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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놓치면 안될 명소 ‘골든루트’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5>

7월10일 오전 8시15분 온달스네스 호스텔에서 출발, 남서쪽에 위치한 예이랑에르(영어식으로 게이랑게르라고 불리기도 하는) 피오르드로 가는 피오르드1 버스에 올랐다. 여기서 탑승하는 이는 부산총각 J와 나, 단 둘뿐이다. 다음 역에서 타는 이들 두엇 더해도 버스 안이 한산하다. 버스표 가격은 247크로네, 한화 5만원이 넘는 돈인데 노르웨이 물가가 하도 비싸도 보니 별로 비싸다는 생각도 안 든다.

트롤스티겐(트롤의 사다리, 트롤은 노르웨이 전설의 못생긴 요정)이라고 불리는 고갯길을 올라 스티그포센 폭포와 몇군데 전망포인트를 구경시켜주고 링게에서 에이스달 사이를 페리로 건너 오전 11시20분 에이랑에르 마을에 도착한다. 이 구간은 ‘골든 루트’라고 불릴 정도로 노르웨이 여행의 ‘결정체’로 여겨진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어로 ‘내륙부로 깊이 들어간 만’을 의미한다고 한다.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U자, V자 형태의 계곡에 바닷물이 유입돼 형성된 하구다. 지도로 보면 내륙 안쪽으로 쭉쭉 찢겨들어간 해안들을 볼 수 있다. 얼마나 깊은 바다가 바로 산 옆까지 들어찼는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람선들이 산 옆에까지 들어온 것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해안선을 따라 관광하는 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니려면 피오드르1 홈페이지(fjord1.no)를 보고 버스와 페리 시간을 맞춰 정말 열심히 연구를 해야 한다. 짐을 다 이끌고 매일 숙소를 바꿔가며 이동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지만 날이 무척 흐리다. 버스는 한참 곧은길을 달리더니 곧 산길로 접어드는데, 스티그포센 폭포 앞에서 잠시 정차한다. 180m 달하는 폭포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힘차게 떨어지며 수증기를 뿜어대고 흰 포말을 튕겨낸다.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울 정도다. 인근 도로까지 푹 젖었다. 폭포 꼭대기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신비한 느낌도 있다. 어제 레우마 산악철도에서 마음의 준비도 없이 본 멋진 풍경 때문에 오늘은 감흥이 좀 덜하긴 하다.

버스는 곧 구불구불한 산길로 접어든다. 11개의 U자형 급커브는 1차로로만 돼있어 아슬아슬함을 더한다. 운무에 젖은 길은 미끄러워 보이고 1, 2m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커브를 거의 180도로 꺾어서 도는 것이 스릴 만은 대단하다. 위로 한참 오른 후 차창 밖을 내려다보니 긴 뱀 한 마리가 몸을 잔뜩 튼 채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풍경도 멋지지만 이 도로가 더 장관이다. 이 험한 산세에도 바위까지 깎아 급격한 경사로를 낸 인간의 능력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길 양 옆으로는 지난 겨울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있다. 버스기사의 말로는 겨울에는 5, 6m씩 눈이 쌓이기도 한단다. 9, 10월부터 눈이 내려 이듬해 5월 말까지도 눈이 잔뜩 쌓여있게 마련이라 길이 폐쇄된단다. 널브러진 시체처럼 경사를 따라 납작하게 눌린 한 떼의 나무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눈이 오고, 눈사태도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대략 짐작이 갔다. 길 양 옆에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을 찌를듯 높은 장대는 눈이 많이 왔을 때 도로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한 거라고 하는데, 5월말~10월중순 사이에만 도로가 개방된다고 한다.

