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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세계문학전집 1000권 시대

기선민
중앙SUNDAY 기자
나는 소위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세대’다. 어느 소설가의 표현대로라면 ‘X세대’라 불리는 1970년대생들은 이 전집으로 ‘교양의 기초’를 닦았고, 이를 발판 삼아 독서의 폭을 넓혔다. 그런데 소싯적 책깨나 읽었다는 알량한 자부심에 요새 자꾸 금이 간다. 출판사들이 새롭게 번역해 내놓은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다. 유년 시절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생소한 내용투성이다. 두어 달 전 구입한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두 도시 이야기』도 그랬다. 600쪽에 가까운 두께부터 낯설었다. 기억 속 『두 도시 이야기』는 아마도 청소년용 축약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뮤지컬로 인기몰이 중인 『레 미제라블』도 마찬가지다. 완역본이 다섯 권 분량이란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주인공 장발장을 감화시키는 자비의 화신 미리엘 주교에 대한 부분만 100여 쪽이다. 빵 한 조각 훔친 장발장이 19년을 복역해야 했던 이유도 당시 프랑스 형벌제도의 가혹함과 함께 상술된다. 이 역시 어렸을 적 읽던 『레 미제라블』과는 다르다.



 세계문학전집이 출판 불황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한다. 이 분야 성공 모델로 꼽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최근 300권을 넘기며 누적 판매부수 1000만 부를 넘겼다. 민음사 브랜드 매출의 30%나 된다. 펭귄클래식코리아와 열린책들·문학동네·창비·을유문화사 등도 뛰어들었다. 출판사들의 출간량을 합치면 1000권에 육박한다. 세계문학전집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하다. 독자 입장에선 일단 반갑다. 새롭게 번역된 『두 도시 이야기』 『레 미제라블』 등을 읽으며 양적 팽창이 가져온 질적 변화를 실감한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결국 번역과 편집에서 승부가 갈린다. 독일어 원작을 일본어판을 보고 한국어로 번역하는 식의 중역(重譯), 원작의 일부만 발췌해 번역하는 초역(抄譯)은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영미권은 물론 제3세계 작품도 해당 문학 전공자가 완역하는 게 상식이 됐다. 원작자와 소통하고 해당 분야 권위자의 감수를 거쳐 시대에 맞는 풍성한 번역을 시도하는 풍토도 정착돼 가고 있다.



 고전문학 인구의 저변이 넓어질 조짐이 보이는 점도 긍정적이다. 신간 유통 주기가 두세 달에 불과하다 보니 호흡 긴 고전문학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영미 펭귄클래식코리아 대표는 “주 독자층은 20대지만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의 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어 주목된다”고 말한다. 올 초 X세대의 첫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건축학개론’이 400만 관객을 모은 것처럼 ‘계몽사 전집 세대’가 명작의 추억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걸로 보인다. 물론 우려할 점도 있다. 예컨대 너도나도 내다 보니 중복 번역이 적지 않다. 다른 출판사가 시도하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다양화·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번째는 이상 소설전집이다. 이처럼 독자들의 관심을 장차 한국 고전문학으로 유도하는 일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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