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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한 자리엔 위정성 … 장쩌민, 후진타오에게 완승

결국 장쩌민(江澤民)의 완승이었다. 18기 상무위원으로 일찌감치 여섯 명의 명단이 정해졌지만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피 말리는 경쟁이 일었다. 장 전 국가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각각 위정성(兪正聲·67) 상하이시 서기와 리위안차오(李源潮·62) 당 중앙조직부장을 내세워 대리전을 벌인 것이다.



피 말리는 대리전 끝 입성



 68세 나이 제한 직전에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으로 상무위원에 입성한 위정성은 상하이방(上海幇)이기도 하다. 1985년 상하이 시장 겸 서기로 임명돼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역량을 키워온 장 전 주석처럼 2007년부터 상하이를 맡아왔다. 당시 시진핑 상하이시 서기가 국가부주석으로 임명되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정치적 후계자인 리커창(李克强)을 차기 국가주석 직에 앉히려던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은 시진핑이 아닌 위정성을 부주석으로 점 찍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5년 전엔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엔 후진타오가 밀었던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년단) 계열 리위안차오를 밀어내고 웃을 수 있게 됐다.



 장 전 주석은 위정성의 가족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톈진 시장을 지낸 부친 황징(黃敬·본명 위치웨이·兪啓威)이 제1기계공업부 장관 시절 수하에 있던 장 전 주석에게 소련 유학 기회를 마련해주며 끈끈한 사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은 화려한 정치 가문을 피바다로 몰아넣었다. 황징의 전 부인이자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네 번째 부인 장칭(江靑)은 당시 베이징 부시장이던 위정성의 친모 판진(范瑾)을 감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을 가했다. 여동생은 박해로 얻은 정신병 탓에 자살했고, 국가안전부 간부로 일하던 형은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하방으로 공장을 전전하던 하던 위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의 장남 덩푸팡(鄧樸方)이었다. 위의 고교 동기인 덩푸팡은 위를 자신이 설립한 장애인복지기금 캉화(康華)공사로 이끌었다. 이후 1985년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시 부서기를 시작으로 옌타이 시장, 칭다오(靑島)시 서기, 후베이(湖北)성 서기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민경원 기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중국 공산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 기수에 따라 3~11명의 상무위원이 있었다. 각 상무위원은 외교·경제·전인대·정협 등 자신이 맡은 분야의 최고 결정권을 가진다. 당·정의 보다 중요한 결정사항은 상무위원들이 토론을 거쳐 합의 처리한다. 서열 1위의 독단이 아닌 상무위원회의 집단지성은 중국에서 공산당 일당독재의 결함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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