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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오죽 불편했으면… 루쉰 “나라 망해먹을 글자”

2009년 중국 공산당이 700억 여원을 들여 건립한 안양(安陽) 문자박물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휘호를 썼다.
중국의 8대 고도 중 여섯 번째인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을 하루 종일 쏘다녔다. 서울을 떠나온 이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면도도 했다. 거리의 이발사는 가죽에 날을 벼린 칼 대신 거품비누도 바르지 않은 채 바리캉을 들이대서 반사적으로 일어날 뻔했다. 다 밀어버리지는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수염은 자라기 시작할 때 지저분해 보인다. 수염을 좀 놔두면 앞으로 여행 끝까지 안 다듬어도 될 것이다. 근데 나중에 거울을 보니 턱수염보다 코밑 수염이 길다. 코믹하긴 하지만 방진(防塵) 효과는 있을 것 같다.

1 3300여 년 전 갑골에 새겨진 한자. 점을 치거나 제사를 기록하기 위해 한자가 생겨났음을 보여준다. 2 안양의 샤오툰춘(小屯村) 은허(殷墟)엔 순장자의 백골을 그대로 전시해 놓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문자박물관에 마침내 도착했다. 입장권을 사전 신청해야 한다는 여관 직원들 얘기에 밤새 불안했지만 여권이 있는 외국인에게는 바로 입장권을 준다. 문자박물관 정문에는 글자 자(字)를 형상화한 높이 18.8m의 자방(字坊)이 세워져 있다. 지붕 밑에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이다. 아이를 낳으면 사당으로 데려가 이름(字)을 받는 데서 이 글자는 유래했다. 행운의 황금열쇠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 이 열쇠로 한자의 비밀을 풀어볼까?
그 여정을 함께할 해설사를 신청했다. 흰 블라우스에 빨간 유니폼을 입은 해설사 친잉(秦穎)은 사범대 출신으로 자세가 반듯했다. 다만 4층으로 된 방대한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곳만 짚어주는데 약간 서두르는 기색이다. 100위안(약 1만8000원)에 한 시간 이상 할애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여유 있게 보기 위해 혼자 다시 돌았다.

갈아서 약으로 쓰려다 발견한 갑골문
중국에선 하늘을 나는 건 비행기, 땅에 서 있는 건 의자 빼고 다 먹는다는 말이 있다. 안양에서 갑골문자가 발견된 것도 일단 식용으로 놓고 보는 관습 덕분이었다. 최장 70만 년 전에 살았던 베이징원인(原人)의 발견도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나오는 고생물의 뼈가 ‘용골’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팔리는 게 단서가 됐다. 갑골도 ‘용골’로 팔리고 있었다. 용골은 갈아서 탕약에 타먹었는데 만병통치약인가 보다. 약으로 쓰려다 용골에서 갑골문자를 발견한 왕의영(王懿榮)은 학질에 걸렸다. 그런데 용골을 지혈제로 썼다는 설도 있다. 국자감(國子監) 교장 격인 제주(祭酒)이자 고문을 잘 아는 금석학자인 왕의영이 아플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商)의 역사를 갈아 마셨는지 모른다. 그때가 1899년이다. 갑골문자의 발견은 19세기가 20세기로 넘어가기 전 인류에 준 최대의 선물이었다고 한자학의 권위자 시라카와 시즈카는 말했다.

갑골은 생각보다 작았다. 책 크기였고 구석에 새겨진 글자는 손톱 크기밖에 안 돼 왕의영이 눈여겨본 게 신기할 정도다. 갑이 거북이등인지 알았는데 한결 부드러운 배 껍데기다. 균열을 내고 글자를 새기기도 용이했다고 한다. 친잉은 “당시 허난 일대는 아열대 기후여서 거북이가 살았다”고 말했다. 자동차 번호판에서 보이는 허난성의 간칭(簡稱) ‘예(豫)’도 코끼리를 뜻한다. 갑골문에는 ‘코끼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아닌가’를 묻는 점복이 있다. 거북이·코끼리·호랑이·소·사슴…. 이때의 허난은 동물의 왕국이기도 했다.

