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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구름당은 힘이 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이해찬 대표와 당 수뇌부가 창졸지간에 사퇴했다. 민주당이 보인 황급한 반응은 최소한의 예의이자 정치쇄신의 시작에 불과하지만, 사실 내가 구름당을 좀 얕보긴 했다. 무지개연합 시민군이 십시일반 모여들어 변화무쌍한 구름세력을 결집했을 때에도 뭐 온난화 현상의 한반도적 징후려니 생각했다. 정치엔 언제나 혐오증이 생기는 법, 그러다 달뜬 지지자들도 슬그머니 기성정치로 귀의할 것으로도 생각했다. 구름당 당수가 강림한다 한들 현실정치는 까딱 않을 것을 현학적 이론에 기대어 철벽처럼 믿었다. 그런데, 틀렸다. 현실정치에 내려앉은 구름당 당수는 환속한 도인처럼 묘술(妙術)이 탁월했고, 진심캠프의 지도부는 국회의원 120명과 오랜 경륜으로 무장한 민주통합당을 마치 노련한 목동이 날뛰는 소를 낚아채듯 꿇어앉혔다.



 환속한 절세미인 철수씨가 말했다. “문 후보가 낡은 사고와 행태를 끊어내고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고. ‘내가 낡은 정치냐?’ 목을 빼고 기다리던 신랑 재인씨가 볼멘소리로 응수했지만 내심 찔리는 게 있다. 신부가 집안정리(정치쇄신)를 여러 번 요청했는데도 합방에 맘이 급한 신랑이 ‘내가 다 들어줄게’만 연발했을 뿐 변한 게 없었다. 게다가 결혼축의금과 신부 측 예물에 눈독 들이는 신랑댁 가장과 식솔들이 ‘빨리 자빠뜨리는’ 게 능사라고 부추기는 건넛방 수군거림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신랑댁은 마초였다. 적어도 절세미인 철수씨가 보기엔 그랬다. 시민연합이 패권정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증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합방 외엔 다른 방법은 없었던가?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알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에도 가슴이 울렁이던 그 연심이 새가 울든 꽃이 피든 무덤덤해지고야 마는 생활고의 냉혹한 마모작용을. 연심은커녕 평상심도 유지 못해 급기야 변심과 흑심(黑心)으로 돌아서게 되는 결혼생활의 어쩔 수 없는 배신법칙을 말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철수씨의 비단 같은 말의 진의를 절세가인 처녀일수록 더 그런 법, 자빠뜨리면 그게 그거라고 믿는 한국의 마초들이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사실, 무지개연합이 기성정당과 접속하려 할 때부터 부정합의 스파크가 우려되기는 했다. 족보도 없는 미인에게 호적을 주는 것만으로 감읍해야 한다는 ‘흡수론’의 완고한 오만, 신랑 뒤에 버틴 그림자 세력이 걱정되기도 했다.



 새정치공동합의문은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권리장전이다. ‘DJ·노에 대한 모욕이다’고 토를 단 이해찬 대표의 일침이 ‘적절한 시기에 재등장할거야!’로 읽힌다면 ‘가치연합’은 종잇장에 불과하다. 신세력이 강조하는 핵심은 정치의 중심을 정당에서 국회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비대해진 중앙당의 2중대 노릇을 해왔고, 지역, 직종, 세대,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 공익을 대변하기보다는 특정인 지배하의 중앙당 계파, 패권정치가 충돌하는 격투장으로 전락했다는 뼈아픈 반성 말이다. 이 권리장전의 정신보다 정권교체에 집착하는 게 구태 정치고, 구태 정치인이다. 민주화 25년 카리스마 정치인들이 남긴 저 빛나는 유산을 이제 청산하자는 시민연합의 이상주의적 주문에 필자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제도권의 맏형 격인 새누리당이 정당정치의 골격을 바꾸자는 권리선언에 보인 반응은 조금 옹졸하다. ‘그래 맞다, 우리도 그러고 싶다’가 정답 아닐까. ‘대표와 지도부 사퇴는 스스로 구태 정치임을 자인한 것’이라는 공보단장의 논평은 말문을 또 한번 콱 막히게 한다. 박 후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알 권리, 선택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탓할 게 아니라 ‘쇄신의 산고를 절감한다, 같이 노력하자’ 정도가 여당 후보의 품격을 높이는 조언일 게다. 혹시 선대위 고위 관계자의 발언처럼 “친노·좌파 진영의 흥행에 이용당하고 이제 버려지는 단계에 있다”고 판단해도, 여당이라면 버려지기 전에 진의를 건져야 할 의무가 있다. 단일화 협상은 정치공학, 정치사기극이 아니고 미래정치를 위해 필수적인 항목을 가려 조합하는 조립공정이다. 민주화 25년 동안 정치 외곽에서 국회와 정당의 행태를 지켜본 시민연합이 참다못해 발령한 정당개혁 명령이다.



 그러니, 버려지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평상심보다 연심이 중요하다는 정치초년생의 그 순정이 자칫하면 보수와 진보 간 진흙탕 싸움으로 몰려갈 26일 이후의 이분법적 복고적 대선정국의 각도를 미래로 돌려놓을 것임을 말이다. 어지간히 사는 나라 가운데 시민연대에 의한 이런 정치적 실험은 정말 희귀하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두 거대 정당이 안주한 단단한 특권과 패착을 깨뜨려주기를 바란다. 노무현-정몽준식 단일화는 한바탕의 도박이었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요 며칠, 대통령 등극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 진의를 보여준다면, 구름당은 진정 힘이 세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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