버스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다시한번 정차한다. 새로 지어졌다는 굉장히 현대적인 건물로 언덕 기울기를 따라 조개가 입을 벌린 듯한 모양으로 지어졌고 벌린 쪽에는 전면이 유리창으로 돼있다. 풍경 감상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까지 잔뜩 안개가 낀 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 바로 옆에는 아직도 1m는 넘을 눈이 쌓여있고, 전망대 뒤쪽에는 눈 녹은 물이 강이 되어 흐른다. 자세히 보니 눈녹은 물이 군데군데 웅덩이가 된 곳도 보이는데, 청옥색 물이 오묘한 빛을 내며 빛난다. 산그림자가 그대로 비춰질만큼 깨끗해 당장 마셔도 될 것 같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여름 어느날 햇볕이 뜨거울 때 이 눈들이 한꺼번에 다 녹아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관광의 중심지라 그런지 버스기사 아저씨도 프로페셔널하게 친절하고, 얘기도 재밌게 한다. 중간중간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손님을 내려놓고는 열심히 책을 펴드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전망대를 내려오는 길에 양 두어마리가 지나가자 버스를 멈추고 길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다. 탑승객들이 귀엽다고 감탄하자 “저러고 다니다가 여름이면 죄다 관광객들의 식탁 위로 올라간다”고 해 차내에 웃음을 터뜨린다.

페리를 타고 에이스달에 도달하면 여기서부터는 다시 산길이 시작된다. 이쪽 전망대에서는 예이랑에르 피요르드를 감상할 수 있고 시간도 꽤 돼서 관광객들이 꽤 많다. 길옆에 버스를 세울 곳이 없어 눈내린 물이 폭포가 돼 흘러내리는 곳에 겨우 주차했다. 폭포에서 튀기는 물을 맞으며 내려 산아래로 펼쳐진 피오르드 지형을 구경했다. 산 틈으로 바다가 쑥 들어와 있는데 짙은 청록색을 띠는 것이 깊이가 꽤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이곳에도 거대한 유람선들이 좁은 협만 안쪽까지 들어와 정거한다.

◇해발 1500m 달스니바 전망대의 기적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예이랑에르 마을은 하이킹을 하려는 배낭여행객들까지 모여 보통 붐비는게 아니다. 캐리어 등 큰 짐을 맡겨놓으려 관광안내소로 향하다가 J와 길이 어긋났다. 나는 안내소에서 낮 12시40분 출발하는 달스니바행 피요르드1 버스표를 일단 구입했다. 달스니바로 가는 버스에서 만나면 되겠지 했다. 가격은 250크로네. J와 다시 마주쳤는데 J는 다른 사설 버스표를 샀단다. 나도 달스니바 안내판 앞에 서서 표를 파는 선글라스를 낀 붉은 스웨터의 남자를 보긴 봤는데, 그 버스는 12시30분 출발에 가격도 10크로네가 싸다. 헬리콥터 투어 안내도 있긴한데, 물어보나 마나 그건 너무 비쌀 것 같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각종 크고 작은 배가 들어서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이뤄진 예이랑에르 마을.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보인다. 호텔, 리조트 말고도 구석구석 예쁜 찻집들이 많아 특이하다. 카페들, 예쁘게 꾸며놓은 집들과 갤러리들, 기념품상점들이 그득한 골목을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큰 즐거움이다. 어찌나 높은 물가에 돈이 많이 드는지 그새 또 현금이 거덜났다. 노르웨이에서는 미니뱅크라고 불리는 ATM기에서 현금을 좀 찾고, 슈퍼마켓에서 산 우유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버스에 올랐다.

중간에 다른쪽에서 예이랑게르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포인트에 한번 내려준다. 이쪽에도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낸다. 5분 뒤 다시 버스에 오르는데 얄밉게 생긴 대머리 버스기사가 승객수를 확인 하면서 영어로 “포틴 피플, 원 재패니즈(열 네 사람, 일본인 한명)” 딱 이러는거다. 그가 그러니 한 독일인 관광객이 “정말, 우리 재패니즈 한 명 있지”하고 영어로 받아친다. 아니, 이 사람들이! 아무리 여기까지 홀로 관광온 사람이 동양인이라고 해도 그 정도 간단한 영어도 못알아 들을까. 게다가 재패니즈란 단어까지. 이 사람들이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인종차별적인 대우인건지. 이 좁은 버스안에서까지 또 재패니즈 타령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무이다? 갑자기 기분이 팍 상한다.

