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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1부인’ … 시진핑 내조하는 펑리위안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두 번째 부인 펑리위안. 1987년 9월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인기 가수 펑리위안을 보고 의아해 하다가 시진핑이 새 아내라고 소개하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중앙포토]

노래하는 퍼스트레이디. 15일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習近平·59)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50)은 가수다. 빼어난 미모와 고운 목소리로 이미 오래전 중국의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다. ‘모란의 요정’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가 태어난 산둥(山東)성은 모란으로 유명하다. 이제 펑리위안은 남편의 1인자 등극과 함께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까지 끌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를 떠올릴 만하다.

 펑리위안은 가수 이상이다. 노래 중 90%는 공산당 업적을 찬양하는 선전 가요다. 이미 18세 때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산하 가무단에 스카우트돼 군 소속 가수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이 키운 첫 번째 민족음악 석사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군 산하 가무단을 이끄는 인민해방군 소장(우리의 준장)이다.

 그는 1982년 중국중앙방송(CC-TV)의 설 특집 프로그램에서 부른 ‘희망의 들녘에서’란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시진핑이 부주석으로 지목된 2007년까지 25년간 그 무대를 지켰다. 그의 남다른 재능은 허쩌(荷澤)현 문화관장을 지낸 부친과 극단 단원이었던 모친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가 문화 외교 사절로서 시진핑을 내조하는 데 힘쓴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9년 당시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함께 방문한 일본에서 그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즉위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인 애창곡 ‘사계절의 노래’를 열창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는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 2주 후 시진핑 측은 일왕 부부 접견을 타진했다. 그리고 2주 만에 일왕을 만날 수 있었다. 최소 한 달 전에는 신청해야 접견할 수 있는 관례에 비추어 시진핑 부부를 파격적으로 환대한 것이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나날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펑 여사에 대한 외교적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신혼 시절의 시진핑과 펑리위안.
 인민해방군 예술학원 총장, 전국문학예술계연합회 부주석,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 등 펑 여사의 직함은 한마디로 화려하다. 홍콩 월간 명경(明鏡)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펑리위안은 중화전국청년연합회 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화전국청년연합회는 시진핑 세력이 약한 공산주의청년단의 주축을 이루는 단체다. 시진핑은 전인대 부위원장을 지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서 태자당에 속하지만 펑 여사의 활약에 힘입어 양측을 아우를 수 있게 됐다. 명경은 “이미 많은 후진타오(胡錦濤) 수하의 공청단 인사가 시진핑 쪽에 의지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벌써 충성을 맹세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펑리위안의 행보를 두고 중국 안팎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펑 여사가 ‘죽의 장막’을 거두고 서방 국가의 퍼스트레이디처럼 개방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런민(人民)대 정치학과 장밍(張鳴) 교수는 “펑 여사의 개방성이 활동을 비밀에 부치는 중국 지도부의 전통을 바꿀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퍼스트레이디로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펑리위안이 쑹메이링의 길을 간다면 많은 비판이 있을 것”이라며 “중국은 영국 다이애나 왕비 등을 칭송하는 서방과 달리 여성을 우상화하는 데 익숙지 않다”고 지적했다. 모친이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에게 영어를 가르쳤다는 한 패션 에디터는 “ 중국에서 여성과 권력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는 마오 전 주석 사후에 4인방으로 몰려 투옥된 마오 부인 장칭(江靑)의 전기를 썼던 작가 로스 테릴의 분석과 상통한다. 그는 “중국 전통 여성상에는 순종형과 여왕형 두 가지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권력자의 부인이 순종하지 않으면 남편이 국정 운영을 망치게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중국에서는 지도자의 아내라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없는 듯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올해 상무위원 진입을 바라보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여왕형’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살인 사건에 휘말려 권력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펑리위안은 가수 활동을 자제하고 공익 자선사업에 집중해왔다. 그는 2008년 쓰촨(四川)성 대지진 당시 딸 시밍쩌(習明澤·19)와 함께 재난 지역을 찾아 자선활동을 펼쳐 남편 시진핑의 ‘냉정한’ 이미지를 누그러뜨렸다. 지난해엔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결핵예방 친선대사를 맡는가 하면 올해는 빌 게이츠와 함께 금연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공식석상에 거의 등장하지 않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부인 줘린(卓琳), 장쩌민(江澤民)의 부인 왕예핑(王冶坪), 후진타오(胡錦濤)의 부인 류융칭(劉永淸) 등과는 다른 모습이다.

 중국 매체들은 펑리위안에 대해 튀는 행보보다는 가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강조한다. 시진핑과 사귄 지 1년도 안 돼 단출한 결혼식을 올렸다거나 딸 시밍쩌를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 보낸 ‘호랑이 엄마’라고 보도하는 식이다. 펑 여사가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 흥정하는 보통 주부라는 점을 국영 매체가 부각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2006년 한·중 가요제 참석차 혼자 방한한 펑 여사를 만났던 KBS 관계자는 “매우 소탈하고 순수했다”며 “저장성 서기의 부인이자 현역 장군이던 그가 수행원 없이 직접 화장하고 혼자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가 86년 처음 친구 소개로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부시장이었던 시진핑을 만난 일화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펑리위안은 나이 들어 보이는 시진핑 외모에 실망했으나 “성악에는 몇 가지 창법이 있나요”라는 첫 질문을 받는 순간부터 그에게 끌렸다고 고백했다. “출연료는 얼마나 받나요” 등 통속적 질문이 아니어서 소박하고 진실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화설·별거설도 종종 흘러나왔다. 각자 일 때문에 시진핑은 샤먼에 남고 펑 여사는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등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온 탓이다. 시진핑의 경우 90년부터 15년 넘게 푸젠성 둥난(東南)TV 아나운서 멍쉐(夢雪)와 현지에서 부부처럼 생활했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시진핑이 베이징으로 온 뒤 자연스레 고약한 소문들이 사라졌다. 관영 중국신문주간(中國新聞週刊)은 펑 여사가 인터뷰에서 “시진핑은 정직하고 사려 깊은 이상적인 남편”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중국문제 연구원 리청(李成)은 “지도자는 대중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줘야 한다”며 “중국의 새 지도자로서 이들 부부도 능력 발휘와 내조의 두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팔색조 같은 모습을 보여줬던 펑리위안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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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