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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시라 남편 "7년간 못벌다 삼성서 찾아와…"

‘음악과 사업 중 어느 게 더 좋으냐’는 질문에 김태욱 아이웨딩네트웍스 대표는 “예전에 음악할 때는 4인조 밴드를 했는데 사업을 하는 지금은 200인조 밴드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사진 아이웨딩네트웍스]
배우 채시라씨의 남편. 전직 가수. 웨딩업체 대표. 김태욱(43)씨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그쯤이다. 그가 국내 웨딩업계의 선두주자인 ㈜아이웨딩네트웍스를 13년간 일궈왔고, 중국 시장에 진출해 서울 강남과 제주를 중국 상류층 혼인의 메카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그가 최근 본격적인 중국 시장 진출에 나섰다. 지난 6월 중국 최대의 여행기업인 CITS(중국국제여행사)와 제휴해 서울 강남과 제주를 찾는 웨딩 관광객을 전담 서비스하기로 하면서다.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중국 진출에 대한 꿈과 함께 허례허식 가득한 한국의 결혼 문화를 바꾸겠다는 포부를 서슴없이 밝혔다.

한국식 결혼은 중국 바링허우 세대의 꿈

●중국 시장 개척에 나섰는데.

 “현재 상하이 지사가 있고 베이징 지사를 준비 중이다. 2009년부터 중국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다.”

●왜 중국인가.

 “중국은 1년에 1000만 쌍 정도가 결혼하는 150조원 시장이다. 중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고 부유층이 늘면서 고급스러운 결혼식에 대한 동경이 커졌다. 실제로 2009년부터 중국 고객들이 ‘한국식으로 결혼하고 싶다’며 알음알음 사무실을 찾아왔다. 바링허우 세대(1980년대생)에겐 웨딩의 메카인 서울 강남에서 결혼하고 한국식으로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메이크업 등을 하는 게 자부심이자 유행이다.”

●중국 웨딩객을 제주에 유치하려 한다고 들었다.

 “지난해 말 하와이에 가서 보니 모든 부가가치가 웨딩 고객들에게서 나오더라. 자연스레 제주도가 떠올랐다. 하와이 마오이와 빅 아일랜드를 합친 것 같은 기가 막힌 섬인데 제주도를 왜 버려두고 있나 싶었다. 게다가 중국인은 제주도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제주로 사람을 보냈다는 설화가 있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평생 잘살 수 있고 아들을 낳는다는 등 스토리 텔링도 잘돼 있다.”

●신혼여행객이 굳이 제주를 찾겠나.

 “그간 제주에 중국 신혼 관광객이 적었던 것은 웨딩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 시설이나 서비스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에서도 서울 강남 수준의 웨딩상품을 제공하고 3~4일간 머물며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현재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 진출이 아닌 중국 관광객의 한국 진출 같다.

 “목표는 외국 관광객의 한국 유치다. 다방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마시듯 중국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웨딩은 하나의 문화이자 브랜드가 됐다. 이미 중국에서도 ‘한류 웨딩관광’이란 상품을 만들어 한국으로 보내려 하고 있다. 국내 50만원 패키지로 100명 관광객이 오면 5000만원이다. 반면 웨딩 고객은 두세 쌍만 오면 그만큼 돈을 쓴다. 웨딩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해야 하는 이유다.”

결혼식 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 낭비

 그에게서 결혼산업 10년 종사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연예인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그에게 옛얘기를 꺼냈다.

지난 10월 한 중국인 커플이 친구들과 함께 제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사진 아이웨딩네트웍스]

●어느 날 갑자기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1998년 목에 문제가 생겼다.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 당시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한 데 대한 스트레스와 꿈의 고갈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 같다. 노래는커녕 1년여간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오랜 기간 노래를 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AFKN에서 비틀스 공연을 보고 신내림을 받듯 음악에만 미쳤다. 중·고등학교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건 들국화와 롤링 스톤스,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새로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부터 가요 순위에 들거나 음반이 많이 팔리는 건 지나가는 트렌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개척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노래도 대부분 내가 만들거나 언더그라운드의 색깔 있는 뮤지션들에게 받았는데, 갑자기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음악에서 이루지 못한 걸 사업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남들이 하는 걸 따라가서 적당한 이익을 내는 게 아니라 누구도 손대지 않은 영역을 개척해 작더라도 단단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웨딩 사업이었나.

