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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경찰서 홍보영상 무료 제작] 양진영 감독

강남구 청담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별 다른 문제없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영동고에 입학했다. 모범생이었지만, 고2 때 찾아온 사춘기는 그를 무너뜨렸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3대 3으로 패싸움을 해 처음으로 경찰서에 갔다. 같은 해 편의점에 놓인 지갑을 열어봤다는 이유로 절도죄 누명(?)도 썼다. 폭력전과가 있던 그를 경찰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꽃바람프로덕션의 양진영(34) CF감독 얘기다. 경찰에 대한 그의 시선도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지난달 15일 강남경찰서 홍보영상을 무료로 제작해 기부했다.

양진영 감독이 강남경찰서 홍보영상 중 ‘소통 편’을 보여주며 “이 영상물이 경찰과 시민이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변한 건 10여 년 전, 그가 조감독으로 일할 때였다. 그해 여름, 강남구 코엑스에서 있었던 CF촬영 때문에 양 감독을 비롯한 촬영스태프들이 거리를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거리통제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경찰에 민원을 제기했고, 3~4명의 경찰관이 출동했다. 양 감독이 다급히 경찰들에게 상황설명을 하자 의외로 시민 통제를 도와줬다. 스태프들에게 맡기고 돌아가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제복 입은 경찰관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혹시라도 부상자가 나올지 모른다”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동안 갖고 있던 경찰에 대한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무기력한 공권력’ 인식 바꾸려 시작

양진영 감독이 만든 2편의 영상은 ‘소통’과 ‘5대 강력범죄’를 주제로 했다. 소통 편에서의 경찰은 누군가에게는 부모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자식이 되는 ‘친근한’ 모습이었다. 5대 강력범죄 편에서의 경찰은 학교폭력으로부터 학생에게 행복을 주고,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를 해주는 ‘안전한’ 존재였다.

 “시민들로부터 제대로 신뢰받지 못하는 경찰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상당수 시민들이 경찰을 두려움의 존재이자, 무기력한 공권력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었어요. 특히 제가 영상을 기부한 강남경찰서의 이미지는 더 안 좋죠.” 그가 이 영상을 제작한 이유는 단 한가지. 경찰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이 바로 서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양 감독이 경찰 홍보영상 제작을 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파출소 소장으로 있는 지인을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주취폭력으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을 무렵이다. 취객이 난동으로 부려 경찰들이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였다. 지인은 “때리면 맞고, 소리 지르면 들을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사건을 신고해도 처리해주지 않는다”며 경찰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경찰은 중간에 끼어 일은 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있는 셈이었다.

 뿐만 아니다. 최근 발생한 성폭력, 살인사건 등 흉악범죄들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TV만 틀면 매일 새로운 사건이 쏟아져 나왔어요. 뉴스의 결론은 늘 ‘경찰이 제대로 못해서 사건이 발생했다’더군요.”

감성으로 시민 공감 이끄는 영상 완성

양 감독은 막연히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밤샘 CF 촬영 현장에서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하기로 했다. CF감독이었기에 홍보영상을 만드는 건 자신 있었다.

 지난 7월, 그가 먼저 강남경찰서 쪽에 연락했다. 자신의 뜻을 전달한 뒤 허락을 받았고, 한 달 반 넘는 시간 동안 카피 기획에 들어갔다. 경찰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 광고주가 없는 영상이었던 터라 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다. 그가 생각한 기획은 모두 3가지. 감성적인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유머, 그리고 스릴러였다. 논의 끝에 ‘감성’을 콘셉트로 잡아 ‘소통’을 표현하기로 결정했다. 시민들이 강남경찰서에 대해 갖고 있는 ‘부패’ ‘비리’라는 왜곡된 고정관념을 깨고 ‘경찰은 늘 시민 곁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알리는 게 목표였다. “경찰서 측이 제공하는 기록 사진 외에 필요한 부분은 직접 촬영을 나갔어요. ‘5대 강력범죄’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은 촬영에 6시간 넘게 걸렸죠. 해가 저무는 오후에서 동이 트는 오전으로의 시점 변화를 통해 강남경찰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밝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30여 명 스태프에 일일이 협조 구해

영상 제작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30여 명.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 모두 양감독이 직접 발품을 팔아 뜻을 모은 사람들이다. 조명 4명, 촬영 5명, 그래픽 5명, 녹음실 5명, 성우 1명, 카피라이터 1명 등이었다. 모두 프로들이었지만, 그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이들은 무상으로 자신의 재능을 기부했다. 촬영을 위해선 인력뿐 아니라 장비도 필요했다. 렌탈숍에서 카메라, 레일, 렌즈, 조명 등도 무료로 빌렸다.

 하지만 영상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선 매번 브레이크가 걸렸다. 가장 난관에 부딪힌 건 음악이었다. 음악에는 저작권이 있어 무료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보통은 400~500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했고, 유명한 팝송은 억대가 넘어가기도 했다. 결국 알고 지내던 작곡가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고, 음악도 무료로 삽입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괜히 시작했나’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이 영상을 보고 경찰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포기할 수가 없었죠. 무료로 제작한 영상이지만, 질적인 면에선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공익적인 성격의 영상 제작에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생각이다. “제가 돈을 받고 작업하는 것과는 또 다른 보람을 느꼈어요. 봉사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뭔지도 알 수 있었죠. 제가 가진 능력이 무형의 기술이잖아요. 특별하게 돈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죠. 재능기부에 대한 저의 꿈은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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