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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은 인격체입니다 포개서 쌓으면 실례지요 그래서 계단식이랍니다

카스텔라레의 ‘로카 디 프라시넬로’ 와이너리는 와인 저장고도 독특하다. 마치 실내 경기장이나 공연장 같이 생긴 저장고에 225ℓ오크통을 2500개까지 보관할 수 있다.


가야- 이탈리아 와인의 혁명 … 파커가 평한 곳



가야 와이너리에선 운 좋게도 대표 안젤로 가야(72)의 안내를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안젤로 가야는 대표적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이탈리아 와인의 혁명은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평했던 인물이다. 가야 와이너리는 피에몬테주 알바시의 바르바레스코 마을에 있다. 알프스 끝자락 랑게 지역에 자리잡은 바르바레스코는 인구 600여 명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로 꼽히는 곳이다.



가야 와이너리의 대표 안젤로 가야. 와이너리에 걸려있는 자신의 아버지 사진을 가리키며 “내게 장인정신을 가르쳐준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가야 와이너리는 1859년 안젤로 가야의 증조부가 문을 열었다.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직접 키운 포도로 만든 와인을 판 것이 출발이었다. 와인만 따로 팔라는 손님이 점점 많아지자 1912년부터는 아예 음식점 문을 닫고 와인만 생산하고 있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안젤로 가야는 과거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가 와이너리를 맡은 60년대 이후 ‘혁명’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탈리아 전통의 큰 나무통 대신 프랑스산 작은 오크통을 사용해 와인을 숙성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또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와인의 가장 높은 등급인 ‘DOCG’ 등급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와인법에 따르면 네비올로 품종 포도만 사용해야 ‘DOCG’ 등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젤로 가야는 96년 빈티지부터 바르베라 등 다른 품종을 섞기 시작했고 등급은 ‘DOC’로 떨어졌다. 하지만 ‘DOCG보다 더 비싼 DOC 와인’을 탄생시킨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가야 와이너리의 투어 프로그램은 독특했다. 와인 생산 시설을 보여주며 공정을 설명하는 대신 갤러리처럼 생긴 전시관으로 먼저 데려갔다. 증조부 때부터 내려온 와이너리 바로 앞 건물 ‘바르바레스코 성’에 마련된 공간이었다. 1600년대 말 세워진 성을 안젤로 가야가 93년 구입해 와이너리 부속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관 벽에는 가야 가문의 가족 사진과 가야 와인의 라벨 등이 걸려 있었다. 안젤로 가야는 아버지 조반니 가야(1908~2002)의 사진을 가리키며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장인정신을 배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포도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엔 와인을 만들지 않으셨죠. 포도 품질이 떨어질 때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선 저렴한 세컨드 와인을 만들지만, 아버지는 도매상에 포도를 헐값으로 팔아버리셨어요. 돈 대신 자존심을 지키신 거죠.”



 안젤로 가야 역시 포도 품질이 떨어진 2002년엔 레드 와인을 생산하지 않았다. 또 “규모가 커지면 품질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와이너리 규모도 늘리지 않고 있다. 가야 와이너리의 포도 재배 면적은 100만㎡. 연간 와인 생산량도 35만 병에 불과하다.



 와이너리 투어는 가족 이야기로 계속 이어졌다. “남편은 자기보다 잘난 아내를 인정하지 못한다. 인정한다면 아내에게 순종하거나 죽이는 것, 두 가지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호탕하게 웃었고, “두 딸 가이야와 로산나가 와이너리 일을 함께해서 너무 좋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장인정신은 가족경영에서 온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전 세대의 경험과 지식·열정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후세의 모범이 될 만한 좋은 선례를 많이 남기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룽가로티- 움브리아 예술·음식 알리는 홍보대사



롱가토리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호텔 ‘레 트레 바셀’. 움브리아 지역 특유의 귀족적이고 전원적인 분위기를 호텔 인테리어에 접목시켰다.
룽가로티 와이너리가 있는 움브리아 주는 토스카나와 함께 이탈리아 중부에 자리잡고 있다. 국토의 남북을 길게 가로지르는 1번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해안을 접한 서쪽의 토스카나와 내륙 쪽인 움브리아로 나뉜다. 움브리아는 오래 전부터 와인을 양조해 왔지만 토스카나 와인의 명성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그 ‘한’을 풀겠다고 나선 곳이 바로 룽가로티 와이너리다.