게다가 1차로 도로의 경사도 심하고 구불구불한데다가 바로 옆은 끝도 없는 절벽이다. 안개가 트롤스티겐 쪽보다 훨씬 심해서 한 치 앞도 잘 안 보일 정도라 운전하는 꼴도 영 불안하다. 오가는 버스들도 많은데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헤드라이트도 별로 소용이 없고 계속 경적을 울려가며 서로의 존재를 알린다. 그러다가 한번은 상대편에서 오는 버스와 부딪힐 뻔 한다. 기분이 몹시 상해있던 터라 영어로 “나 죽고 싶지 않고, 심지어 이런데서 죽고 싶지 않거든. 운전 좀 안전하게 하죠!”라고 팍 쏴줬다. 그랬더니 기사는 “여기 하루에 5000명씩 관광객들이 올라다니고, 나는 매일같이 이 길을 운전하고 다니니 나를 믿으라”고 한다.

달스니바 전망대는 해발 1500m 높이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피오르드 전망을 자랑한다. 차로 올라가는데만 50여분이 걸리는데 짙은 안개 때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게 없다. 바로 길옆 바위산 절단면, 나무, 목재가옥들이 간간히 보일 뿐이다. 다행히 전망대 인근에 이르니 안개가 사라지고 햇빛이 비춘다. 산 중턱에만 운무가 끼는 경우도 있나보다. 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도 오리무중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걱정을 했는데, 이런 행운이! 희디흰 구름들과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기적처럼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워보이는 새하얀 눈이 남아있는 봉우리들도 선명하게 보인다.

전망대는 기념품과 음료수 등을 파는 매점과 화장실이 있는 작은 건물 외에는 널찍한 공터다. 이 세련된 회색 건물 옆에는 높은 곳까지 전기를 끌어올 수 없으니 태양광전기패널을 설치한 게 무척 인상적이다. 죽 둘러진 전망대 난간을 돌아 내려다보니 바로 아래만 해도 짙은 운무가 깔려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솜이불처럼 폭신해보이는 운무는 뛰어내려도 바로 받아줄 것만 같다. 망원경도 설치돼있는데 들여다봐도 안개때문에 역시 아무것도 안보인다. 바로 앞의 잔설이 그득 덮인 봉우리만 보일 따름이지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신 광경을 만들어 낸다. 예이랑에르 마을의 오늘 낮기온은 섭씨 15도, 달스니바에는 잔설이 남아있어 추울 거라고 했는데 햇빛이 따가워 빙벽들에 둘러싸여있어도 그다지 춥지는 않다. 어찌나 공기가 맑고 깨끗한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이렇게 투명한 공기는 난생 처음인 듯만 싶다.

버스를 타고 오른 이들에게는 단 15분만 주어진다. 자신의 차나 렌터카로 와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돌탑쌓기에 여념이 없다. 전망대 주변 여기저기에는 넙적한 돌멩이로 쌓은 돌탑들이 못돼도 1000개는 될 듯하다. 이것들도 이곳에 특이한 분위기를 더한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버스에 올랐는데 얼마나 높이 올라온 것인지 귀가 먹먹해진다. 침을 꿀꺽 삼키니 찌릿하는 통증과 함께 귀가 뚫린다. 햇빛을 잔뜩 쬐어 나른해진데다가 기압차로 인해 졸음까지 쏟아진다. 버스가 안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울리는 경적에 잠깐 잠깐 깼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버스를 처음 탔던 주차장이다. 대략 2시간짜리 버스투어라고 하더니 시간은 정확히 오후 2시40분. 나를 ‘재패니즈’라고 맞받아치던 독일인 관광객의 남편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며 감탄하며 칭찬하자 기사가 좋아서 웃는다. 참으로 말 많고 참견 많은 부부다.

안개가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저 산위 쪽의 숨겨진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 때문에 저 높은 산 위를 바라볼 때마다 흐뭇해진다. 소중한 비밀이라도 품은 듯 슬그머니 홀로 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고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젠 선착장에서 헬레쉴트 마을로 가는 페리를 탈 차례. 그냥 편도표(150크로네)로 그곳에 가서 스트륀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왕복표(200크로네)를 사서 페리관광만 하고 되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헬레쉴트에서 1박해 보기로 했다. 그곳에 있다는 페르귄트 갤러리에도 가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투어컨덕터를 했었다는 오지여행가이자 의사인 H가 전망 좋은 이곳 호스텔에서 꼭 묵어보라고 추천해줬기 때문이다.

