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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 시대의 변칙적 법치 끝내야”

“법관으로 일하면서 한국이 압축성장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성장통’에 눈감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곤 합니다.”

 법무법인 태평양 창업자 김인섭(76·사진) 명예 대표변호사는 판사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재벌 비리를 잡겠다고 기세등등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게 진짜 정의였나 의문이 든다”며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기라성 같은 경영자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법조 인생 40년을 담은 회고록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 출간에 맞춰 가진 인터뷰에서다. 회고록엔 1963년 판사 임관에서부터 86년 태평양을 설립하고 2002년 은퇴해 법치주의 확산을 위한 시민운동에 뛰어들기까지 그의 법조 일생이 담겼다. 그는 “회고록 출간을 삼가는 법조인들의 풍토를 깨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했다.

 법관으로 그가 산 삶은 군사정권·산업화 시대와 궤를 같이 했다. 65년 당시 고려대 학생으로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주도하다 구속된 이명박 대통령의 신원보증을 서준 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92년 대선에 출마하며 정치참여를 요청했던 일 등을 일화로 떠올렸다.

 그는 “압축성장 시대의 법치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변칙적으로 운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국익을 위해서’란 명목 때문에 법치가 오염됐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산업화하기 위해, 최근엔 서민을 위하고 재벌을 개혁한다는 명목으로 법을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며 “법과 원칙을 흔들지 않는 것이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로서 그는 ‘수평적 문화’ ‘투명한 회계’를 내세워 태평양을 10여 년 만에 국내 최고 수준의 로펌으로 키워낸 ‘경영자’다. ‘세습’을 반대하는 태평양 변호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20여 년 전 판사로 임관한 그의 아들도 입사시키지 않은 일화도 털어놨다. 그는 “아직도 태평양에선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변호사 80여 명이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법조인 후배들이 해야 할 일은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법조인에게 악을 때려잡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역할만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경제·정치·문화가 법적 토대 위에서 꽃필 수 있도록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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