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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에 국민은행 명퇴, 시장서 닭 튀기며…





나라 튼튼해진 외환위기 15년 서민들 살림은 잃어버린 15년
39세 명퇴 김예균씨의 경우
사업 세 차례 실패 집 날리고
치킨집 여니 경쟁가게 29곳
발버둥쳤지만 빈곤층 추락



1998년 12월 김예균(53)씨는 국민은행을 퇴직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명예퇴직이 줄을 잇던 때였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직급·나이 상관없이 김씨처럼 국민은행을 떠나야 했던 사람은 그해 2790여 명. 전 직원의 20%에 달했다. 다른 은행도 비슷했다. 98년 한 해에만 5개 은행을 비롯해 97개의 금융회사가 문을 닫았다. 그렇게 직장을 잃은 사람만 6만8500여 명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행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은행이다. 장기신용은행과 주택은행을 합병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이 은행의 총 자산은 277조원, 당기순이익은 1조7660억원이다. 97년 말과 비교해 총 자산은 5배, 당기순이익은 약 17배로 불었다.



 같은 기간 나라도 강해졌다. ‘국가 부도’의 악몽을 완전히 떨쳐냈다. 98년 3454억 달러였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조1162억 달러로 늘었다. 한때 203억 달러(97년)까지 떨어졌던 외화 금고엔 지금 30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쌓여 있다. 세계 경제가 휘청이던 올 9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오히려 한 단계 올랐다.



 김예균씨는 지금 서울 한 재래시장에서 닭을 튀긴다. 그 사이 화랑과 비료공장·문구점을 차려봤지만 세 번 모두 실패했다. 두 번째 사업을 접은 2001년 30평대 아파트를 날렸다. 네 식구는 지금 방 두 칸짜리 전셋집에 산다. 2008년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치킨집은 갈수록 힘들다. 당시 9개였던 시장 내 치킨집은 29개로 늘었다. 대학생이 된 아이 둘의 등록금 걱정을 하는 그에게 노후 자금 얘기를 꺼내자 화를 냈다. “여보세요. 가겟세 내기도 힘든데 노후 대비가 어디 있습니까.” 그는 “지난 15년 동안 힘껏 발버둥쳤지만 자꾸 밀려나기만 했다”며 “외환위기 때 관둔 은행원 열에 아홉은 나처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21일로 15년을 맞는다. 한국은 3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재기해 ‘국제사회의 모범생’으로 거듭났다. 정부와 기업, 시장이 모두 한두 단계씩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반대쪽엔 깊은 상처가 여전하다. 일자리를 잃고 무력해진 아버지, 취업과 함께 희망마저 접어버린 아들딸이 급작스레 늘어났다. 외환위기는 이들에게 ‘잃어버린 15년의 시작점’일 뿐이다.



 이는 본지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잘 드러났다. 설문 응답자 대다수는 ▶한국은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고(72.6%) ▶대기업은 더 기업 하기 좋아졌다(80.8%)고 답했다. 동시에 절대 다수가 ▶서민의 삶은 더 살기 어려워졌고(91.2%)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민이 희생됐다(92.6%)고 했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생겨난 이런 변화가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외환보유액만 많이 쌓고 경상수지만 흑자면 ‘위기를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보다는 서민 삶과 관련된 지표가 회복됐는지를 먼저 체크해야 한다”며 “지난 15년 동안 진행된 중산층의 빈곤화를 더 방치했다간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한국리서치 공동기획 특별취재팀=임미진·김혜미·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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