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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빚 절반 될 때 가계 빚 4배 늘어

외환위기 뒤 15년, 나라 곳간은 더 튼튼해졌다. 1997년 바닥을 보였던 외화 금고엔 지난달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인 3234억6000만 달러의 외화가 쌓여 있다. 세계 일곱 번째로 많은 양이다. 지난해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4.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3%)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살아남은 기업은 더 강해졌다. 내로라하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는 13개 한국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외환위기 당시 재무구조를 개선하라는 압력을 받았던 삼성전자는 애플을 누르고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유럽 시장에서 독일·일본의 완성차 브랜드보다 더 높은 점유율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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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중산층은 줄고 빈곤층은 크게 늘었다. 95년만 해도 중위소득(소득을 일렬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소득)의 50~150%를 차지하는 중산층은 전체 국민의 75.3%에 달했지만, 2010년엔 67.5%에 불과하다. 대신 같은 기간 빈곤층은 7.7%에서 12.5%로 늘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복지망이나 재취업 프로그램이 부족해 한번 시장에서 밀려나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서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광주광역시 양산동에 사는 백모(47)씨가 그렇다. 그는 97년 다니던 중소 건설회사를 나왔다. 회사가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2년간 백수로 지내다 99년 10평 남짓한 치킨집을 차렸다. 2003년 폐업 뒤 남은 건 카드 빚 3000만원과 신용불량자 딱지였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는 지난해에야 방수 설비업체를 차렸지만 아직 임대아파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15년 전 첫 직장을 잘못 잡았을 뿐인데 이렇게 평생이 꼬일 수 있느냐”며 “지난 15년을 생각하면 악몽 같다”고 말했다. 이장혁 고려대 교수는 “수출산업을 위주로 기업에 국가의 모든 자원을 몰아주던 불균형 성장구조가 외환위기 뒤 오히려 강화됐다”며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원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굳어지고 커졌다”고 지적했다.

 가계소득은 제자리다. 전체 경제에서 가계의 몫이 줄고 있어서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97년 221만8634원에서 지난해 273만4178원으로 23.2% 오르는 데 그쳤다. 2007년(297만1366원) 이후엔 오히려 실질임금이 20만원 이상 떨어졌다. ▶수출 주도 대기업 중심 성장 정책 ▶산업 첨단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제빵업체 대리점에서 납품 업무를 하는 김민주(46)씨는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 업체가 빵 유통을 다 휩쓸어 우리 일감은 많이 줄었다”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달 벌이가 150만~200만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고용을 늘리고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 집중하는 데 한국은 보육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자영업자의 사회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술한 복지 안전망은 가계 빚을 사상 최대로 부풀게 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건실해진 것과는 딴판이다. 98년 183조원이던 가계빚은 올 6월 말 922조원으로 불어났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04.01%에서 158.04%로 늘었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은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다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와 반대로 한국은 복지 부담을 가계에 떠넘겨 왔다”며 “한번 실직하면 재취업이 불가능하니 영세 자영업에 뛰어들어 퇴직금을 날리는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근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밑바닥에 떨어진 서민에겐 복지기금을 풀어야 하는데 대신 서민금융을 지원해 빚을 늘려주는 게 한국식 서민 정책”이라며 “나라 재정을 아끼려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한국리서치 공동기획 특별취재팀=임미진·김혜미·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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