 62년 조르지오 룽가로티(1910~99)가 세운 룽가로티는 움브리아 지역에서 최초로 이탈리아 와인 최고 등급인 ‘DOCG’를 받아낸 신흥 와인 명가다. 페루자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조르지오 룽가로티가 포도나무의 키를 같게 맞추고 햇볕이 잘 들도록 나무와 나무 사이 간격을 조정하는 등 작목·경작 체계를 혁신한 덕분이었다. 룽가로티 와이너리에선 ‘친환경’도 중요한 화두다. 가지 치기 과정에서 잘려나온 포도나무를 태워 열과 전기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다. 전기 자급률은 70% 정도. 또 나뭇가지를 태워 얻는 열로 오크통 소독도 하고 있다.



 룽가로티 와이너리의 또다른 특징은 호텔·박물관 등을 함께 운영하며 와인을 비롯한 움브리아의 자랑거리를 홍보하는 데 사업의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17세기 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호텔 ‘레 트레 바셀’는 손으로 짜낸 직물과 앤티크 가구 등 움브리아의 전통 공예품들로 장식돼 있었다. 아치 형태의 통로, 두껍고 튼튼한 돌담, 나무 기둥과 테라코타 바닥 등 호텔 곳곳에서 이탈리아 중부의 유전자가 느껴졌다. 호텔 안의 레스토랑 ‘레 메로그라네’에서는 최고급 식재료로 보리쌀 샐러드, 렌틸콩 수프 등 움브리아 전통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또 호텔 셰프가 직접 가르치는 요리교실을 열어 움브리아만의 요리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스파에서도 와인과 올리브유·초콜릿 등 움브리아 특산물을 이용해 마사지와 팩 등의 시술을 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움브리아 최고’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셈이다.



 와이너리 인근에 자리한 와인 박물관에는 와인과 관련된 3000여 점의 유물과 예술품·공예품이 전시돼 있었다. 3세기에 사용됐던 와인 항아리와 18세기의 포도 으깨는 도구, 피카소의 59년 작품 ‘박카스의 향연’ 등이다. 움브리아의 특산물 중 하나인 올리브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올리브 박물관에도 1000여 점의 관련 예술품이 전시 중이다.



 룽가로티 와이너리 사람들에겐 ‘홍보 대사’ 역할이 익숙한 듯했다. 와이너리 상속자인 키아라 룽가로티(41)의 언니로 와이너리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테레사 세베리니(58)는 와인 시음장에 나와 “한국으로 돌아가 우리 와인의 홍보 대사가 돼달라”고 말했다. 세베리니는 설립자 조르지오 룽가로티의 부인인 마리아 그라지아 룽가로티(86)의 전 남편 딸이다.



프레스코발디- 700여 년 역사, 그 전통의 무게



프레스코발디의 니포차노 와이너리. 1000여년 전 지어진 고성에서 와인을 숙성시키고 보관한다.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기업인 프레스코발디는 모두 아홉 곳의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피렌체 인근 포미노, 니포차노, 카스틸리오니와 몬탈치노에 있는 카스텔지오콘도 등 네 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모두 프레스코발디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 고풍스러운 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프레스코발디의 역사는 1308년 시작된다. 무려 700년이 넘는 역사다. 피렌체의 귀족 프레스코발디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창업주의 29대손인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70)가 대표를 맡고 있다. 연간 와인 생산량이 900만 병에 달할 만큼 규모도 크다.



