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반 고흐의 자화상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서른넷이라기엔 겉늙었다. 반 고흐(1853∼90)의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1887)이다. 빈센트 반 고흐, 설명이 필요 없는 화가다. 그만큼 선입관도 많다. 미치광이, 은둔형 외톨이, 알코올 중독자, 평생 그림 한 점밖에 못 판 무명 화가, 동시대인들의 무지로 인해 순교자처럼 죽음을 맞은 화가, 그리하여 외롭고 가난하며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골방 예술가의 표상이 된 사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지적인 예술가였고, 빈곤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네덜란드 남부 소도시의 목사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에는 가정교사·유모·정원사까지 있었다. 네덜란드어뿐 아니라 독어·영어·프랑스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했다. 화가 생활은 단 10년. 그 짧은 기간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색 펠트모자를 쓴 자화상, 1887, 면에 유화, 44.5×37.2㎝, 반 고흐 미술관(암스테르담) 소장
그가 여러 차례 초상을 그린 적이 있는 우체부 룰랭은 월급 135프랑으로 아내와 세 아이를 넉넉히 건사했다. 반면 반 고흐의 한 달 생활비는 200프랑이었다(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 페터르 크나프 공저, 『반 고흐, 마지막 70일』). 평단에서 존재감이 아주 없지도 않았다. 잡지 ‘메르퀴르 드 프랑스’는 혁신적이며 대범한 그의 그림에 대해 찬사를 쏟아내는 평론을 싣기도 했다. 죽기 6개월 전 일이다. 그는 당대 예술의 흐름을 알고, 팔리는 화가가 되고자 분투했고, 의미 있는 그림을 남기겠다는 꿈에만 집중했다. 미술사에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그간 그림이 가졌던 목적을 버리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한 화가”(E.H.곰브리치, 『서양미술사』)로 기록됐다.

 다시 자화상으로 돌아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얼굴 주변의 붓터치가 후광처럼 그를 둘러싸고 소용돌이친다. 짧은 화력(畵歷)에도 36점가량의 자화상을 남긴, 자의식 과잉의 이 화가. 그림 속 얼굴은 오로지 세상에 자기밖에 없다는 듯,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듯하다. 화가는 그래서 외로웠겠지만 분명 행복했을 거다.

 눈높이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한다. 서울에서 5년 만에 열리는 반 고흐전이다. 2007년 전시는 82만 명이라는, 국내 미술 전시 사상 최대 관객몰이 기록을 세웠다. 12일 저녁, 서초동 예술의전당은 ‘반 고흐 전당’이었다. 어두운 전시장을 메운 관객은 순례자처럼 삼엄하고도 조용했다. 붉은색과 녹색을 칠한 탓에 눈빛이 유난히 형형한 이 자화상. 21세기 서울에 온 반 고흐의 눈엔 뭐가 비치고 있을까.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