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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대연정을 생각할 때

김수길
주필
단일화는 물론 다가 아니다. 듣도 보도 못했던 단일화를 지켜보며 또 무슨 그림이 그려질지 온통 눈과 귀와 입이 쏠려 있는 형국인데, 내친김에 더 큰 그림을 그려보자. 당파·진영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대선 후 대연정(大聯政)이다.



 그게 벌써 무슨 소리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달 뒤면 정권인수위원회가 가동한다. 석 달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단일화나 대선에만 코 빠뜨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선에서 이길 쪽은 더욱 그렇다. 개인도 조직도 한 달 석 달 한 해 앞을 생각한다. 5년을 끌고 갈 국가 리더십인데 그 첫 단추에 대해 벌써 생각이 있어야 옳다.



 그게 과연 되겠느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3당 합당이나 DJP 연합 등에 아연실색했던 우리다. 그때까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벌어졌다. 연정보다 더 강한 형태인 공동정권의 부침도 겪어 봤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전말도 봤다. 지금은 바야흐로 2012년 버전의 단일화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하물며 대선 후 대연정임에랴. 하지 못한다, 치고 나가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정치적 상상력도 예술적 상상력만큼이나 한계가 없다.



 그게 지금 먹히겠느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도중인 2005년 7월에 제안했던 연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여야 모두 편가르기에 몰두했었다. 그러다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고 레임덕에 빠지니 내놓은 연정이라 해서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대선 도중 또는 당선 직후에 연정을 제안한다면 다르다. 배신이나 야합 또는 꼼수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처음부터 인사·정책에서 여당과 제1야당이 연합하는 것이다. 승복·포용·타협이다. 그게 바로 새 정치다.



 오늘 내일 한참 숨가쁜 고비를 넘는 단일화를 지켜보며 한숨과 함께 대연정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타협 없이 어찌 내년 이후의 어려운 고비를 다들 함께 넘을 수 있을꼬 하는 걱정 때문이다. 단일화만 되면, 또는 단일화가 안 되면, 그래서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올해 총선·대선을 치르며 불거졌던 모든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을까. 벌써 닥쳐와 내년 이후 더욱 어려워질 문제들에 미리미리 대처할 수 있을까.



 누구를 찍을지 일찌감치 마음을 먹었든 아직 정하지 못했든, 그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 누가 되든 무슨 큰 차이가 있겠나 하는 사람들이 주변엔 더 많다. 그래서 다시 한번 대타협과 대연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박빙의 승부로 판가름 날 이번 대선이라 더욱더 그렇다.



 뻔히 보이는 저성장 속에서 일자리·복지·경제민주화를 함께 풀어 나가려면 대타협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벌은 불합리한 규제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행태를 바꿔야 한다. 총수부터 바뀌어야 한다. 불합리한 재벌 규제는 모두에게 파국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단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최대 걸림돌이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다들 세금 더 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복지는 급한 곳부터 먼저 돈을 쓰게끔 덜 급한 복지는 미뤄야 한다. 어떤 경우에든 국가 재정은 해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타협인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그러나 절실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말들을 대선 후보들은 쉬이 못한다. 그러나 당선자는 이런 어려운 말들을 해야만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국회와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야당이 되는 순간부터 여당을 공격해 정권을 되찾는다는 지금의 헌 정치를 갖고는 꿈도 꾸지 못할 소리다. 그러니 개헌이니 새 정치니 하기보다 연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중앙일보 편집국이 추진하다 그만둔 해외 현장 기획물이 하나 있다. ‘선진국들은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게 됐나’였다. 사전 취재를 죽 해보니 ‘다들 벼랑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왔지 미리들 알아서 타협한 나라는 없다’라고 중간 결론이 나오기에 결국 접고 말았다. 우리도 갈 데까지 가보아야 알 것이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우리의 벼랑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대타협 없이 저성장의 늪으로 한발 한발 들어서고 나면 어디에 다다를까. 특히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단일화와 대선을 지켜보며 대타협과 대연정을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치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 타협 없는 사회 갈등이라는 면에서 다시는 이명박·노무현 10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촛불시위 대신 연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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