 해발 300~700m 지역에 걸쳐 있는 포미노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홍보담당자 스테파니 모렐로(35)는 “일교차가 커 포도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설명했다. 온도 차가 커야 포도의 단맛과 향이 강해져 우아하고 섬세한 맛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와이너리의 고도가 높은 쪽 모래 토양에서는 샤도네이·피노블랑 등 화이트 와인 품종을, 아래쪽 진흙 토양에서는 산조베제·메를로 등 레드와인 품종을 기르고 있었다. 또 와이너리 한 편에선 달콤한 디저트 와인 ‘빈 산토’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주렁주렁 널어 말리고 있었다. 고도가 높은 포미노에서 만든 디저트 와인은 산도가 높기 때문에 단맛이 강한 데도 무거운 느낌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포미노의 와인은 중력을 최대한 이용한 시설에서 만들어진다. 수확한 포도를 으깨고 발효시킨 뒤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과정이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도록 설계됐다.



 니포차노 와이너리는 거대한 고성이었다. 포미노와 니포차노는 원래 알비치 가문 소유의 땅이었다. 1878년 프레스코발디 가문의 아들과 알비치 가문 딸이 결혼하면서 두 곳 모두 프레스코발디의 와이너리가 됐다. 니포차노는 ‘우물이 없는 땅’이란 뜻이다. 그만큼 물이 적은 지역이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많은 환경에서 포도는 알이 커지고 껍질이 얇아져 와인 만들기 부적합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니포차노 역시 와이너리로서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1000년 전 지어진 중후한 성 니포차노는 프레스코발디 가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가문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그해 병에 담은 와인을 아들은 500병, 딸은 100병씩 챙겨 보관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된 뒤 그 와인을 결혼식 등 이벤트에 사용하거나 귀한 선물용으로 쓴다고 한다. 성의 지하 창고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와인병이 각각의 이름표를 단 채 쌓여 있었다. 홍보담당자는 ‘1999년 1월 25일생 카를로’란 이름표를 보고는 “복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99년 병에 담은 와인은 97년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는데, 97년 작황이 유례없이 좋았다는 것이다.



1 프레스코발디의 포미노 와이너리에서 디저트 와인용 포도를 말리는 모습. 넉달 정도 말려 당도를 높인 뒤 양조 작업에 들어간다. 2 프레스코발디의 카스텔지오콘도 와이너리의 포도밭. 미처 수확하지 못한 포도 송이가 가을 햇살에 말라 건포도가 돼버렸다. 3카스텔지오콘도 와이너리의 와인 저장고 옥상. 늘 물을 채워놓아 저장고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4 룽가로티 와이너리의 ‘와인 박물관’ 전시품들. 3세기쯤 사용됐던 와인 항아리다.


 이어 방문한 카스틸리오니와 카스텔지오콘도 와이너리도 제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카스틸리오니에서는 정제된 세련미가, 카스텔지오콘도에서는 역동적인 화려함이 느껴졌다. 카스틸리오니에서 만난 와이너리 대표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는 “와이너리마다 땅 조건에 맞도록 독자적인 재배법·양조법을 적용하면서 자기 와인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려 한다”고 말했다.



●와이너리 투어를 하려면



‘가야’ 와이너리와 ‘프레스코발디’의 와이너리는 기본적으로 수입상이나 도매상·평론가 등 와인 관계자들에게만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 관광객이 이들 와이너리를 구경하려면 수입업체인 신동와인(www.shindongwine.co.kr)을 통해야 한다. 신동와인에선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와이너리 투어 연결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편 ‘로카 디 프라시넬로’ 와이너리와 ‘룽가로티’ 와이너리는 일반인에게도 문을 열어뒀다. 누구든지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양조 시설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각 와이너리의 홈페이지(www.roccadifrassinello.it, www.lungarotti.it)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안젤로 가야·프레스코발디·카스텔라레·룽가로티·신동와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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