관광안내소에서 편도표를 사고 짐을 찾아 오후 3시30분 출발하는 페리에 올랐다. 1시간여 가는 동안 양쪽 피오르드 절벽의 각종 폭포들을 감상하는 코스다. 미리 부탁하면 한국어 안내도 틀어준다고 해서 카페테리아의 남자직원에게 부탁하니 단체관광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난 저널리스트로 여행기를 쓸 참이라 꼭 한국어로 듣고 싶다고 하니 선장에게 부탁해보겠다고 한다. 그의 부탁이 통했는지 영어 등 몇 개의 유럽어 안내가 나온 뒤 한국어도 흘러나온다. 오랜만에 한국어 안내를 들으니 막혔던 체증이 뚫리는 듯 시원하다. 내 영어실력으로는 다 알아들었다 싶어도 미진한 것이 남아있고, 영어 안내판이나 팸플릿을 해석하는데도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누가 녹음을 한 것인지 북한 여자아나운서 톤으로 말을 한다. 아주 오래전 이민온 한국여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 조용필씨의 부인(고 안진현)와 취재상 통화한 적이 있는데 1960년대 ‘대한 늬우스’처럼 딱 그 시대 아나운서 톤의 한국어를 사용해 놀란 적이 있다. 이민 간 시절의 한국어 스타일로 멈춰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새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한다.

첫번째 포인트는 ‘독수리의 길’. 4계절 내내 이용할 수 있는 귀한 길로 내가 거쳐온 에이스달을 지나 온달스네스로 통한다고 한다. 해발 1000m 높이의 절벽 위에는 1960년대까지 농장들이 존재했는데 사다리를 놓고서야 올라갈 수 있었기에, 사다리를 치우면 세무관원들을 피하기에 좋아 그렇게 험한 곳에 농장을 유지했다는 스토리도 재밌다. 지금은 농부들이 모두 떠났고 산책로로 인기를 끌고 있단다.

이 코스의 압권은 ‘칠자매 폭포’다. 250m높이에서 눈내린 물이 일곱가닥의 폭포수가 돼 흘러내려 그렇게 불린다고 하는데, 폭포량은 지난 겨울 눈이 온 양에 비례한단다. 마주보고 있는 반대편 절벽의 한줄기 굵은 폭포수의 이름은 ‘구혼자’란다. 일곱 자매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술병모양을 하고 있어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데 폭포가 시작되는 위쪽은 물줄기가 병목처럼 가늘다가 아래쪽이 병몸통처럼 퍼지는 것을 보고 병모양이라고 하는 듯하다.

페리 안을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2층 갑판으로 올라가 보려는데 한 떼의 한국인들이 계단참을 막고 서서 자기네들끼리 이름을 부르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대느라 비켜주질 않는다. 일부는 여행 와서까지 투덕투덕 짙은 화장을 하고 시뻘건 립스틱을 발라 눈에 띄게 촌스러워 보인다. 이 먼나라까지 큰돈 들여 여행을 왔으니 흥분되는 심정은 이해가 가는데 참 배려가 없다. 유럽인들은 대개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므로 이렇게 몰려다니면서 소란을 떠는 모습은 보기 어려운데 동양인, 남미인, 동유럽인들은 아직까지 단체여행을 많이 하다보니 그룹으로 뭉쳐 아무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 더 잘 눈에 띄게 마련이다.

페리에서 내리기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보니 한국의 어느 유명여행사 플래카드가 붙은 버스에 올라들 탄다. 그래도 동포가 당기는 마음에 그 버스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현지인 기사가 나를 바라보고 웃는다. 버스 앞문을 닫지 않고 있기에 나도 일행중 한명인줄 알고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어 난 아니라는 의미로 손을 좌우로 흔들었더니, 나를 보며 자기도 손을 흔들며 웃는다. 아, 착각도 자유지.

