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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2400년 전 소크라테스의 도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아테네의 변명
베터니 휴즈 지음
강경이 옮김, 옥당, 620쪽
2만8000원


2400년 전, 당신이 아테네 저잣거리를 걷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당신에게 다가와 말 걸고 싶어하는 괴짜 노인과 마주쳤을 것이다. 맨발에 낡은 얇은 옷을 걸친 이 남자는 당신에게 두서 없는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그리스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크세노폰도 처음에 그를 그렇게 만났다. 노인은 처음엔 가재도구 이름을 대며 “어디에서 그것을 구할 수 있느냐”고, 이어 “용감하고 덕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순진한 청년이 어리둥절해하자 노인은 “더 깨우치고 싶다면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 노인이 인류 역사상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소크라테스(BC 469 ?~BC 399)다. 크세노폰은 후에 소라테스 주변을 맴도는 젊은이 중의 한 사람이 됐고 『소크라테스 회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기원전 399년 5월, 이 괴짜 노인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정에 섰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는 사약(독당근즙)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영국 역사가이자 다큐멘터리 진행자인 베터니 휴즈의 말을 빌리면 직접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테네의 변명』을 쓴 베터니 휴즈는 다시 묻는다. 아테네 사람들은 왜 일흔 노인인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잘못은 정말 그렇게 컸을까.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한 것일까.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단초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역사를 추적한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문명사 이야기를 함께 엮어낸 방식이 압권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분위기를 영상 다큐멘터리의 가상현실 드라마처럼 입체적으로 재현해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최초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실험에 열정을 쏟았다. 그리스는 1000년 동안 참주정(僭主政·무력 및 정치적 영향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에 의한 정치)이 이어져왔는데,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전인 기원전 508년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아테네의 민중(demos)이 친민중 계열 귀족의 지원을 받아 친스파르타 계열 귀족을 몰아낸 것이다. 데모스 크라티아(demos kratia), 즉 민중권력이 등장한 최초의 사건이다. 이후 아테네는 시민이 직접 국정을 운영하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 열광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는 유별나게 말을 중시했다. 말재주로 갑자기 영향력을 얻은 사람을 질투하기도, 숭배하기도 했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섰을 당시 아테네는 상처받은 도시였다. 두 차례 스파르타와 전쟁(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치른 후였고, 도시에는 역병이 나돌았다. 참주정이 넉 달간 부활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런 힘겨운 상황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회의 질환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근본을 주장했다. 남들이 돈에 빠져있을 때 배금주의를 질타했다. “사리를 추구하기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적 가치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에 방점을 찍었다. 올림푸스의 신이 아니라 인간이 사람을 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집단주의에 사로잡힌 아테네 사람들에게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개인적 자유를 누릴 능력을 똑같이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압축하자면 그는 민주주의를 극한까지 끌고 갔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무기는 말이었다. 그는 당대 젊은이들이 광장에서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사실이 훗날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그의 말은 위협적이었다. 당대의 아테네는 반대론자가 아니라 영웅을, 질문이 아니라 대답을 원했다. 더구나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하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인물과 참주정의 핵심 권력자가 그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그를 법정으로 몰아갔다. 아네테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골치 아픈 이 철학자를 ‘제거’해야 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야 말로 직접 민주주의의 열매이자 희생자였으며, 당시 위대함과 잔인함이 공존했던 아테네의 모습을 가장 잘 증언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고대 민주주의는 역사에서 고작 180년 정도 지속됐고, 근대에 들어서야 민주정이 다시 돌아왔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지금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대선을 앞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24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진실과, 덕, 정의,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증언한 소크라테스에게서 현재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숱한 어려움을 곱씹게 한다.

 표현의 자유를 허용했다고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합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대목도 그 중의 하나다. “우리가 동의에 이르지 못하고 충분한 대답에 다다르지 못할 때 우리는 서로 적이 되는 것 아니겠소. 나와 당신 모든 이가 말이오”(프라톤의 ‘에우티프론’)란 말이 대표적이다.

 그렇다. 표현의 자유는 혼자 오지 않았다. 자유로운 중상모략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가지고 왔다. “제게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은 이 증오라는 것입니다. (…) 많은 사람의 편견과 악의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제 소송으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물질주의가 팽배한 사회, 화려한 수사가 각광받는 이 시대에 인간 사회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올바른 것(the good)인가라고 물은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지금 우리 세계의 모습과 끊임없이 중첩된다. 지금의 민주주의 역시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 여전히 실험 중이라는 큰 메시지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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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