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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떨 땐 아줌마들인데 무대 서면 프로 배우 뺨치죠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16일 오후 7시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안에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울려 퍼지자 무대 위에 7명의 수녀들이 말춤을 추며 등장했다. 수녀들은 빨강·노랑·분홍 등 각기 다른 색 선글라스를 쓰고, 손에는 선글라스와 색을 맞춘 고무장갑을 꼈다. 얌전한 수녀의 이미지와 상반된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500여 명의 관객들은 일제히 웃음을 쏟아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공연에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쳤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공연이었다. 강남 모자이크 극단의 제22회 정기공연인 뮤지컬 ‘넌센스’ 현장이다.



[문화 동아리 탐방]강남 모자이크 극단

“연극에 대한 열정은 프로 배우 뺨칠걸요?” 강남 모자이크 극단 배우들이 ‘넌센스’ 공연 전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7시간 전 강남구민회관 분장실. 공연을 위해 분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분장을 끝낸 사람들은 소파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이번에 내가 묵은지 김치 담갔는데, 맛이 좋더라.” 서금희(47·강남구 대치동)씨 말에 ‘김장’이 금세 화제가 됐다. 시기와 재료 구입 방법 등에 대한 얘기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아줌마(?)들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무대 리허설 시간이 되자 그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수녀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그들은 아내도 엄마도 주부도 아니었다. 그 어떤 스타도 부럽지 않은 배우였다.



구청 연극교실 수강생 의기투합 22작품 공연



강남 모자이크 극단은 16년 전인 1996년에 탄생했다. 강남구청에서 마련한 문화예술강좌 ‘유인촌 연극교실’이 시작이었다. 두 달 만에 강좌는 끝이 났지만, 수강생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멈출 줄 몰랐다. 강의를 들었던 60여 명 중 15명이 순수취미 활동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됐다. 강남 모자이크 극단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진 것도 이때. 모자이크 작품처럼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이 공연을 통해 조화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첫 공연은 극단이 창단된 다음해 7월에 이뤄졌다. 아마추어 극단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옴니버스극 ‘연인과 타인’이라는 작품이었다. 박찬열(73·강남구 도곡동)씨는 57세의 나이로 갓 결혼한 30살 아들 역할을 맡았다. “엄마가 ‘스프 먹어라’고 하면 저는 ‘싫어요’라고 말하는 거였죠. 이 세 글자를 말하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연극 무대에 처음 서보는 거라 많이 긴장됐거든요.” 이후 16년 간 한해도 빼놓지 않고 정기공연을 해왔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걸 즐겼기 때문에 창작극·고전해학극·가족동화·신파극·뮤지컬 등 장르도 다양했다. 정기공연으로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들은 ‘전국주부연극제’에 참여해 객관적인 실력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 2000년에 열린 ‘제4회 전국주부연극제’에서 ‘아름다운 사인(死因)’이라는 공연으로 작품부문 금상과 우수연기상, 공로상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연극에 대한 열정만큼은 이미 프로 배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무대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숨은 노력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 아마추어 극단이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해야 했다. 공연을 준비할 때가 아니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며 다음 작품 구상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연출 섭외까지 직접 나선다. 작품에 따라서는 연습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직접 무대를 꾸며야 할 때도 있다. 권경문(48·강남구 개포동)씨는 “초반에는 목공소에서 합판과 각목을 얻어다 못질을 한 적도 있고, 동네에 버려진 옷장과 싱크대를 주워와 무대를 꾸민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이번 공연은 ‘본격’ 뮤지컬이라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됐다. 춤과 노래를 익히기 위한 안무레슨과 보컬트레이닝도 이뤄졌다. 거울이 있는 연습실이 필요해 배우들은 영등포까지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불평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그 어떤 프로에게도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선경(39) 연출가도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노력하는 모습, 잘못된 점을 지적했을 때 개선하는 능력 등은 오히려 프로 배우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엄마·아내로 살며 못 이룬 꿈 실현 기회



극단 활동은 주부들이 못 다 이룬 꿈을 실현하는 기회다. 성악과를 졸업한 뒤, 서울민속가무단 합창부로 활동했던 박씨는 극단이 문을 닫는 바람에 꿈을 접었다. 여고시절 연극부 활동을 했던 조선옥(59·동작구 상도동)씨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원서도 못 냈다. 회장직을 맡고 있는 조혜선(48·강남구 일원본동)씨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 한 번 경험한 무대를 잊을 수 없었던 그는, 대학시절 연극영화과 편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들은 마음속에 ‘연극’과 ‘무대’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살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꿈을 잊은 적은 없었다. ‘꿈은 이뤄진다’고 믿었고, 강남 아마추어 극단을 만들면서 스스로 기회를 잡았다. 조선옥씨는 처음 아마추어 극단 무대에 섰을 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여고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설렜어요. 20여 년 동안 염원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조혜선씨는 극단 활동을 통해 건강도 되찾았다. 그는 첫 아이를 낳고 5년 넘게 출산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약도 없던 그의 병을 고친 건 다름아닌 극단 활동이었다. “저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냐’고 깜짝 놀랐어요. 하고 싶은 걸 못해서 마음속에 응어리가 졌었나 봐요. 앞으로도 체력이 다하는 그날까지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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