◇헬레쉴트에서 쪽팔린 히치하이킹

헬레쉴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26분쯤. 근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지금까지는 어찌저찌 잘 찾아다녔는데 헬레쉴트 호스텔이 있는 저 언덕 위까지 올라갈 방도가 없는 것이다.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던 총각이 “한국어 잘들었느냐”며 아는 척을 하길래 지도를 보여주니 마을 뒤쪽에 있는 대로로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면 뒤쪽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는 것이다. 헬레쉴트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다. 흰 페인트칠을 한 고풍스런 주택들이 들어찬 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남유럽계인 이 총각에게 저 위 호스텔에 갈 방도가 없느냐고 물어보니 선착장에 세워둔 낡은 차를 가리키며 “저 차가 내 차인데 뽀뽀 한번 해주면 태워다 주지”하고 대뜸 성희롱성 발언을 한다. 신사도같은 것은 전혀 없는 양아치같은 녀석이다. 그게 진짜 자기 차인지도 모르겠고 도와줄 마음도 애초에 없는 막돼먹은 놈 같다. 짙은 곱슬머리에 느끼한 듯 잘생겼다고 할 수도 있는 얼굴이지만, 아주 속에서부터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뭐라고?” ‘한국여자의 자존심이 있지 내가 길바닥에서 쓰러져죽는 한이 있어도 너란 놈이랑은 상종을 안 할란다‘하는 눈초리로 쫙 째려보니 “그럼 한 100크로네 내든가”하면서 실실 웃으며 가버린다.

헬레쉴트는 쇠락해 가는 시골마을이었다. 선착장의 사무실은 문을 닫은 지 오래인 듯싶고, 조금 올라가면 있는 그랜드 호텔도 역시 폐쇄된지 꽤 된 듯싶다. 무거운 짐을 이고 끌고 마을 안쪽으로 이동해봤다. 기념품과 의류아웃렛이 있는 건물을 지나면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가 보인다. 다리 위에서는 너도나도 낚시질 삼매경이고 위쪽으로는 강폭만큼 넓은 폭포 헬레쉴트포센이 나타난다.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줄기 폭과 세기는 굉장하다. 물빛도 하늘빛처럼 선명한 푸른빛을 띠는 것이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면 작은 분수와 동상, 석조기념물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짐이 너무 무거워 잔디밭에 내팽겨치고 교통편을 구하려 더 들어가보니 예이랑에르 마을에서 헤어졌던 부산총각 J가 스트륀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을 보니 반갑고 울컥해서 페리 놈의 ‘만행’을 고발하니, 그도 나의 격한 반응에 좀 놀란 듯하다.

J를 지나쳐 좀 더 걸어가니 슈퍼마켓 체인 두 개와 노르웨이의 상징물인 거대 트롤 인형을 세워놓은 기념품 상점이 보인다. 꽤 깔끔하고 큰 건물인데 문만 열어놨지 직원이 없다. 캠핑장 쪽까지 가니 관광안내소를 겸한 페르귄트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있다. 안내소와 갤러리는 오후 5시에 문을 닫았고 친절한 레스토랑 웨이트리스가 선착장쪽에서 호스텔쪽으로 바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 손바닥만한 마을에 택시회사같은 것은 있을 턱이 없다. 다시 짐을 이끌고 선착장에 가서 보니 경사가 40도는 족히 될 길이다. 도저히 짐을 끌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침 체격이 좋은 털북숭이 현지인 남자가 한 명 지나가길래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택시 좀 불러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봤다. 역시나 택시회사는 없다면서 자기가 태워다주겠다면서 차를 가지고 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체면 따질 때가 아니다. 그가 볼보를 몰고 나오자, 대뜸 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던져놓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런데 다리를 건널 무렵 낚시를 하고 있던 여인과 껑충한 키의 10대 금발소년이 입을 쩍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채 우리를 쳐다본다. 진짜 놀란 표정들이다. “저 여자가 네 부인이니?” 하니 그렇단다. 소년은 보나마나 아들. 유러피언들은 일찍 결혼하는 이들도 꽤 많아 내 나이또래 정도인데도 꽤 장성한 자식을 둔 이들도 종종 보인다. 이 시골동네에서 한번 보기도 힘든 동양여자를 자기 남편이 옆에 태우고 가니 기절초풍할 노릇이겠다. 정말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낯을 들 수가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여기 사느냐고 물어보니, 지금 머무르고 있는 선착장 바로 옆 흰 집은 할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여름별장으로만 사용하고 오슬로에 살고 있단다. 노르웨이 같이 개인주의가 성한 곳에서 히치하이킹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이 남자는 친절하게도 짐까지 호스텔 리셉션 앞에 내려준다. 진정 고마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마침 가지고 있던 한국 전통 지갑을 아내에게 선물로 주라고 주니, 두 손으로 받아 고개를 숙여가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이런 모습은 헬싱키 호스텔에서 일하던 학생에게서 보고 두번째다. 이들도 정말로 감동할 때는 고개를 숙인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가 감당못할 큰 짐을 가지고 다니는 한심한 인간으로 보일 것에 쑥스러워 3개월간의 취재여행을 다니느라 이렇노라, 지도에서 볼 때는 이렇게 높은 언덕인지 몰랐노라, 부끄러워 이 말 저 말 해대면서 그와 눈도 제대로 못마주쳤다.

