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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땐 협상 중 지지율 역전 … 이번엔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 논의가 오가던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오른쪽)와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가 그해 11월 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농업경영인연합회 농정공약대토론회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10년 전인 2002년 11월 5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시작됐을 당시 여론조사에선 정 후보가 노 후보를 앞섰다.



문재인·안철수와 비교해보니
안, 지지율 꾸준 … 정과 달리 탄탄
2002년에도 11월 5일이 분수령
“3위 문-2위 안, 협상 초반이 중요”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기 전인 10월 25∼26일 실시한 본지 여론조사에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37.2%, 정몽준 후보가 26.6%, 노무현 후보가 18.4%의 지지율을 보였다.



 하지만 협상이 시작되자 순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8∼9일 본지 조사에선 이회창 후보 36.8%, 정몽준 후보 21.8%, 노무현 후보 21.1%로 정·노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0.7%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일주일 뒤인 11월 16일엔 노 후보가 2·3위 경쟁에서 역전하기 시작했다. 단일화에 합의한 지 11일 만이다. 당시 본지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40.5%, 노무현 후보는 23.8%, 정몽준 후보는 21.6%를 기록했다.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자 정 후보 지지층 중 일부 비민주당 지지자들이 이회창 후보 지지로 돌아섰고, 호남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지층은 노 후보 지지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 3위였던 노 후보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선 방식을 먼저 포기하고 여론조사 단일화를 수용했음에도 결국 11월 25일 단일 후보가 됐다. ‘노무현의 승부수’가 먹힌 셈이다. ‘약자의 양보’라는 감성과 ‘정통 야당의 힘’이라는 정치 현실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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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정통 야당 후보(문재인) 대 무소속 후보의 승부가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당시와는 기반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문·안 두 후보가 이념적·정책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이다. 노·정 후보는 ‘정체성’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당시 노 후보는 민주당 내에서 단일화 압력을 받을 때마다 “(당선된 뒤) 현대가(家) 뒤치다꺼리할 일 있느냐”며 정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일축하곤 했었다. 그러다 선거 막판 부랴부랴 단일화를 제안하고 성사시켰다. 하지만 노·정 후보의 이념적 거리보다 안 후보와 문 후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야권의 중론이다. 문·안 두 후보가 모두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혁신에 대해 합의하자”며 ‘좋은 그림’을 만들려 하는 이유다.



 더욱이 안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이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당시 정 후보의 지지율은 2002년 6월 월드컵 이후 상승하기 시작했었다. 정 후보에 비해선 안 후보의 지지율이 보다 더 견고하다는 게 안 후보 측 주장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다자대결 2위(안 후보)와 3위(문 후보)의 순위가 단일화 협상 이후 뒤바뀔지는 초반 일주일이 중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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