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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임대희] 중국의 신흥주택 활성화 정책과 주택경기

지금으로 보자면 좀 시간이 지나기는 하였지만, 주룽지(朱?基)씨가 국무원 총리를 맡아있을 때에 중산층을 육성하여야 한다는 판단 아래에, 그에 걸맞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로써 당시에 추진하던 신흥 주택 건설과 연계시켜서 오랜 시간을 정부기관이나 국영기업체에 근무하던 직원들에게 주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당시에 직장에서 정해주던 숙소에 거주하고 있던 직원들이 숙소를 비워주는 조건으로 각기 직급이나 근무년월에 맞추어서 30만위엔에서 60만위엔에 이르는 퇴사(退舍)보조금을 주었으며, 그들이 은행에서 담보건물의 70%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주었다. 물론 담보를 서준 것은 아니었지만 은행에 지시를 내린 것이었으므로, 은행에서도 흔쾌히 그들에게 융자를 해 주었다. 단, 대부분이 부부가 함께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양쪽에 그러한 혜택을 주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 부부 가운데 숙사를 빌리고 있었던 쪽에 퇴사(退舍)보조금을 주었으며 결국 1가(家)에 한건이 가능하게 조치하였다. 결국 이렇게 받은 혜택으로 30만위엔의 퇴사(退舍)보조금을 받은 사람은 은행에서 70만위엔을 융자받아서 100만위엔 짜리 아파트를 구입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어느 부부는 본래 3환선 근처 조그마한 직장숙소에 살 때에 집으로 나를 초청하여 점심 대접을 해 주었다. 그 때에는 방2칸에 중학생인 아들이 다른 방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나중에 퇴사보조금을 받아서 4환선 밖에 집을 사서 옮기더니, 1년쯤 뒤에 집값이 많이 오르자 그집을 팔고 새로이 5환선 밖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 때 또 한번 집으로 초청해서 저녁식사 대접하더니, 부인이 몸소 경극(京劇)의 몇 소절을 연출해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뒤에 더 외곽지대로 옮기면서 마련된 돈을 좀 절약하여 아들을 영국에 유학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상해에 살고 있는 저명한 교수의 집에서도 보았다. 상해역 북쪽에 새로 건설한 고층 아파트에 점심식사를 초청하였다. 아마도 60만위엔의 퇴사(退舍)보조금을 받은 모양인데, 이집은 200㎡쯤 되었다. 칭찬하는 의미에서 ??축구장같다??고 했더니, 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이어서 ??이자갚는 데에 힘든다??면서도 몹시 즐거워하였다. 당시에 1㎡당 12500위엔 할 때이므로, 대출이자를 대충 계산해 보아도 엄청났을 것 같다. 이 무렵부터 외국인이 중국의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 투자한 한국인은 그 이후에 환률의 변동이 심하였으므로, 환차(換差)만 하더라도 엄청난 이익을 올린 셈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주택 건설경기가 활성화되자, 애초에 건설에 간여하지 않았던 업체들도 은행과 정부기관과 연계하여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은 주택은 입주해서 거주하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 가령, 세탁기를 놓아야 할 장소에 배수구나 수도꼭지가 없다던가, 출입현관이 양쪽 집에서 한꺼번에 문을 열수 없게 설계되었다던가, 부엌바닥에 배수구가 없다보니, 윗집에서 부엌 청소를 하면 아랫집으로 물이 새어나온다던가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주택 건설방식은 먼저 바닥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전기배선을 위해서 구멍을 다시 뚫는 경우가 많아서, 해당 부분이 지극히 취약하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중산층 육성이라는 정책과제가 있을 때에는 정부기관이거나 국책기관의 직원들에게 은행이 대출해 주는 것이어서, 신용보증에 문제가 크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는 은행에서 마음놓고 대출해 주기에 힘든 경우도 발생하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자연히 주택건설은 많이 늘었지만, 입주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지게 된 셈이며, 주택가격이 너무 올라 버리다보니 예전처럼 은행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선뜻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요즈음은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제일 먼저 헤아려 보는 것이 새로 생긴 아파트에 불켜져 있는 집이 절반을 넘는지 세어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새로운 아파트가 1/3을 넘게 입주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퇴사(退舍)보조금을 주던 것은 10여년전 당시에 근무하던 직원들에 한정했기에, 그 이후에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또한, 애초에 있었던 직장의 숙소에 거주하던 직원들이 퇴사(退舍)하자 그 장소를 처분하여 새로운 아파트를 짓도록 했던 것이다. 따라서 새로 입사한 사람들에게 비록 주거 보조비를 지불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임대료로는 많이 모자라는 형편이 되었다. 젊은이들로서는 그나마 그러한 직장을 구했다는 점에 만족하는 형편이다. 어느 시점에 중산층 반열에 들어간 사람은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보낼 수 있는 자금을 마련했지만, 이제 새로이 직장을 구한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이 집을 구하려고 해도 아마득한 길이라는 푸념을 들으면서, 이러한 사정이 중국만의 현실은 아니라는 점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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