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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학자 “핵무기 불편한 진실이지만 … ”

이원영
LA중앙일보 기자
기자 신분으로 북한 비자를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달 8일 평양에서 열린 통일토론회에 참석한 북미 대표단 9명 중 유독 기자의 비자만 나오지 않았다. 기자를 토론회 발표자로 하기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앙일보 기자에게 비자를 내주는 것 자체가 통일에 대한 의지표현 아니겠느냐”는 말을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 이틀 전 비자를 받았다.



[현장에서] 모든 걸 미국 탓으로 돌려
“통일” 말만 나오면 반색
갈등 아닌 화해 길 열어야

 첫날부터 사진 때문에 해프닝도 있었다. 한 일행이 괴나리봇짐을 메고 가는 노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노인은 “왜 찍느냐”며 항의했다. 북측 안내원이 짜증을 냈다. “모르는 사람이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면 우리 인민들도 싫어한단 말입네다.”



 다른 북측 관계자는 ‘재미동포는 재미없다’는 말이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도 자랑스러운 게 많은데 서방 사람들이 자꾸 나쁜 사진만 유포하는 데 노이로제가 걸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겝니다.”



 그 뒤엔 사진·인터뷰에 별 간섭은 없었다. 공식 일정 외엔 안내원 없이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수차례 방북 경험이 있던 이들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북한이 이젠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토론자로 나온 한 북측 학자는 핵 문제에 대해 “겨드랑이에 밤송이를 끼고 살 듯 불편한 진실이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핵 개발을 한 게 서방세계엔 납득이 안 된다”고 하자 그는 “살아있어야 밥도 먹지 죽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우리가 (핵무기가 없던 시절) 느낀 전쟁공포를 아느냐”고 되받았다. 핵에 관한 한 서방과 북한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미국에 대한 원성의 골은 깊었다. 그 학자는 대동강 타일 공장에서 강도가 대리석의 7배나 되는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도 팔 수가 없는 것은 미국 탓, 5년이면 완공될 유경호텔이 26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것도 미국 눈치를 본 외국 투자자들이 발을 뺀 탓, 배를 곯아가며 핵을 개발한 것도 미국의 위협 때문이란 논리를 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통일’이란 말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통일토론회 하러 왔다”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좋은 일 하십니다. 어서 통일 돼야지요”라고 화답했다. ‘통일’이란 단어의 위력을 실감한 이후 주민들과 말문을 틀 때 많이 활용했다.



 일행은 북쪽 사람들의 말주변에 여러 번 놀랐다.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에 통일 염원을 담은 석판을 더 붙일 공간이 부족해 보인다고 하자 안내원은 “공간 채워지기 전에 통일 되갔지요”라고 응수했다. 기차 밖으로 보이는 시골에 아파트가 안 보인다고 하자 한 북한 승객은 “시골은 시골스러워야지요. 나라에서 저런 데 아파트 못 짓게 합니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린 시절 반공교육을 받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했던 기자에겐 첫 방북의 울림이 매우 컸다. 북한의 세뇌교육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우리도 북한에 관한 한 사고의 경직성에서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언론의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갈등을 빚고 있는 부부가 이혼 변호사를 찾아가면 화해의 길은 멀어진다. 그러나 둘을 잘 아는 스승을 찾았다면 서로의 단점보다는 몰랐던 장점을 일깨워주며 화해로 인도할 것이다. 언론도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적대의식에 가려 못 보고 있는 상대방의 실체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언론의 기능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 8일간의 방북이었다.



이원영 LA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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