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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날 수 없는 밥벌이의 굴레

알베르 카뮈는 “카프카 예술의 요체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고 썼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고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은 첫 문장부터 황당하다. 가령 고독의 3부작이라고 하는 『소송』과 『성』『아메리카』(『실종자』라고도 한다)를 차례대로 보자.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게 분명했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아침 느닷없이 그가 체포되었기 때문이다.”(은행 부장인 요제프 K는 서른 번째 생일날 이렇게 체포돼 원인 불명의 소송 때문에 1년 내내 동분서주하다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밤 “개 같군!”이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처형된다. )

“K는 밤 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마을은 깊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안개와 어둠에 둘러싸여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고, 커다란 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아주 희미한 불빛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측량기사 K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안갯속만 헤맨다. )

“열일곱 살의 카알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양친은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로스만은 부단히 노력하지만 가는 곳마다 계속해서 교묘하게 추방당하고, 끝내 실종되는 존재가 된다. )

이건 도대체가 납득이 안 된다. 그래도 『변신(The Metamorphosis)』의 첫 문장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등은 장갑차처럼 딱딱하고, 배는 활 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져 불룩하고, 여러 개의 다리는 형편없이 가늘어져 허우적거린다. 그런데도 아무런 이유도, 그럴듯한 설명도 없이 그냥 거기서 시작한다.

사실 이 자체로도 엄청난 충격이지만, 더 큰 충격은 그레고르가 전혀 충격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불편할 뿐이다. 기껏해야 좋지 않은 자세로 자는 바람에 일어나보니 목이 결리고 팔이 저리는 정도로 느낀다.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벌레로 변하는 바람에 직장에 나가지 못해 돈을 못 버는 것이다. 외판원 일자리를 잃으면 사장이 빚 독촉을 할 텐데. 뭐 이런 걱정이다.

가족들은 현실에 빨리 적응한다. 아버지는 은행 경비원으로 나가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여동생은 점원 일을 한다. 그레고르는 이제 그들에게 가족이 아니라 괴물일 뿐이다. 그레고르는 여전히 가족과 삶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건만 가족들은 냉대와 증오, 폭력으로 대한다. 그레고르는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채로 온통 먼지로 뒤덮이고 굶어서 비쩍 마른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가족들은 그의 주검 앞에서 신께 감사드리고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 새로운 꿈을 확인해 본다.

『변신』에 대한 대체적인 해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개인의 불안과 압박감, 이것에 짓눌리다 마침내 한 마리 해충으로 변신하면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괴물 취급을 받으며 고독하게 죽어가야 한다.

슬픈 얘기다. 하긴 카프카적(kafkaesk)이라는 단어도 그런 의미다. 이 말은 비인간화된 악몽 같은 세계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외로움, 당황, 그리고 불확실한 운명에 어쩔 수 없이 내맡겨진 상태를 나타낸다.

“목표는 있다. 그러나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고 하는 것은 망설임뿐이다.” 카프카의 노트에 적힌 문구처럼 그의 삶도 무척 어두웠다. 체코에 살면서 독일어를 쓰고, 유대인이면서 시온주의를 반대해 어느 공동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폐병으로 젊어서부터 병약했고, 약혼과 파혼을 반복하면서 결혼에 실패했다.

그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관 수습까지 마쳤지만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준국영 보험회사에 법률고문관으로 취직해 죽기 2년 전까지 근무했다. 서두에 인용한 글은 『시포스의 신화』에 나오는 것이다. 카뮈는 카프카가 내리는 판결은 “두더지들까지 희망을 가지려고 덤비는 추악하고 어지러운 이 세계를 끝내 무죄 방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희망은 무죄다.

『변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그레고르가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 부분이다.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짐승이란 말인가? 마치 그리워하던, 미지의 양식에 이르는 길이 그에게 나타난 것만 같았다.” 카프카가 밤 늦게까지 글을 썼던 것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망의 선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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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