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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박근혜 출산 그림’ 침묵하는 진보 여성계

허진
정치부문 기자
수술대 위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다리를 벌린 여성이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에 주름이 난 아이를 출산하는 그림. 애 낳은 여성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갓난아이는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묘사된 그림. 이른바 민중미술가라는 홍성담(57)씨의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라는 풍자화다.



 이게 지난 18일 공개돼 큰 파문을 부르고 있다. 홍씨는 “박근혜 출산설에 착안해 그린 그림이다. 진실이든 유언비어이든 출산설 자체가 돌았던 게 사실이고 거기서 처음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근혜씨가 오입질이라도 하고 아이를 낳고 해서 이상스러운 신비주의 이미지를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라고도 했다.



 풍자를 위해 여성 정치인 박 후보에게 수치스러울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를 찾은 셈이다. 박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출산설에 시달렸다. 그는 공개적으로 “자식도 없는데 자식이 있다는 황당한 얘기를 하면 ‘멘붕’이 될 수밖에 없다”(8월 5일)고 하소연했다. 5년 전에는 “아이를 데려오면 내가 (친자 확인용) DNA 검사를 해 주겠다”고도 했다.



 홍씨는 그런 설(說)에 착안해 유신과 박 후보를 연결시키려고 딸이 아버지를 낳는, 민망한 장면을 그렸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정치인’ 박근혜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 박근혜를 도구화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표현의 자유에 속하니 ‘관람 금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 뭘 그리든지 작가 마음대로지만, 작품을 보면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묘한 것은 평소 여성성의 훼손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진보진영의 여성단체들이 입을 닫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을 못 본 것인지, 보긴 봤는데 훌륭한 예술품으로 감상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들이 과거 여성성과 관련한 문제에 어떻게 반응했나. 2010년 7월 20일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이 여대생과의 술자리에서 한 성희롱 발언이 보도되자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등 4개 여성단체는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명백히 성희롱이고 성차별이며 명예훼손이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1월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지난 8월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이 박 후보를 ‘그년’이라고 지칭했을 때도 비교적 잠잠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당시 “4선 의원 이종걸의 품격은 진심 어린 사과에 있다”는 성명을 냈을 뿐이었다. 2년 전 “강용석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책임지고 사퇴하는 일뿐”이라던 것과는 강도가 사뭇 달랐다.



 이로써 그들의 예측가능한 패턴을 읽을 수 있다. 편을 갈라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여당을 비틀다 불거진 것이니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본 듯하다. 만일 이 그림에서 독재자를 낳는 여인을 박근혜가 아닌 야당의 여성 정치인 얼굴로 바꿔 그렸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상상만 해 볼 따름이다.



 현재 여성단체들은 박근혜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강조하면서 딜레마에 빠졌다고 한다. “여성 대통령의 출현 자체가 개혁”이란 입장과 “여남을 떠나 진보인사가 대통령이 되는 게 개혁”이라는 시각이 맞선다. ‘내 편’과 ‘네 편’의 여성을 달리 대하는 상황이 언젠가는 보편적 가치로 정리되길 바란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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