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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나, 인문학 하는 여자예요

여수빈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3학년
내 전공은 ‘서어서문학’이다. 사람들에게 말하면 십중팔구 되묻는다. “서어서문이 뭔데? 서양 어문이야?” 사실 서어서문학과는 서반아(西班牙), 즉 스페인의 언어와 문학에 대해 배우는 학과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재차 묻는다. “그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어?”

 맞다. 당장 기업의 눈으로 보면 참 써먹을 데 없는 학과다. 다른 학부생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숫자와 씨름하는 동안 나는 세르반테스와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고, 인디오의 예언서를 읽는다. 그들의 작품 속에서 나는 라 만차의 평원을 누리는 돈키호테가 되어 보기도 하고, 고대 멕시코의 아즈텍 왕국을 그려보기도 한다. 비단 서문과뿐만이 아니라 이는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특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라는 높은 벽은 자주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을 가로막곤 한다. 소위 ‘문사철’ 학과는 취업 시장에서 찬밥대우를 받기 일쑤다. 당장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어서다. 어느 샌가 학문의 가치를 자본주의적 효용에 따라 평가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대학 평가에 취업률이 중요한 항목으로 꼽히고, 학문을 가르쳐야 할 교수들이 건물 증축을 위해 영업에 뛰어드는 실정이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캠퍼스에서 보내는 4년을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태반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왔으니, 다음 목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란 생각이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머리에 시스템처럼 입력되어 있다.

 인문학 전공자는 서류 전형에 합격하기가 더 어려워 다른 스펙을 따는 데 더욱 열을 올린다. 돈 안 되는 대학공부니 등록금이라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이해는 간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이 등장한 지도 이미 오래다. 인문학의 위기는 순수학문의 위기를 증명한다. 그러나 정작 인문학을 위태롭게 하는 건 따로 있다. 학문의 영역에서 사회로 나오는 것을 겁내는 소통 부재와 현실을 이유로 인문학의 위치를 ‘써먹을 데 없다’고 규정짓는 인문학도들의 자조다.

 인문학이 먼저 높은 벽에서 나와야 한다. 인문학을 위태롭게 하는 편견들로부터 스스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기업과 학계에서 인문학과의 통섭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바람직한 시도다. 인문학은 천성적으로 가난하지만 인문학적 사유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치열하게 읽고, 이해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인문학도들이 제일 잘하는 일이고, 가장 인문학도다운 ‘스펙’이다.

 중세의 오랜 터널을 끝내고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이었다. 위태로운 한국 사회가 다시금 도약할 수 있는 힘은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결국은 인문학이 필요한 시대다. 그러니 나를 포함한 인문학도들이여, 좌절하지 말지어다.

여수빈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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