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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박근혜” vs “부산 출신 뽑아야 배신 안 할 것”

14일 오후 7시 땅거미가 질 무렵인 부산 자갈치시장. 갑작스러운 한파에 상인들이 불가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붓고 물을 끓이던 상인 김정순(47)씨가 “대통령 시켜달라꼬 요즘 자꾸들 찾아오데. 솔직히 누가 되든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라며 운을 뗐다. 옆에 있던 한 상인이 “다르지. 부산도 바뀔 때가 됐어. 철수도 부산(출신) 아이가”라며 김씨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근처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이주현(54)씨가 “그렇게 따지믄 문재인이 낫제. 철수는 당이 없어서 안 된다카이”라고 열을 낸다.

저녁시간대인 시장 식당가 주변은 분주했다. 식당 앞에서 부지런히 생선을 굽던 식당 주인 김정현(55)씨는 “누구든 부산 좀 살려줄 사람이믄 대통령 찍어줄라고. 문재인하고 안철수는 다 부산의 아들들 아잉교. 배신하믄 안 되지”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100일 전 새누리가 압도한 분위기와 달라
자갈치시장은 2002년 대선 이후 부산의 상징으로 떠오른 곳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 광고에 ‘자갈치 아지매’가 등장하면서다.
100일 전인 지난 8월 중앙SUNDAY(8월 5일자 참조)가 자갈치시장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이곳 상인들은 새누리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상인들 대다수가 “우린 무조건 박근혜”라고 잘라 말했다. 반대로 야당 후보들에 대해선 적대감이 강했다. “안철수 지가 뭘 안다꼬 정치한다카노” “문재인이 그거 빨갱이 아니가” 등의 다소 과격한 표현을 들을 수 있었다.

부산은 1979년 부마민중항쟁 때만 해도 야성이 강한 곳이었다. 그러다 이곳 출신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집권을 계기로 20여년간 신한국당ㆍ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줬다. 이후 역대 대선에선 비(非)새누리당 후보에게 30% 이상의 표를 주지 않았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부산 득표율은 15.28%(이회창 53.33%)에 불과했다. 2002년 대선 땐 노무현 후보가 29.85%(이회창 66.74%)를 얻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와 올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부산은 바뀐 모습이다. 부산시장 선거 땐 민주당 후보에게 44.6%의 지지를 보냈고, 총선에선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에 40.2%의 표를 줬다. 지역 개발이 지체돼 여권에 대한 불만이 겹친 데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지역별 정당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여기에다 이 지역 출신이 야권의 유력 후보로 나서자 부산은 흔들리고 있다.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11월 7~8일 500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양자 대결은 55.5% 대 41.3%로 격차가 14.2%포인트에 불과했다. 박 후보와 안 후보의 양자 대결은 53.3% 대 44.0%로 격차는 9.3%포인트에 그쳤다.

부산 민심이 변한 원인으로 많은 사람이 지역 경제 악화를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가 해양수산부를 폐지하고 신공항 건설이 무산돼 지역 경제가 발전할 계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한진중공업 사태로 지역 민심은 더 악화됐다. 현영희 의원 공천헌금 사건 등도 새누리당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했다.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낸 자료 ‘전국 및 주요 대도시 실업률’에 따르면 2012년 9월 현재 부산의 실업률은 6개 광역시 중 인천 다음으로 높고 고용률도 55.7%에 불과하다.

김영춘 민주당 부산선대위 공동위원장은 “기존 새누리당 유권자 중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려는 분들이 많다”며 “부산은 예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상당히 몰락했고 삶의 질 조사에서 16개 시·도 중 최하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상실감과 박탈감이 시민들 사이에서 나타나자 ‘아무리 여당 밀어줘도 별거 없구나’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부산 출신 후보를 밀어 부산을 부활시켜보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부산에 외지인이 늘어난 것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었다. 부산 호남향우회에 따르면 부산 시민 358만여 명 중 호남 출신 인구는 80만 명에 이른다. 자영업을 하는 김종만(51)씨는 “부산에 은근히 전라도 쪽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전라도는 다 문재인 아닌가”라며 “부산에선 여러모로 문재인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단일화와 대선 공약 정리돼야 판단 가능”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부산 출신임을 강조하는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목소리가 먹혀들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아무래도 TK(대구ㆍ경북) 출신 아닙니꺼”란 말이 나도는 것이다. 전일수 전 부산시 시의회 의원은 “놀랍게도 평생 새누리당을 지지해온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은 부산 사람 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부산 신공항 등을 해결하기 위해 부산 사람에게 힘을 모아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곽모(경남고 39회)씨는 “경남고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도 많지만 참모와 대통령 후보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비상이다. 박근혜 후보는 9월 24일 전국 시·도당 선대위 중 가장 먼저 부산에서 선대위 발대식을 했다. 부산 선대위원장인 정의화 의원은 “이번 부산 선거는 나머지 두 후보가 부산 사람이기 때문에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이진복 부산선대위 총괄본부장도 “부산 출신인 두 야권 후보가 설쳐대니까 우리까지 부산스럽다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단일화가 되면 두 후보에서 한 후보로 줄어들 테니 우리로서는 오히려 부담이 덜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부동층이 많이 있는데 후보 단일화가 되고 공약 문제가 제대로 정리되면 그때 부산 여론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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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