거리의 이발사 영감은 수염을 깎아달라고 하자 머리 깎는 바리캉을 들이밀었다.
갑골문의 발견으로 상나라는 신화에서 역사로 내려왔고 주나라(기원전 1046년 건국)에 걸려 있던 중국 역사는 기원전 1600년까지 치고 올라갔다. 한자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도 풀렸다. 그 전까지는 동한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주류적 해석이었지만 그는 갑골문자를 못 보고 추론한 것이었다. 예컨대 왕(王) 자의 경우 천지인(天地人)을 각각 상징하는 가로의 세 획에 세로의 획이 관통, 천지인을 연결하는 존재로서의 왕을 뜻한다고 그는 풀이했지만 실제 와서 보니 딴판이다. 갑골에 새겨진 왕은 밑변이 부채꼴로 넓고 위는 좁은 도끼의 날처럼 생겼다. 도끼는 왕의 재판권, 곧 왕권을 상징한 도구였다. 허신보다 1900여 년 뒤에 태어난 내가 원형에 가까운 한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갑골에는 점복이 주로 적혀 있는데 정반의문문 형식이다. ‘오늘 비가 올 것인가 아닌가’ ‘다음 열흘간 이변이 있겠는가 없겠는가’ ‘올해 풍년이 들겠는가 들지 않겠는가’. 그리고 긍정문과 부정문 아래 각각 홈을 파고 달군 꼬챙이로 지져서 균열을 냈다. 균열을 보고 해석하는 이는 다름 아닌 왕이었다. 왕의 권위는 신의 뜻을 읽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점을 친 뒤에는 결과를 기록해 놓아 나중에 주역의 기초 데이터가 됐다고 하는데 만약 예측이 틀려도 기재해 놓았을까? 친잉은 답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문자가 생겨났다. 베이징원인의 구강 구조를 보면 이미 말을 한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인류는 몇십만 년 동안 말만 하고 살아 답답했다는 증거(?)는 없다. 문자가 생긴 건 몇천 년도 안 된다. 그것도 갑골문에서 보듯 의사소통을 하거나 공부하기 위해 만든 건 더욱 더 아니다. 신과 대화하기 위해 쓰다가 왕의 명령을 하달하는 용도로 사용되는데 써보니 꽤 쓸 만하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요긴하고 심지어 의사소통도 된다. 계산기로 발명된 컴퓨터가 전방위로 쓰이고 있는 것과 같다. 친잉은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일은 춘추시대부터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자는 가리키는 사물과 일대일 대응관계를 이루면서 글자 수를 늘려나가다 시간이 지나니까 별개의 상징체계로 독립한다. 어떻게 보면 화폐랑 비슷하다. 교환의 용이성 때문에 생겨난 화폐는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가 추구의 대상이 되고 자본으로 집적되면 물건과의 교환관계를 초월, 독립된 실체로 움직이면서 현실에 거꾸로 영향을 준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중국 연인들, 우산 선물 안 하는 까닭은…
한자도 그렇다. 자음과 모음으로 분절되지 않고 한 글자가 하나의 뜻을 이루는 고립어여서 통달하겠다고 하면 5만 자를 외워야 한다. 그런 불편함 때문에 외려 한자는 발음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같은 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진시황이 문자를 소전체(小篆體)로 통일한 이후 왕조는 자주 교체됐지만 한자는 그대로였다. 그러자 문자가 현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현실이 문자의 눈치를 보는 관계로 전도된다.

중국에서는 우산을 선물하지 않는다. 우산의 산(傘)은 헤어진다는 뜻의 산(散)과 발음이 같다. ‘산’이라고 말하면 실제 헤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연인 사이에는 과일을 먹더라도 배는 피한다. ‘배를 자른다’의 리카이(梨開)와 ‘헤어진다’의 리카이(離開)의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나이 든 분에게 괘종시계(鐘)를 선물하는 것도 금기다. 마칠 종(終)과 발음이 같아 ‘어서 돌아가시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글자는 주술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 때문에 복(福)자를 거꾸로 붙여놓는 것도 거꾸로 도(倒)와 온다는 뜻의 도(到)의 발음이 같아 복이 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설날이 되면 고궁의 정원 바닥에 있는 다섯 마리의 박쥐 문양을 밟는다. 박쥐라는 뜻의 비엔푸(<8759><8760>)가 두루 복을 밟는다(遍福)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다섯 마리는 오복(五福)을 뜻한다. 신부의 치마에 대추와 밤을 던지는 것도 대추(棗)와 일찍(早)의 발음이 ‘자오’로 같고 밤의 ‘리(栗)’와 서다라는 뜻의 ‘리(立)’의 발음이 같아 신부의 배 속에 일찍 아들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글자는 표기의 수단에서 토템이 된다. 여전히 신과 소통하는 매개다.

신성불가침의 한자에도 위기가 있었다. 마오쩌둥은 불편한 한자를 라틴글자로 대체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마오쩌둥이 존경한 루쉰(魯迅)도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문자박물관에서는 이런 사실이 당연히 누락돼 있다. 1950년대 문자개혁위원회에서 2000여 건의 새로운 문자체계 제안을 접수했다는 점도 찾아볼 수 없다. 한글도 그 제안 중 하나였다. 그 사이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스탈린이 “고유글자를 왜 바꾸느냐”고 해서 한자가 살아남았다는 일화가 있다. 대신 간체자와 발음을 표시하는 병음 체계가 도입되는 선에서 한자개혁은 마무리됐고 2000년대 들어 한자의 성소(聖所·문자박물관)까지 생겨났다. 한자의 질긴 생명력을 보면 정말 주술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자가 중국의 종교 아니냐고 묻자 친잉은 “중국인의 정체성(整體性)”이라고 힘줘 말했다.

문자박물관에 이어 갑골이 출토된 샤오툰춘(小屯村)의 은허(殷墟)에 들렀다. 은허는 왕들의 능묘다. 봉분을 쌓지 않고 지하에 묘를 팠다. 어두운 실내에 순장한 사람들과 말의 백골들이 마차와 함께 그대로 놓여 있다. 너무 생생해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잔인함과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다. 유리막 속에 널 부러진 유골들이 불쑥 나타난다. 그런데 능묘 위 풀밭에서는 살아 있는 사슴 세 마리가 노닌다.

이 능묘를 파헤쳐 한자의 신비는 밝혀졌지만 한자의 주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과 대화할 수 있었던 왕들이 살아나 갑골에 점을 치면 어떻게 나올까? “3300여 년을 살아남은 한자는 또 다른 3000년을 살 것인가, 아닌가?”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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