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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시, 한 손엔 광고 카피 “참 ~ 거시기하죠”

카피라이터 경력만 30년이지만 윤준호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는 “광고는 할수록 더 어렵다”고 했다. 그는 “광고주가 싫다 하고, 소비자가 꿈쩍 않고, 스스로 봐도 아닌 것 같고 등등, 스트라이크 존이 점점 좁아져 공 던질 데가 없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이름은 두 개다. 윤준호와 윤제림. 두 개의 이름보다 더 특이한 건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이력이다. 윤준호(53)는 자연인으로, 또 1983년부터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업계’에서 불리는 본명이고, 윤제림은 시인인 그의 필명이다.

 무수한 대중을 상대로 속도전을 자랑하는 광고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시, 이 두 장르를 암수 한 몸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윤준호=윤제림’이란 정체를 드러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두 얼굴의 사나이’인 그가 윤준호라는 이름이 박힌 책을 냈다. ‘광고쟁이’로 산 30년의 경험에서 짜낸 엑기스를 담은 『카피는 거시기다』(난다)다. 광고 카피에 대한 50가지 은유를 묶었다. 광고론으로 썼다고 했지만 책의 내용은 일반적인 글쓰기와 ‘생각 사냥’의 길잡이로도 손색이 없다.

 광고인 윤준호의 히트작은 국민차 티코의 카피였던 ‘작은 차 큰 기쁨’. 2003년부터 2년간 일부 신문에 실렸던 SK텔레콤의 ‘새로운 대한민국 이야기’ 캠페인 광고 100편, 2009년 전국에 ‘재춘이네 조개구이’ 열풍을 불러왔던 SK의 ‘당신이 행복입니다’ 시리즈 등도 화제가 됐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새로운 대한민국 이야기’ 광고에는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는 시인과 카피라이터를 다 할 수 있었던 건 시와 카피가 대척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시와 의미를 추구하는 문장인 카피가 너무 달랐기에 섞이지 않고 각각의 영역을 지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93년 독립해 차린 사무실에 두 개의 책상을 놓고, 시인과 카피라이터의 일을 할 때 각각의 책상에 앉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말의 처형자’라는 점에서는 시인과 카피라이터가 모두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는 카피를 만드는 건 가위를 들고 10개 중 9개를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9개를 버리고 남은 1개는, 없앤 나머지를 끌어낼 수 있는 손잡이나 스위치 같아야 해요. 고구마 줄기를 끌어 당기면 줄줄이 딸려 나오듯 남은 한 개를 잡아 당기면 나머지가 다 끌려 나오게 하는 거죠.”

 문제는 그런 손잡이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는 데 있다. “카피든 아이디어든 다 똑같아요. 문제를 쉽게 만들면 돼요. 가장 중요한 것만 생각하는 거죠. 문제가 간단해지면 답도 간단해져요. 생각의 벼랑까지 몰고 가면 가슴을 때리는 카피나 아이디어가 찾아지거든요.”

 책의 제목으로 앉힌 ‘거시기’란 표현도 그렇게 포착한 걸까.

“소설가 손홍규 이야기에서 가져온 거에요. 대화의 반을 ‘거시기’ 한 단어로 처리하는 데, 거시기는 세상의 모든 어휘를 ‘종합 대행’하는 말이에요. 거시기의 가장 큰 힘은 흡인력이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뜻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광고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심끌기다. 그렇게 보면 거시기의 효과는 분명한 셈이다. 광고가 흡인력이 있어야 하는 건, 소비자가 꼭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과 같아서다. “딴짓하고 집중 안 하는 학생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라고 하는 게 낫죠. 광고가 딱 그런 거에요. 이것만 기억하라는 거죠.”

 윤씨가 내세우는 광고의 알파와 오메가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시작(詩作)의 밑바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알아내려는 사람에게 세상은 뼈대를 드러내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의 아이디어 원천은 걷기다. 평소 걷고 또 걷는다.

“걷는 건 책 읽기와 똑같아요. 걸으며 관찰하는 건 백과사전을 보는 거랑 똑같죠. 책방과 신문도 세상을 읽는 또 다른 방법이에요. 서점과 신문은 지구 위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세상의 미니어처죠. 그걸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둘러보는 것과 똑같은 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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