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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 칼럼] 한 갑 2500원 ‘담배 포퓰리즘’

“금연처럼 쉬운 게 어딨나.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담배를 끊는다.”

평생 애연가였던 마크 트웨인의 익살스러운 입담이다. 좋은 작품을 짜내야 하는 문인·예술가 중에 담배 애호가가 많다. 소설은교의 작가 박범신은 담배의 위로·치유 기능을 강조한 에세이에서 이런 상상을 펼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최후를 맞기 직전, 담배라도 한 대 피워 물었다면 혹시 운명을 돌리진 않았을까.’ 외제 담배가 판금이던 시절 말 탄 멋진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말버러 담배 광고는 끽연자들의 로망이었다.

한때 멋으로 통하던 담배의 설 땅은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 해롭긴 하지만 합법적인 제품인데 담배 소비자에 대한 우리 사회와 당국의 태도는 융단 폭격 수준이다. 큰 도시마다 경쟁하듯 길거리 금연구역을 그물처럼 넓혀가고 있다. 피우다 걸리면 과태료다. 웬만한 대로변과 공원을 중심으로 서울 면적의 5분의 1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될 전망이다. 모든 음식점 금연도 추진된다. “폭거다” “죄인이냐”는 항변과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구미 선진국도 오래 전부터 흡연율을 낮추려는 물리적 강박 정책을 펼쳐왔지만 여러 해에 걸쳐 적응 기간을 둬 가며 서서히 조였다.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지 일거에 흡연자를 잡으려는 우리의 금연 드라이브 정책과 다르다. 추운 날씨에 시내 빌딩 모퉁이에 삼삼오오 모여 연기를 뿜어대는 ‘공초(恭草)’들의 모습이 점점 초라해 보인다. 기업은 또 어떤가. 채용·승진 때 불이익을 주는 곳이 늘고, 금연서약서를 받아 들고 소변·혈액 검사까지 하는 지독한 기업도 있다. 혐연권처럼 엄연히 흡연권도 있는데….

“금연처럼 쉬운 게 어딨나”라는 트웨인의 말과 정반대로 담배를 끊는 것만큼 힘든 일도 흔치 않다. 20년 넘게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우다 몇 해 전 끊은 필자 역시 그 고통을 잘 안다. 그토록 힘겨운 금연을 정부와 직장이 앞장서 도와준다니 고마운 구석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과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언짢다. 특히 민간기업의 과도한 금연운동은 그 선의와 별개로 헌법상 행복추구권의 제약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다시금 담배 값을 생각하게 된다. 싸니까 흡연율이 40%를 넘어서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치곤 너무 싸다. 국산 담배의 경우 2004년 한 갑에 500원 인상한 것을 마지막으로 2500원 제자리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회원국 중 가장 싼 축이다. 영국·아일랜드는 한 갑에 1만원을 훌쩍 넘었고 웬만한 유럽 국가도 8000원 안팎이다.

담배 값 인상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국회와 물가당국은 ‘서민 부담’ ‘물가불안’ 등을 이유로 반대해 왔다. 담배는 중독성이 큰 제품이라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작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BAT 등 외국 담배회사들이 제품 값을 100~200원 올린 뒤 판매가 적잖이 줄어든 걸 보면 요즘 같은 불경기엔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생필품 가격을 올리자는 주장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서민 담배 값 부담과, 담배를 줄창 피워대다 나중에 안게 될 의료비 부담을 견줘 보자.

담배 값을 분식점 라면 한 그릇 값보다 싸게 해 놓고 한쪽에선 담배 소비자를 무슨 전염병 환자나 비정상인처럼 백안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담배 값이 동결된 8년간 물가상승률 정도라도 담배 값을 꾸준히 올렸다면 4000원 언저리는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연정책은 흡연자 눈치, 비흡연자 눈치 모두 보는 전방위적 인기영합주의,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기분 좋은 금연을 유도하려면 대개의 선진국이 그러하듯, 또 이달 중순 서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국제총회에서 제안했듯 담배 값 인상밖에 길이 없어 보인다. 경제학에서도 가격을 통한 규제효과를 가장 윗길로 친다. 트웨인의 조크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담배 끊을 생각’을 하게 만들려면 면박을 주기보다 담배 값을 손대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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