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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직업윤리

대입 공부를 독려하며 “그렇게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험하고 힘든 일만 하게 된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교사나 학원강사가 적지 않다.

부모뿐 아니라 교과서조차 전문직·관리직 등의 직업만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사회가 육체노동자들을 폄하하는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학 교육도 그렇다. 적지 않은 교수들이 사회나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을 하기보다는 정치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관심을 둔다. 정작 취직하면 기업이 처음부터 다시 재교육해야 하는 게 거의 관행이다. 실제 학교교육에서 성실한 직업인을 키우려는 의지와 실행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백수로 살면 살았지 힘든 일은 자존심 상해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랐을 터인데.

사지 육신이 멀쩡한데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중립적 가치관으로 환자를 대한다는 원칙이 흔들릴 때도 있다. 부모의 돈으로 분석을 받는 이른바 백수 환자들은 아무래도 온전한 심리분석이 힘들다. 돈을 주는 사람이 언제든 치료에 관여할 가능성도 높다. 조부모 유산으로 편히(?) 사는 부모에게, 나나 당신이나 다를 게 뭐냐고 ‘떳떳하게’ 따지는 자식들도 적지 않다.

늙은 부모가 청소나 식당 일같이 고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자격증이다, 해외연수다, 고시다 하면서 실상 게임이나 채팅만 하는 고학력 백수도 많다. 아직 한참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내 학력, 내 체면에…” 하면서 어린 자녀의 등골을 빼먹는 백수 부모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한국이라 앞으로는 저학력보다 고학력 실업자가 대세일 것이다. 부실한 사회보장제도와 높은 실업률 속에서 가족·친지들이 고학력 백수들을 지금까지 먹여 살려 왔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어떤 이들은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 이상의 ‘날개’, 손창섭의 ‘미해결의 장’이나 ‘신의 희작’ 등에 등장하는 이른바 백수 지식인 계층은 사농공상의 위계질서를 믿는 유교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열심히 돈 버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윤리라는 막스 베버 등 서구 중심으로 공부한 탓일까. 그러나 본시 유교가 무기력한 선비를 이상화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라 우 임금은 치수, 토지 경작, 조림에 바빠 피부가 다 터지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한다.

공자도 논어의 술이(述而)편에서 ‘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채찍을 든 마부처럼 비천한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雖執鞭之士)’고 했다. 예절(禮)과 글(書)뿐 아니라 악기(樂)와 화살을 다루고(射), 사람과 짐승을 기르고(御), 셈을 배워 장사 건축 측량에 종사하는(數) 육예(六藝)를 다 익혀야 군자다. 조선 말기 유교가 타락해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사회적 격변 속에 무임승차한 벼락부자들이 늘어나면서 놀고먹는 기생 계층의 삶이 어느덧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뿐이다.

출산율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잘못된 직업윤리를 바로잡는 것이 더 급선무가 아닌가 싶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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