산화에 나서는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산화 대상 100대 핵심 부품 관련 기업 투자도 검토할 예정이다. 운용 보수의 절반은 관련 연구에 기부할 방침이다. 운용사 대표는 “(일본과의 갈등 속에) 국난 극복에 동참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밝혔다.


It is natural to invest in promising companies expecting returns in the capital market. It would be even better if it helps national interests. Nevertheless, I am uncomfortable that it looks like it could be a state-led fund. This fund came out amid rumors that the industry is making “funds to overcome Japan” at the request of the government. It may be coincidence, but I wonder if patriotic marketing should be truly private.

자본 시장에서 수익을 기대하며 될성부른 기업에 투자하는 건 자연스럽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금상첨화다. 그럼에도 불편한 구석은 ‘관제형 펀드’라는 시각 때문이다. 정부 주문에 따라 업계에서 이른바 ‘극일’ 펀드를 만든다는 소문 속에 이 펀드가 등장했다. 오비이락이겠지만, 애국 마케팅까지 정부 주도일 필요는 없을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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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소개
리암 (카피 에디터)
뉴욕 브루클린 출신. 한국 생활 2년 차. 떡볶이와 김밥을 좋아함.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카피 에디터로 근무 중. 미국에서도 라디오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에서 ‘뉴요커가 읽어주는 3분 뉴스’ 진행하게 된 걸 신나하고 있음.

홀리 (카피 에디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음. 2016년 여름 한국에 왔으며, IT 회사와 교육 관련 회사를 거쳐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카피 에디터로 일하는 중. 여가 시간엔 여행을 하고, 반려견 '콩(Kong)'이와 노는 걸 제일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