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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 구멍에 새싹 그린 벽화 … 연평도는 치유 중















14일 오후 인천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3시간 만에 승객들을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 내려놓았다. 연륙교를 지나 마을 입구로 들어가니 연평종합운동장 벽에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이 눈에 띄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기습 포격 때 포탄을 맞은 흔적이다. 이 포탄 구멍 주위에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손 모양의 벽화를 그려 놓았다. ‘그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다. 이 흔적은 현재 연평도에 유일하게 보수하지 않은 포탄 자국이기도 하다.

 기습 포격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연평도에서 포격 흔적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섬 전체가 공사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 건물, 새 집이 들어서면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는 목재 등 자재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빈번히 오간다.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 개량사업이 실시되면서 두 집 건너 한 집은 수리 중이거나 새로 짓고 있다.

 서은미 연평면사무소 산업팀장은 “포격 이후 제정된 서해5도 지원 특별법에 따라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들(160여 채)이 일제히 리모델링을 시작하면서 동네 분위기가 변했다”고 설명했다. 포격으로 무너진 집터에는 붉은색 벽돌로 치장한 신축 주택들이 들어섰다. 집 잃은 주민들이 임시 거주하던 컨테이너 30여 개로 가득 찼던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은 초·중·고교 통합학교 신축 공사에 동원된 굴착기 등 건설장비들이 차지했다. 연평중·고교 주변에 있는 안보교육장 건설현장은 23일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옆에서 검게 그을려 앙상한 철골 뼈대를 드러낸 채 보존 중인 주택 3채만이 그날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었다.

 공사가 활발해지면서 외지인들이 늘었다. 연평면사무소에 따르면 포격 이후 섬으로 들어온 인부 수가 500~600여 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배가 들어오는 오후 시간이면 연평도 내 숙박업소 26곳은 모두 방을 구하려는 관광객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김기수(51)씨는 “워낙 공사를 여러 곳에서 하다 보니 뭍에서 온 인부들로 민박집마다 빈 방이 동났을 정도”라고 말했다. 14일 연평도에 도착한 기자도 숙박업소 10곳을 전전한 끝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덩달아 숙박비는 올 초 2만~3만원에서 현재 4만~5만원으로 올랐다. 옹진군 관계자는 “숙소 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부터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겉보기엔 연평도가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섬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별반 나아진 게 없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공사판이 벌어져도 섬 주민들의 손에 떨어지는 건 별로 없고, 한때 반짝 늘었던 안보관광객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특히 올해는 주 수입원인 꽃게 어획량이 지난해보다 20%가량 감소했다.

 주민들이 겪는 ‘그날의 공포’도 현재진행형이다. 주민 김광춘(50)씨는 “포격 당시 고3이던 딸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시는 집에 오고 싶지 않다’고 했을 정도”라며 “남자인 나도 사격훈련 소리나 공사장 소음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애들이나 노인들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김태진 연평면장은 “주민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유관 부처 등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평도=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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