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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출신이 비장한 장발장이라… 유쾌한 배반이죠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마침내 한국어 공연의 막을 올렸다. 경기도 용인에 최근 개관한 포은아트홀(25일까지)을 시작으로 대구·부산을 거쳐 내년 4월 서울 블루스퀘어 입성까지 장장 10개월에 걸친 여정에 총 20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붓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레미제라블’은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하소설을 작곡가 클로드 미셸 손버그와 전설의 흥행사 캐머런 매킨토시가 최고의 상업뮤지컬로 빚어냈다. 1985년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이래 27년간 43개국에서 6000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 지금도 런던 퀸스시어터에서 ‘세계 최장수 뮤지컬’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등 이른바 4대 뮤지컬 중 유일하게 정식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지 못했었다.

‘레미제라블’의 한국어 공연이 이제야 성사된 것은 오리지널 프로덕션 측에서 캐스팅에서 마케팅까지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할 완벽한 준비를 요구했기 때문.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지금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연출가 로런스 코너를 비롯한 런던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 전원이 내한해 역사적인 첫 무대에 기여하고 있다.

4대 뮤지컬을 죄다 프로듀스한 카메론 매킨토시는 한국어 초연을 위해 대한민국 뮤지컬 역사상 유례없이 까다로운 오디션을 진행했고, 7개월에 걸친 오디션 끝에 전 배역을 직접 캐스팅했다. 모든 남성 뮤지컬 배우가 꿈꾸던 장발장 역은 ‘영웅’으로 2010년 국내 양대 뮤지컬 상을 휩쓸었던 정성화(37)가 거머쥐었다.

뮤지컬 배우와 인기 연예인을 두루 포진시켜 ‘입맛대로 골라보는’ 쿼드러플, 퀸터플 캐스팅이 대세인 요즘 유례없는 원캐스팅으로 모든 무대의 완성도를 보장하겠다는 캐머런 매킨토시의 고집을 만족시킨 ‘최고의 배우’가 바로 개그맨 출신의 정성화라니, 뒷말도 많았다. 모든 우려는 막이 오르자 씻은 듯 사라졌다. 10개월 대항해는 이제 막 닻을 올렸을 뿐이지만 3시간 내내 휘몰아치는 특별한 감동의 무대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레미제라블’의 새로운 역사, 그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정성화를 만났다.

오디션에 뽑히니 세상 다 얻은 것 같더라
-호평 일색이다. 막상 최고의 무대에 서니 어떤가.
“뮤지컬 배우로 나서면서부터 막연히 꿈꿔 왔던 무대다. 오디션에서 뽑히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엄청난 희열이 있었는데, 연습이 가까와오자 두려움이 생기고 겸손해졌다. 지금은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부담감이 크다. 영광 같은 건 끝난 뒤에나 다시 느낄 것 같다.”

-모든 뮤지컬 배우가 선망하는 역할을 따냈는데 주변 반응은.
“동료 배우들은 대부분 지지해 주는데 SNS를 통해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정성화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다, 정성화라면 보지 않을 거다 등. ‘맨 오브 라만차’ 때도 느낀 건데, 모든 이가 자기만의 돈키호테를 품고 각자의 돈키호테를 나에게 요구하더라. ‘돈키호테는 좀 더 미친 사람이어야 돼’ ‘돈키호테가 너무 희화화되면 안 돼’ 등 다 한마디씩 하는 게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러니 레미제라블은 얼마나 더 하겠나. 각자 자기만의 장발장이 있을 거다.”

-장발장이 원톱으로 극 전체를 끌어가는 역할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객석을 휘어잡아 이끄는 역할만 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안에서 이끌려 가야 한다. 튀지도 않고 튀려 할 수도 없는 역할이지만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발장의 삶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그런 삶이나 배우로서 이런 움직임도 굉장히 행복한 거구나,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끝없는 생명력의 비밀은 그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음악이다.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비장한 선율의 장엄한 음악이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감동의 바다다. 2009년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전한 아줌마 가수 수전 보일의 인생역전 계기가 된 ‘I Dreamed a Dream’, 미국 대통령선거 유세장에서 울려퍼졌던 ‘One Day More’를 비롯해‘Do You Hear the People Sing?’ 등 27년 동안 다양한 계기로 우리 귀에 친숙해진 호소력 짙은 넘버들이 3시간 동안 객석을 얼어붙게 만든다.