 “국내에서 1년에 30만 쌍이 결혼한다. 집 마련을 제외한 결혼시장이 10조원 가까이 됐는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전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가격 정찰제도 없었고 그저 부모님 따라다니며 준비하는 거였다. 그러니 소개사는 자기에게 웃돈 더 주는 업체로 다니고 고객은 끌려다니기만 할 뿐이다. 마침 내가 결혼하면서 그 이유를 살펴보니 결혼이란 테마 안에 너무 많은 상품이 있고, 그것을 다 소화하기까지 2~6개월씩 걸리니 관리가 안 돼 그런 것이더라. 드레스만 해도 업체를 선택하고 입어보고 가봉하고 결혼식 당일에 입는다. 한데 일단 돈을 지불하면 결혼식날 서비스가 소홀해도 고객은 어쩔 도리가 없다. 혼수도 주문하고 집에 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예단도 복잡해 눈속임이 들어갈 우려가 크다. 이렇게 복잡한 웨딩 상품을 IT를 이용해 시스템화하면 모두에게 이익일 거라고 봤다.”

●시스템화가 뭔가.

 “결혼을 통틀어서 필요한 모든 절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플랫폼을 구성한 것이다. 결혼시장에 유통 개념을 넣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직접 예식장이나 메이크업 등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식장·음식·미용·웨딩촬영·신혼여행 등 일련의 상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고객에겐 무엇이 좋은가.

 “고객들이 철저히 비교 평가하게 한 뒤 좋은 평가를 받은 업체와 제휴하고, 정찰제를 철저히 시행해 바가지나 눈속임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또한 경쟁력 있는 결혼상품이 고객들에게 공급되도록 계속 필터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통 중심 결혼 문화 정착시키고 싶어

 시종 청산유수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최고의 여배우와 결혼하고 사업도 성공한 남자.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을까.

●처음부터 잘나갔나.

 “스스로는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한 건 2000년이었는데 그 후로 7년간은 한 푼도 못 벌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결혼식이 비효율적이니 없애버리자는 생각으로 ‘인터넷 결혼식’을 구상했다. 컴퓨터로 식을 보고 축의금도 내고 축하글을 남기는 온라인상의 삶을 꿈꿨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월급은 줘야겠고 돈은 없어서 금융권에 대출받고, 고금리 대출에까지 손을 뻗었다. 나중에는 그거 메우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굶어죽게 생겼는데 그제야 유통이 보이더라.”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업에 대해선 일절 손 벌린 적 없다. 지나고 보니 아내가 불안했을 법도 한데 그런 것들을 표현하지 않고 늘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더라. 대신 ‘혹시라도 가다가 쓰러지면 돌아갈 구석은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줬다.”

●원래 집안도 부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닌 걸로 밝혀졌는데?(웃음) 어머니는 늘 ‘아들이 18세에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도움을 전혀 안 받고 혼자 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업하면서 손 벌린 적은 없다. 가수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음악도 직접 작곡했고 녹음도 스스로 하고 홍보도 직접 하고 음반사에 유통까지 했다.”

●사업이 안정화된 계기는.

 “2006년 삼성에서 찾아왔다. 회사 임직원들의 업무 능률에 대해 조사했더니 결혼을 앞둔 처녀·총각들의 능률이 많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더라. 삼성 측에서 ‘너희 시스템 얘기를 들었는데 재밌다. 우리에게 실사를 받을 용의가 있느냐’고 제의해왔다. 6개월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본 삼성 측에서 훌륭하다며 웨딩 제휴를 요청했고, 그 뒤로 국내 30여 개 대기업이 우리와 제휴를 맺었다. 그때부터 의미 있는 성장을 하게 됐다.”

●아이웨딩 같은 유통회사가 생기면서 결혼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 것 같다.

 “그건 오해다. 우리는 작은 결혼식을 지향한다. 지금까진 바가지와 뒤통수가 성행한 웨딩시장을 시스템화했다면 이제는 결혼 문화를 바꾸는 것이 꿈이다. 지금의 결혼은 돈과 상품만 있다. 결혼 준비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도 적잖다. 예단이나 예물을 할 때 서로 의견이 어긋나 마음 상하기도 하고, 형편에 맞지 않게 무리했다가 결혼하고 나서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사채를 빌려 혼수와 예단을 해간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나. 이런 것들이 사라지려면 소통의 문화가 필요하다.”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가.

 “예단이나 예식 비용을 줄이는 대신 양가가 함께 여행을 가는 거다. 한 가정이 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상대의 형편도 알아가며 결혼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또 신부 아버지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딸을 위한 축가를 직접 부르는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웨딩 촬영도 예비 부부뿐 아니라 양가가 모두 함께 참여하고. 이런 일련의 결혼 준비 과정이 모두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이혼율도 줄어들고 상대 가정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거다.”

 그는 “2015년에는 돈과 상품만 있는 지금의 결혼을 소통 중심의 결혼 문화로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장담했다. ‘웨딩업계의 들국화’를 꿈꾸는 그가 만들어낼 다음 결혼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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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