이곳 리셉션도 역시 동유럽인들이 맡고 있다. 여기서 한국인 여대생 N을 만났다. 다음 학기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N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나와는 반대로, 대개의 노르웨이 여행객들이 그렇듯이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고 있단다. 내가 연재하는 여행기를 봤다며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내가 거쳐온 카라쇼크와 노르카프 등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날씨가 무척 춥다고 일러줬더니 두꺼운 겉옷이 없다고 걱정을 한다. 그래서 내가 입고 다니던 갭 오리털 점퍼를 줬다. 미국제품이라 XS사이즈인데도 나에게 맞는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갭제품은 XS사이즈로 계속 입어온지라 나도 이렇게 작은 사이즈를 입었노라고 자랑할 수 있어 좋아하던 옷이다. 내 물건들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이라 아쉽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어차피 짐이 너무 무거워서 필요가 없어진 옷들을 버려 짐을 더 줄여야한다.

뒤늦게 도착한 강한 인상과 말투의 40대 한국여인 K는 N과 같은 방이다. 식당에 모여 한참을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다. K는 학생증 없이도 그냥 ‘학생’이라고 하면 믿어준다며 내내 학생 할인을 받으며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동양인의 나이는 구분을 못한다고 듣기는 많이 들었고 나더러도 미성년자냐, 학생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긴 있었다. 그래도 정말 저 나이의 얼굴을 학생이라고 믿어줄까 싶은데, 그렇단다. 만학도라 여길 수도 있는거고. 학생은 교통비 50%까지 할인이 가능한데 나만 손해보고 다녔나싶어 괜히 씁쓸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양심을 지키기로 했다.

이들은 내 옆방이고 나는 6인용 방을 캐서린이라는 콜라라도주에서 왔다는 미국여인과 둘이 사용하게 됐다. 59세라는데도 홀로 하이킹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고 근육질 몸매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 경로우대 사상이 머리에 박힌 한국인인지라 나이든 이와 한방을 사용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게다가 목재건물의 가장 큰 약점은 방음이 안된다는 것. 옆방에서 K와 N이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꽤 시끄럽게 들린다. K가 갑자기 우리 방문을 두들기더니 어젯밤 스트륀에 머물렀는데 이제 보니 디지털카메라 등 주요한 물건이 든 작은 가방을 그곳에 두고왔다며 내일 스트륀 호스텔에 가면 찾아봐달란다. 그래서 내일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다고 빨리 전화를 해보라고 일러줬다. 타산지석이라고, 그래도 여태 중요한 물건 하나 잃어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지나치다싶을 만큼 꼼꼼한 성격이 아무도 나를 챙겨주는 이 없는 곳에서는 크나큰 강점이 된다. <7월10일 온달스네스→예이랑에르→달스니바→헬레쉴트>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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