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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지도 ‘커넥텀’ 완성 땐 자폐증 원인도 밝힐 수 있죠”

“우리는 유전자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승현준 교수. ‘커넥텀은 정신을 좌우하는 뇌구조를 보여주는데 유전과 경험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조용철 기자
우리는 영생을 꿈꾼다. 현대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10만 달러(약 1억원)를 내고 미국 애리조나주 냉동창고에 죽기 직전의 몸을 저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 의료기술로 다시 깨어난 나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는 나일까? 정신과 영혼까지 온전히 부활할 수 있다면 영원한 삶도 꿈꿔볼 수 있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뇌 안의 모든 것을 담은 지도, 커넥텀(Connectome)에 있다.

1 ‘아이와이어(Eyewire)’ 사이트의 초기화면. 회원 가입 뒤 게임에 참여하면 망막 커넥텀 연구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다. 2 쥐의 망막 커넥텀을 3차원 컬러링으로 구현한 이미지.
커넥텀이란 뇌신경세포인 뉴런의 연결지도다. 뇌과학자들은 한 세기 전부터 뉴런의 연결망에 기억이 저장돼 있다는 가설을 세웠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이런 연결망을 지도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기억과 지각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시도인 커넥터믹스가 부상되고 있다. 뇌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커넥텀이 규명될 경우 두뇌 향상과 정신질환에 관한 인류의 궁금증이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커넥터믹스가 요즘 뇌과학의 가장 ‘핫(hot)한’ 분야가 된 이유다.

이 커넥터믹스의 최전선에 재미과학자 승현준(45·영문 이름 Sebastian Seung) MIT대 교수가 있다. 승 교수는 현재 뇌인지과학과 교수이자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의 연구원이다. 2000년 뇌 활동을 모방한 신경망 컴퓨터 프로그램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후 커넥터믹스의 성과를 앞당길 획기적인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2010 TED 콘퍼런스에서 “나는 나의 커넥텀(I am my connectome)”이라는 인상적인 연설로 조회수 45만 회를 넘어 대중적으로도 알려졌다.

이론물리학자에서 신경과학자로 변신
한국뇌학회 회장을 지낸 이춘길 서울대 교수는 “승 교수는 뇌 정보처리 용량과 알고리즘에 관한 이론적 업적으로 높이 평가받아 왔다”며 “최근에는 2차원 전자현미경 영상으로만 볼 수 있던 뉴런 간 연결을 인공지능을 이용한 3차원 영상으로 만들어 뉴런 간 연결 패턴의 실체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섰다”고 평했다. 승 교수는 이달 초 뇌과학학회 강연차 서울을 방문했다.

승 교수는 저명한 재미 철학자이자 텍사스대 석좌교수인 승계호 박사의 장남으로, 뉴욕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인으로 살아 왔다. 주변에 한국인이 거의 없어 국적에 관한 고민은 없었지만, 13세에 처음 방한했을 때 의사소통을 못해 창피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래선지 조금씩 익힌 한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부친에게서 배운 ‘모든 것에 질문하라’는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과학자의 길을 택한 그는 과학의 길에서도 계속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왔다.

“과학에는 세 가지 큰 질문이 있어요. 첫째는 물질이 어디서 오느냐, 둘째는 살아 있는 물질과 그렇지 않은 물질의 차이는 뭐냐, 셋째는 똑똑한 물질과 그렇지 못한 물질의 차이는 뭐냐는 것이죠.” 첫째 질문의 답을 찾아 그는 하버드대에서 이론물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셋째 질문에 이르자 신경과학이 궁금해졌다. 같은 관심을 공유한 이론물리학자들을 찾아 예루살렘 히브루대까지 찾아가 신경망 시뮬레이션 연구를 시작했다. 물리학 박사학위까지 땄는데 물리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하버드대 지도교수와 동료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뇌에 관해선 전혀 몰랐지만 새로운 질문에 도전하는 기대감에 뒤돌아보지 않았죠. 모든 이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라도 가끔은 자신을 믿는 게 맞는 길인 것 같아요.”

승 교수는 루슨트테크놀로지와 벨 연구소를 거쳐 1998년부터 MIT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공지능 분야를 선도하는 입장이 됐다. 신경과학에 수학·물리학 이론을 도입해 뇌 활동을 모방한 전자회로 장치로 ‘생각하는 컴퓨터’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인 시뮬레이션으로는 실제 뇌에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닥쳤다. “뇌과학에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뉴런의 네트워크로 보는 오랜 전통이 있어요. 하지만 시뮬레이션이 진짜 뇌와 일치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과학이란 큰 틀 안에서 길을 잃은 듯한 좌절감이 컸습니다.”

셋째 질문에 답을 못 구해 방황할 즈음, 과학계에 새로운 흐름이 형성됐다. 2001년 게놈 지도가 규명되면서 뉴런 간의 연결성을 지도로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돼 2005년 ‘커넥텀’의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그는 즉각 뇌 구조 분석에 뛰어들었다. “2005년에 전자현미경의 첨단 기술을 활용해 진짜 뇌의 이미지들을 봤죠. 모든 뉴런과 시냅스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사로잡혔어요. 엄연한 사실이 때론 소설보다 흥미롭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뇌 네트워크를 연구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똑똑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보다 인간의 뇌 자체를 향상시키려는 커넥터믹스의 목표가 더 가치 있게 느껴졌고요.”

