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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펀드의 거울아, 내게 진실을 보여주렴

국내에 설정된 공모펀드는 20일 현재 3393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지만 정작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펀드에 가입해본 사람은 안다. 내가 살 수 있는 펀드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또 내 뜻대로 고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주로 거래하는 금융회사의 판매 리스트엔 내가 원하는 펀드는 빠져 있기 일쑤고, 당초 가입하려고 마음먹은 펀드가 있어도 창구 직원의 ‘추천’에 원래 뜻을 꺾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슷하다는데, 아니 더 좋다는데 이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다. 투자 경험이 적은 투자자일수록 추천으로 포장된 판매직원의 ‘권유’에 더 쉽게 현혹된다. 그런데 금융회사가 정말 투자자 개인에게 맞는 좋은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걸까.



고객들이 거부하기 힘든 ‘상품 추천’
금융사는 자사 수익 위해 권유 일쑤

 답은 “글쎄올시다”다. 2007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촉발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가 문제 되자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장치가 도입됐다. 상품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에게는 아예 팔 수 없도록 미리 고객의 투자성향 등급을 매기도록 했다. 감독당국과 판매사의 노력으로 과거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편법을 쓰는 판매사가 여전히 있다. 구조가 복잡한 파생상품을 권유하면서 “이 상품에 가입하려면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하니 이 문항에 체크하라”고 설문 답을 알려주는 경우까지 있다.



 왜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텔레비전이나 소주를 팔 때와 똑같다. 마진이 더 높은 상품을 팔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판매보수나 판매수수료를 많이 벌려는 심리다. 또 하나는 계열 금융사 상품 몰아주기다. 결국 금융회사가 원하는 상품을 보다 많이 판 직원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금융회사의 성과보상체계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 같은 고민은 국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판매사 권유에 따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성과보상체계를 아예 바꿔놓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호주가 대표적이다. 호주는 내년 7월부터 판매사가 운용사로부터 받는 모든 판매보수와 판매수수료 부과를 아예 금지하기로 했다. 판매한 자산 규모에 따라 수수료나 보수를 받는 방식은 전면 금지되고, 판매사는 오직 투자자문에 대한 보수만 받을 수 있다. 많이 팔든, 마진이 높은 상품을 팔든 판매사는 정해진 자문료만 받는다. 많이 팔수록 판매사가 많이 남기는 구조를 바꿔 불완전 판매의 동기를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의도다. 영국은 독립 판매사로 규제 대상을 제한하긴 했지만 내년부터 비슷한 방안을 실시한다. 계열사 펀드를 파는 소위 전속 판매사라면 “계열사 펀드를 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려야 한다. 가령 국민은행에서 KB자산운용 펀드를 팔 때 “나는 당신한테 계열사 펀드를 팔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태훈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많이 팔수록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단순히 금융감독당국의 모니터링만으로 불완전 판매를 막기 어렵다”며 “소비자 이익에 반(反)하는 판매행위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선 판매사가 판매보수나 수수료를 받는 걸 금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텔레비전은 소비자가 곧바로 품질을 확인할 수 있고 환불도 할 수 있어 판매사가 품질 나쁜 상품을 단순히 많이 남는다고 권유할 수 없다”며 “그러나 금융상품은 소비자가 당장 품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매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규제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판매사는 물론 운용사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한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투자자를 위한다며 지속적으로 펀드 판매수수료를 낮추고 있지만 펀드 시장만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판매수수료가 아예 없어지면 누가 펀드를 팔겠느냐”고 물었다. 은행 등 대형 판매사가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굳이 열심히 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열 금융회사가 없는 독립 운용사는 판매 채널을 찾기 어려워 고객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다.



 인기 펀드만 파는 판매사 관행에 반기를 들고 판매사 없이 펀드를 직접 판매(직판)해온 에셋플러스는 이달 말 출시하는 새 상품은 증권사 등 판매사를 통해 간접 판매하기로 했다. 강방천 회장은 “여전히 직판이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고객을 확대하는 데 너무 큰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판매사 탓을 하기 전에 투자자 태도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고수익 욕심에 이해도 못 하는 상품에 무조건 가입하겠다고 우기는 고객이 적지 않다”며 “본인이 원해 가입하고는 손해를 보면 판매사 탓이라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기정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는 “투자자가 수익성에만 홀리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창구 직원이 원하는 정보만 고객에게 제공하면 ‘프레이밍 효과’ 때문에 투자자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수익률이라는 틀(프레임)로만 투자 권유를 하면 고객은 위험성은 무시하고 수익률 높은 상품을 고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아도 어떤 틀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올바른 판단에 방해를 받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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