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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슬픈 공복

슬픈 공복
- 정진규(1939~ )

 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 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

 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 역마살이 오슬오슬 소름으로 돋는다

 찬 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숫대들, 휑하니 뚫린 밭고랑이 보이고 호미 한 자루 고꾸라져 있다

 누가 던져두고 떠나버린 낚싯대 하나 홀로 잠겨 있는 방죽으로 간다 허리 꺾인 갈대들 물 속 맨발이 시리다

 11월이 오고 있는 겨울 초입엔 배고픈 채로 나를 한참 견디는 슬픈 공복의 저녁이 오래 저문다

낙엽도 끝물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언제나 흐르고 있었음에도, 새삼스럽게 흐른다는 것이 육박해온다. 오슬오슬하다. 잎새들, 생장하는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강이 내다보이고, 산이 뼈를 드러낸다. 서걱이는 것들, 고꾸라진 것들, 꺾인 것들이 거기 없었던 것처럼 드러나 있다. 배부를 때는 느끼지 못하는 위장이 저 스스로를 드러내듯이 쓸쓸함이 드러난다. 이 가을 끝의 역마살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에 대한 경이보다는 습관적 삶과 사유를 뿌리부터 되돌아보게 하는 기능이 더 클 때가 있다. 이 가을의 끝물에는 어느 때보다 그런 쪽으로 우리를 기울게 한다. 해가 그의 무성한 자리를 비워간다. 가을이 그렇고, 저물 녘이 그렇다. 춥다. 이 공복을 서둘러 채우지 않고 바라보는 것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 [장철문 · 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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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