커넥텀은 마치 항공지도와 같다. 지도에 여러 도시를 잇는 운항노선이 있듯이 도시 대신 뉴런을, 노선 대신 커넥션을 상상하면 된다. 1000억 개의 도시에 각각 1만 개의 노선이 있다고 상상하는 게 뇌 지도다. 승 교수는 “인간의 의식은 강바닥을 지나가는 물과 같다”며 “의식은 순간적으로 흐르는 전기적 신호, 커넥텀은 강바닥의 구조 자체다. 강바닥이 없으면 물이 흘러갈 수 없는 것처럼 커넥텀이 있어야 의식도 지나간다”고 설명한다. ‘기쁘다, 슬프다’같이 쉽게 변하는 의식이 있다면 담배를 쉽게 못 끊게 하는 것은 무의식에 속한다. 이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무의식의 구조 자체가 커넥텀이라는 의미다.

현재 커넥텀 연구는 MRI(자기공명영상)와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두 방향에서 연구되고 있다. MRI는 살아있는 뇌의 영상을 자유롭게 얻을 수 있지만 거시적 수준의 영역 관찰인 반면, 승 교수의 연구는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 단위 뇌구조를 컴퓨터 비전 기술로 촬영해 자동적인 데이터 분석으로 신경망 지도를 그리는 미시적인 접근 방식이다.

‘아이와이어’ 프로젝트로 개방형 연구
MRI 연구자들은 미시적 분석의 유용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현미경 연구를 비판하지만, 승 교수는 분석 과정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들이 과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억의 정보에 관한 역사적 이론을 정확히 검증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경과학자에게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묻지만, 배울 때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정확히 몰라 답을 못 주죠. 그 패턴 변화를 볼 수 있다면 답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휴먼 커넥텀의 완성은 요원한 일이다. 80년대에 12년 걸려 그린 뉴런 300개짜리 선충(線蟲)의 커넥텀이 유일하게 완성됐을 뿐이다. 뉴런 1000억 개의 인간 뇌 지도를 그리려면 100만 페타바이트(PB:약 100만 기가바이트)라는 천문학적 저장용량이 필요하다. 이에 필요한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휴먼 커넥텀의 완성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만만치 않다.

승 교수는 이런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보통사람들이 참여하는 개방형 연구에 나섰다. 지금 진행 중인 ‘아이와이어(Eyewire)’ 프로젝트는 쥐의 망막 커넥텀을 3차원 이미지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커넥텀의 데이터 분석을 앞당길 수 있는 툴(tool)을 인터넷게임으로 개발해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게임을 즐기면서 연구과정에 이바지하게 하는 독특한 시도다. “이미지 데이터 분석은 인공지능을 써야 하는데 신경망은 너무 복잡해 컴퓨터도 실수를 해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서 컴퓨터도 교육시켜야 하죠. 그래서 많은 이가 동참할 방법을 찾은 겁니다.”

이 게임은 인공지능이 뉴런 가지의 컬러링을 하다 멈춘 곳을 사람이 찾아 컴퓨터의 실수를 알려주면서 3차원 퍼즐을 다 함께 완성해 가는 단순한 구조다. 게임 참가자의 국적을 밝히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라 각국의 ‘애국자’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반세기의 컴퓨터 발전을 생각하면 기술적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꼭 휴먼 커넥텀의 완성만 기다릴 필요는 없어요. 분석 과정에서 이미 많은 과학적 발견이 얻어지고 있죠”라고 말한다. 최근에도 ‘아이와이어’ 프로젝트가 신경과학의 중요 문제인 동작 감지 시세포의 기능 패턴을 밝혀냈다. 전 세계 8000여 명의 회원이 참여 중인 이 프로젝트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미 국립보건원(NIH)과 개츠비 파운데이션, 하워드 휴즈, 휴먼 프런티어 등 여러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승 교수가 TED 콘퍼런스에서 커넥텀의 개념을 알린 것도 더 많은 이가 커넥텀 규명에 참여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지난 2월 출간한 Connectome: How the Brain’s Wiring Makes Us Who We Are는 월스트리트저널 등으로부터 “뇌과학에 관한 최고의 대중서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책은 커넥텀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게놈지도가 생물학에 혁명을 일으켰듯 커넥텀도 신경과학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킬 개념이거든요.”

휴먼 커넥텀이 실현되면 진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수도 있고, 영생을 원하는 사람들이 영화 ‘매트릭스’처럼 가상현실 속에서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승 교수는 “커넥텀이 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일은 손상된 뇌를 고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치매나 파킨슨병은 뉴런이 죽은 게 눈으로 확인되지만 자폐증, 정신분열 등의 질환 땐 정상 뇌와 똑같아 보입니다. 커넥텀만이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아요. 뉴런이 다른 패턴으로 연결됐다고 추측하는데, 실제로 차이를 밝힐 수 있다면 치료도 가능할 겁니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뇌가 건강치 못해도 신체 수명은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이 유독 뇌 건강과 신경과학에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대중적 관심과 민관 투자가 늘어나길 바랍니다. 인간의 존엄을 향상시키는 일이니까요.” 승 교수의 맺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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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