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취재일기] ‘돈 먹는 하마’ 키우는 국회

조현숙
정치국제부문 기자
법제처가 12일 ‘19대 국회 쟁점 법안’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의원 발의 법안 가운데 문제의 소지가 있는 78건을 골라놓은 것이다. 재정부담이 과도하고(51건) 정책기조에 역행하거나 상충한다(27건)는 이유에서다. 이들 법안을 시행하는 데 들어가는 돈의 규모를 따져보면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은 저리 가라다.



 몇 개만 꼽아 보자. 지난 9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 상정된 ‘농어업인 부채 경감 특별조치법’은 대출금리를 낮추고 정책자금 상환 시기도 늦춰 농어민의 빚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 5년간 2조9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빚 부담에 시달리는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지난 9월 21일 국토해양위원회를 통과한 ‘도로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시내에 있는 국도의 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정부로 넘기는 게 골자다. 정부는 이 법이 시행되면 연간 4580억원의 국가예산이 더 들고, 도로는 국가와 지자체가 나눠 관리한다는 기존의 도로관리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반대하고 있다.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심의가 한창인 ‘양육비 선지급 특별법’은 이혼 후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양육권자로부터 돈을 회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업은 아예 예산이 얼마나 들지 추계가 안 된다. 이혼하는 부부의 자녀 양육에 얼마가 들지 계산이 어렵고, 나중에 양육권자에게 어떻게 돈을 받아낼지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법안이라 해도 형평성과 실효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돈 문제를 따져보지 않고선 시행할 수 없다. 그런데도 쟁점 법안 중 13건은 상임위 통과를 앞두고 있고, 6건은 이미 상임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기만 하다. 법제처는 쟁점 법안을 선별해 놓고도 발의한 의원들을 상대로 어떻게 설득하고 대응할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가냘픈 의견만 덧붙인 정도다. 법제처의 한 간부는 “처장이 방송에 출연해 ‘의원 입법 남발’이란 표현을 썼다가 국정감사에서 혼난 적이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요즘 정권이 바뀌는 데 따라 출렁이는 공직사회 분위기 탓에 ‘이 법은 안 된다’며 국회를 설득하려는 공직자를 찾을 수 없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법을 만들라는 뜻은 아니다. 유력 대선 주자들 모두 개혁과 쇄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거창한 구호는 쟁점 법안이 그대로 통과됐을 때 일어날 혼란 앞에서 한순간에 빛을 잃을 수 있다. 의원들이 남발한 ‘돈 먹는 하마’ 법안들의 부담은 고스란히 새 정부에 돌아간다.



조현숙 정치국제부문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