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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 부장판사의 대법원 판결 비판 유감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



 법관윤리강령 4조 5항의 내용이다. 대부분의 법관은 이 조항을 들어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며 판결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꺼린다.



 지난 7일 이른바 ‘횡성한우’ 판결을 놓고 사법부가 한바탕 들썩거렸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단위농협 간부들이 ‘가짜 횡성한우’를 판매한 혐의(농산물품질관리법 위반)로 기소됐다. 다른 곳에서 데려온 소를 횡성에서 1~2개월간 키운 뒤 도축해 횡성한우로 팔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상고심 재판에서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깼다. 현행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규정(농식품부 고시)은 12개월 이상을 키워야 원산지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조항이 생기기 전엔 사육기간을 규정하지 않았으므로 법원에서 일률적으로 사육기간을 정해 원산지 표시규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무죄 선고 이유였다.



 하지만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 게시판에 대법원 판결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항소심 재판장으로 이 사건을 유죄로 판단했던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져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먹인 사료나 건강상태, 이동 후 도축까지 걸린 시간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 판결은 다른 지역에서 도축을 위해 가져온 소도 무조건 횡성한우라는 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농식품부 고시 개정 이전의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범죄와 처벌을 미리 법률로 규정하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대법원의 주장은 법리적으로 흠결이 없다. 현실논리를 따진 김 부장판사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옳은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김 부장판사의 글이 논란이 된 것은 3심제 원칙에 따라 대법원이 최종판단 권한을 갖는 우리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장 입장에서 대법원의 판단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법관인 그는 규범적 정의 못지않게 절차적 정의 또한 지켰어야 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도 “검찰이나 패소한 당사자나 할 수 있는 말” “불만 있으면 나중에 논문을 쓰면 되지 이런 식으로 공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급심 재판장마저 상급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데 재판 당사자들이 과연 법원 판결에 승복할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법원 판결의 권위는 스스로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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