-오디션을 다섯 차례나 본 것은 워낙 고난도의 곡들이기 때문인가.
“장발장의 노래들은 정말 어렵고 아직도 정복해 가야 할 곡들이다. ‘Bring Him Home’의 경우는 혹시라도 관객에게 누가 되는 음이 나오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습한다. 오디션은 정말 특별했다. 첫날 한 곡을 부르면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다시 부르게 한다. 다음날 다시 첫 곡과 두 번째 곡을 부르게 하고 다시 지적해서 그 다음날은 다시 처음부터… 그렇게 가능성을 보고 계속 만들어가는 식으로 오디션을 보니 끝날 때쯤에는 어느 정도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기준에 맞춰져 있더라. 모든 배역을 다 그런 과정을 거쳐 뽑으니 앙상블들도 주연급 실력을 갖췄다. 다른 작품에선 내가 제일 노래를 잘하는 축인데, 여기서는 10위권에도 못 든다. 어떤 노래도 무난히 소화해낼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막내라고 앉아 있으니 늘 긴장된다.”

-자베르 경감 역이 중저음의 음역대와 더 맞는 것 아닌가.
“자베르는 원래 내 음역대에 잘 맞아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장발장은 도전이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그런 도전을 해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장발장을 지원했다.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뭔가를 성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노래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들었다.
“어릴 때 교회 성가대를 했고 원래 노래 좀 한다는 소릴 들었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건 성대모사다. 데뷔 초 집이 인천이었는데 매일 서울까지 운전하면서 꽉 막힌 경인고속도로에서 가스펠 가수 박종호씨의 CCM을 2시간 동안 따라 불렀다. 그 습관이 나에게 이렇게 멋진 것을 가져다 줄지 몰랐다.”

지금이 정점? 일흔 살까지 계속 발전할 것
고교시절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던 정성화는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스타성을 인정받지 못해 한동안 방황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며 드라마 조연과 연극판을 전전하던 중 그의 연극을 본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의 눈에 띄어 2003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캐스팅된 것이 뮤지컬 인생의 시작이었다.

-개그맨 출신이라 조연에 머물기 쉬웠을 텐데 2007년 ‘맨 오브 라만차’ 때 산초 역을 거절하고 조승우와 당당히 더블캐스팅된 것이 전환점이 됐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을 크게 바꾼 계기다. 그때 오디뮤지컬 신춘수 대표가 제의한 산초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돈키호테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오디션 기회를 줬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신 대표는 처음부터 내가 돈키호테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내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할 수 있다고 나서니 그럼 한번 증명해 보라, 이렇게 된 거다. 자신감 있게 나섰던 게 인생을 바꿨다.”

-당시 개그맨 이미지를 털려고 오히려 진지한 돈키호테를 연기했나.
“작품 특성이 웃기려면 얼마든지 웃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작품 질에서 차이가 난다. 가벼워지면 사람들 마음이 그쪽으로 쏠려 진정한 깊이와 내면을 발견하지 못한다. 좀 잔잔하게 만들어 놔야 그 깊이를 애써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희극배우가 한다고 희극처럼 보이면 그것처럼 후진 것도 없다. ‘내가 하면 웃길 거라 생각하겠지? 전혀 웃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기대는 깨줘야 흥미롭다. 안중근 의사 다음에 코믹한 게이 엄마가 되었다가(뮤지컬 ‘라카지’) 다시 비장한 장발장으로 빠져나온 것도 그런 유쾌한 배반이다.”

-개그를 포기하고 무대를 택할 때 갈등은 없었나.
“사실상 데뷔작인 ‘아이 러브 유’ 때 운명적으로 남경주 선배를 만나 2년 동안 함께 하며 정말 크게 배웠다. 뮤지컬의 대스타로서 방송물 좀 먹은 놈이 깝죽거리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 나를 인정해줬다. 그리고 조금씩 가르쳐 줬다. ‘술 대신에 책을 읽자’길래 뭔 소린가 하면서도 워낙 존경하니 따르게 되더라. 그때 많이 배우면서 방향을 정리했다. ”

-영화나 드라마에선 여전히 조연이 주어지는데.
“계속 담금질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쪽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을 거라 믿는다. 어떤 분들은 내가 지금 정점을 찍었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이 너무나 멀다. 70세가 될 때까지 계속 발전해 갈 거다. 남경주 선배처럼 자기관리 잘하면서, 신동엽 선배처럼 남들 다 배려하는 톱스타가 되어, 정보석 선배처럼 가정적이고 자기의 연기철학을 가진 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 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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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