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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극복의 불편한 진실 네 가지


외환위기를 맞은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큰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우뚝 일어서 세계가 주목하는 반열에 올라섰다. 바닥났던 외환보유액이 3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대기업 경쟁력도 15년 전에 비해 엄청 강해졌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제라는 나무에서 많은 과실을 따 먹은 셈이다. 그런데 그 과실은 우리가 관리한 종자를 심어서 우리 힘으로 키운 나무에서 따 먹은 과실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회복과 성장 과정을 반추하면서 우리가 따 먹은 과실이 어떤 것이었나 살펴보자.

외환위기 극복 15년史의 명암
첫째, 외환위기에 따른 환율 급등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하의 기업 구조조정이다. 우리나라는 달러당 800원대이던 환율이 외환위기 후 한때 190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수출이 급증했다. 1996년 경상수지는 230억 달러 적자였는데 2년 만인 98년에는 430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환율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과 대내적 긴축에 따른 고통은 가계가 떠안았다. 경제 ‘신탁통치’와 기업 강제 구조조정으로 살아남은 곳들은 체질이 크게 개선됐다. 가령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으로 현대자동차는 국내 독점적 위치를 강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경쟁력과 시장을 키웠다. 거기에 환율까지 뛰면서 수출에 탄력을 부여했다.

둘째, 막대한 정부지출과 주식·부동산 자산의 해외매각이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35%에 달하는 160조원을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 구축 자금으로 쏟아 부었다. 또한 5%로 제한돼 있던 종목별 외국인 주식 비중을 풀고 정부 보유 기업 지분을 팔았다. 이로 인해 한때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이 40%를 넘었다. 좀 낮아진 지금도 30%를 웃돈다. 주식시장에서 매년 4조~5조원의 배당금을 외국인에게 지불하는 까닭이다. 정부 공적자금은 미래에 서서히 지출할 것들을 앞당겨 쓴 것이다. 우리는 기업 지분뿐만 아니라 부동산도 팔았다. 그것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설 때 싼 값에 팔았다. 외환위기 이후에 여기저기 돈이 많아졌지만 미래의 소득을 앞당겨 쓴 덕분이다. 마치 돈이 부족한 농부가 땅 팔아 현금을 좀 만지면서 살림이 나아진 듯한 느낌을 갖는 것과 흡사하다.

셋째, 우리나라 인구 구성에서 소득이 많고 생산성이 높은 40, 50대 층이 급증하게 되었다. 97년에 800만 명이던 40~54세 인구가 8년 후인 2005년에는 1100만 명으로 300만 명이나 증가했다. 2010년에는 1220만 명으로 97년 대비 53%(420만 명)가 증가했다. 이처럼 소득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연령층이 증가하면서 소비가 증가했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도 상승했다. 이러한 인구 구성과 자산 환경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회생과 성장을 떠받쳐 준 요인이다. 문제는 40, 50대 연령층의 소득 증가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빨랐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는 외환위기 전후 200조원 이하였다가 900조원을 넘어 100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가처분소득에서 가계부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외환위기 이후 80%에서 지난해 160%로 두 배가 됐다. 부채 증가는 소비를 늘리고 자산가격 상승을 통해 반복 확대되는 과정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과실은 대외적 환경 요인이다. 세계 경제가 90년대 말 한국·태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등 신흥국의 성장은 우리나라에 몹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철강·조선 등 사양산업이 아닌가 치부되던 굴뚝산업이 중국의 고도성장 혜택을 많이 봤다. 중국 산업 경쟁력이 아직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 중국의 경제성장 혜택이 우리 기업에 많이 떨어진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외환위기 이후의 우호적 성장 동인들이 이제 반대로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15년 동안 400만 명 증가하던 40~54세 인구가 은퇴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부채 급증의 후유증은 오래 간다. 가계부채 문제는 이제 서곡일 뿐이다. 오랜 기간 우리 삶과 한국경제에 주름살을 지울 것이다.

신흥국과 한 배 탈 글로벌 기업 키워야
순풍 엔고 흐름 속에서 원-엔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전 700원대에서 금융위기 이후 1500원대까지 뛰면서 우리 기업들의 대일 무역 경쟁력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최근 엔화 약세를 만드는 것을 자국 경제의 거의 유일한 비상구로 삼은 듯하다. 구미는 양적 완화를 통해 달러와 유로를 쏟아 부으면서 신흥시장의 환율이라는 성(城)을 공격해 신흥국가 환율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원-엔 환율은 1300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세계경제는 부채 해소, 즉 디레버리지(de-leverage)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중국의 성장도 이제 우리의 손쉬운 먹잇감이 아니라 현명하게 덤벼야 할 까다로운 기회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늘어나던 시절과 5000달러에서 향후 1만 달러로 늘어날 시절은 우리 기업에 사뭇 다른 환경으로 다가올 것이다.

요컨대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나라는 혹심한 구조조정과 세계경제 성장의 덕분에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대부분 우리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보기 힘들다. 돌이켜 보면 구조조정은 IMF의 외치(外治)였으며 세계경제 성장은 외생적 행운이었다. 또한 정부지출 증가, 보유자산 매각, 높은 환율, 그리고 유리한 인구구조 등으로 따기 쉬운 과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환경이 급변했다. 우리의 살 길은 내수와 서비스 산업이라는 진단도 그 실체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외로 향하던 우리의 ‘기업가적 야성(animal spirit)’을 약화시킬 수 있다. 강한 글로벌 기업을 꾸준히 만들어 내야 한다. 개념적 처방의 우를 범하지 말자. 쉬운 길은 없다. 혁신과 창조적 파괴야말로 우리나라 경제의 또 다른 15년 순항을 여는 길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곱씹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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