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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쳤죠”

가정 형편 때문에 태극마크를 스스로 반납하고 프로로 전향, 2년 만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양제윤. 그는 “내년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도전해 박세리언니와 함께 경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김상민(프리랜서 기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2009년 12월. 열일곱 살 소녀는 밤새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어린 나이에 골프 국가대표를 스스로 반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반납이 아니었다. 그 이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되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더 아쉽고 먹먹했다. 그를 달래준 것은 뜨거운 눈물뿐이었다. 그리고 2010년 6월 프로가 된 그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요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프로골퍼 양제윤(20·LIG손해보험)의 이야기다. 지난 17일 싱가포르 라구나 골프장에서 끝난 KL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ADT캡스 챔피언십. 그는 이 대회에서 시즌 2승째를 거두면서 올해의 선수상에 해당하는 ‘대상(MVP)’을 수상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시즌 상금랭킹 4위로 4억639만원을 벌었다. 지난해 7360만원으로 랭킹 44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5.5배나 더 많은 액수다. 그는 최근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바쁜 스케줄로 몸은 천근만근인데도 입가에 걸린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가세 기울어 국가대표 반납하고 프로로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참 많이 울었어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녀골프가 개인전·단체전을 휩쓰는 모습을 볼 때는 더 가슴이 아팠죠.” 양제윤은 23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했던 사연과 올해까지 우승을 하지 못하면 투어프로의 선수생활을 접으려고 했던 고민들을 털어놨다.

양제윤은 먼저 “친하게 지내던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건 모습을 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나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 프로의 길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KLPGA 투어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는 꼬박 2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양제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2001년 박세리(35·KDB금융그룹)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골프를 하게 해달라”고 부모를 졸랐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박)세리 언니를 보고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심을 하게 됐죠.”

골프에 문외한이었던 부모는 딸이 취미 삼아 골프를 하려니 싶어 허락했다. 낯가림이 있는 데다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양제윤에게 골프는 친구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코스에 나가 잔디를 밟는 게 좋았고 공이 홀에 떨어지는 느낌도 너무 좋았어요. 부모님은 시합 때 보기를 하거나 컷 탈락을 해도 늘 ‘수고했다, 잘했다’며 부담을 주지 않았죠. 그래서 지금까지 질리지 않고 더 재미있게 골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6년 중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으로 발탁된 그는 대전체고 1학년 때인 2008년 국가대표 상비군, 2009년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두루 밟으며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찾아왔다.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갈림길에 놓이게 됐어요. 아마추어로서 최고의 명예인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느냐, 아니면 프로로 전향하느냐의 문제였죠. 결국 태극마크를 반납하기로 했어요. 대표 선발 포인트는 충족시킨 상태였지만 스스로 대표 자격을 반납하면서 속상해서 많이 울었죠. 그런 상황을 빨리 떨쳐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프로로 데뷔해 부진이 계속됐죠.”

그는 2010년 봄 KLPGA 투어 세미프로에 합격해 준회원 자격을 얻은 뒤 2부인 드림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 그해 6월 정회원 자격을 얻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실력 있는 국가대표 출신답게 일사천리로 정규 투어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시련에 빠졌던 그를 일으켜 세운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자신의 각성과 주위 격려가 큰 힘이 됐다. 그해 11월 열린 정규 투어 시드전에서는 23위에 올라 2011년 KLPGA 투어에 나갈 수 있는 카드를 손에 쥐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길만 놓여 있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성적을 내지 못했다. 양제윤은 2011년 총 17개 대회에 출전해서 3위 한 차례를 포함해서 겨우 톱 10에 세 차례 들었다. 집안 형편도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였다. “대회 경비가 부족할 정도였어요. 이제 골프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작년부터 2012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골프를 쳤어요. 정말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경기에 나섰어요.” 그의 목소리에서 울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한번만 우승하게 해주세요.”

박세리 선배와 경기하며 마음 다잡아
키 1m70㎝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균 270야드에 육박하는 시원스러운 장타가 특기인 양제윤. 그런 그에게 지난 8월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같은 달 19일 강원도 홍천 힐드로사이 골프장(파72)에서 열린 KLPGA 투어 마스터피스에서 합계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해 공동 2위(6언더파) 정하늘과 김다나를 2타 차로 제치고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이 1억2000만원이나 됐다. 그리고 다시 3개월 뒤 시즌 마지막 대회 ADT캡스 챔피언십에서는 합계 10언더파 206타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주인공이 됐다. 3타 차의 역전승을 거두면서 시즌 2승에 우승상금 8000만원, 그리고 올해의 선수상까지 그의 몫이 됐다.

“지난 10월 하나외환 챔피언십 2라운드 때 박세리 선배와 동반 플레이를 했어요. 제가 10살 때 꿈꿨던 그 대선배와의 라운드는 저에게 또 다른 희망이자 에너지로 다가왔죠.” 그는 “그때 다시 한번 ‘이대로 사라지는 선수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올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됐다”고 웃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인색했다. 올해 스스로에게 ‘60점’을 주겠다고 했다. 우승은 했지만 대회의 경기 내용은 그렇게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더 노력해야 해요. 그동안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이해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소속사와 매니지먼트사 등 주위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하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분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감사할 따름이죠.”

양제윤은 자신의 드라이브 샷은 장점이지만 어프로치 샷이나 퍼트가 약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앞으로 일본이나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쇼트게임을 보완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는 “이르면 내년에 LPGA 투어 Q(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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