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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으슥한 골목에서 청소년들이 술 마시고 있다면 당신은 훈계할 수 있는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 늦은 귀갓길, 캄캄하고 외진 골목에 불량기 흥건한 청소년들이 모여 있다 치자.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욕설·은어를 섞어 떠들고 있다면? 나는 그들을 꾸짖기는커녕 멀찍이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 봉변당할까 봐서다.



 열흘 전 아산시 온천동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회사원 이모(54)씨가 그런 봉변을 당했다. 3일 저녁 귀가하는데 10대 두 명이 한 학생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고 훈계하자 10대들의 폭행이 시작됐다. 쓰러졌다 일어나 비틀거리는 이씨의 등 뒤로 다시 호된 발길질이 가해졌다.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 병원 중환자실의 이씨는 지금도 의식이 오락가락한다. 아산경찰서 황성호 여성청소년계 계장은 “의식이 돌아와도 당시 상황을 기억해내지 못해 진술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17, 16세 가해자들을 붙잡고 보니 이미 서울에서 저지른 강도(퍽치기)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둘은 지난 주말 서울 강서경찰서에 구속됐다.



 이 경우 피해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도 억울하고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7월 21일 수원시 서둔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세차장에서 일하는 김모(39)씨가 막내아들(6)과 함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10대 5명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욕설과 함께 바닥에 침을 뱉어댔다. 보다 못한 김씨가 나무랐다. 김모(16)군이 김씨에게 대들었고, 청소년들의 선배(20)도 폭행에 가세했다. 김씨는 어린 아들이 겁에 질려 지켜보는 가운데 발길질에 맞아 아스팔트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중환자실에서 신음하다 7월 27일 오후 4시30분 끝내 숨졌다.



 김씨의 장례식이 3개월 후인 지난달 26일 치러진 사연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부인 유모(32)씨는 “가해자 측에서 처음 말과 달리 치료비, 영안실 안치료 외에 장례비는 댈 수 없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친정 언니들 도움으로 겨우 장례를 마쳤다”고 말했다. 유씨와 시어머니, 초등학교 6학년·3학년, 6살짜리 세 아들 등 다섯 식구는 가장 김씨가 벌어오던 월 170만원가량의 수입이 졸지에 사라지는 바람에 요즘 도시가스조차 끊긴 반지하 전셋집에서 거실에 깐 전기장판 두 개로 추운 밤을 버티고 있다.



 아무리 삼강오륜(三綱五倫)이 태곳적 얘기가 된 시대라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훈계하다 횡액을 당한 이씨·김씨에 대해 사회가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 국회 예산정책처가 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범죄 피해자 보호사업은 작년에 기금이 설치됐는데도 1인당 생계비 평균지원액이 오히려 감소하는 등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범죄피해자 지원센터가 김씨 유족에게 지원한 금액은 겨우 250만원이었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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