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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원화 추세적 강세의 긍정적 효과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
역설적이게도 국가적 재앙이 한 개인에게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영국 런던지사에 근무하던 시절 얘기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월, 서울로 출장을 왔다. 당시 원화 가치는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떨어졌다. 1파운드당 3000원이 넘었다(요즘엔 1750원 정도 한다). 런던에선 10파운드 하던 설렁탕이 한국에선 1.5파운드 수준에 불과했다. 런던에서 파운드로 월급을 받던 입장에서는 한국에 오니 갑자기 월급이 두 배 이상 늘어난 느낌이었다.

 최근에는 이와 반대다. 미국 달러값이 떨어지고 있다. 곧 원화 가치가 오르고 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건 세계 경기 침체 탓이 크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3차 양적완화(QE3)를 시행한 이후 세계 자금이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 그러면서 아시아 통화 가치도 오르는 모양새다. 실제로 원화를 포함해 중국의 위안과 싱가포르·대만의 달러 등은 최근 3개월간 2~3%씩 절상되며 연중 최고치에 도달했다.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홍콩·싱가포르에서는 부동산이 이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최고급 콘도인 앙모파크의 가격은 2년 전 600만 달러였으나 최근엔 900만 달러를 웃돌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 통화 가치가 오르는 마당에 원화 강세만 놓고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급격한 원화 강세는 막아야 한다. 과거 일본은 환율을 잘못 관리한 탓에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260엔이었던 환율이 95년 중반에는 80엔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한 수출 경쟁력 약화와 경기 불황을 막기 위해 일본이 저금리 정책을 편 결과, 결국 자산 버블을 불러와 장기 불황의 단초가 됐다.

 얼핏 보기에는 한국도 과거 일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과거 일본의 엔고 현상은 미국과 주요 선진국이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특정 국가와의 합의를 통한 것이었고, 현재 원화 가치 상승은 세계 유동성 증가로 아시아·신흥시장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의 원화 강세는 한국 경제의 견실한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과 양호한 재정 건전성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원화 절상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이뤄진다면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원화 강세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지만, 해외자금 유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주식시장의 추세적 강세는 원화 강세와 동반해 나타났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2004년 11월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100원 선 아래로 떨어지자 장기 박스권을 형성하던 코스피지수가 상승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호한 유동성 환경과 국내 신용등급 상승에 따른 긍정적인 영향 등을 감안할 때 원화의 추세적 강세는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일본·독일 등의 국채가 제로금리 수준을 보이는 반면, 한국 국채는 아직 2%대 후반이라 안정성과 수익성 양면에서 해외 투자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세계 유동성이 한국 시장으로 계속해 유입될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은 올해 들어 한국 채권시장에서 28조원을 순매수했다.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국은 왕성한 수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세계 동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한국 제품을 사줄 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 하락, 수출 증가,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한국 특유의 경기회복 공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며, 수요 부진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은 유례없는 이중고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기전자·자동차 업체는 과거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그동안 해외 생산 비중을 높였고, 원화 강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도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는 등 체질을 개선해 왔다. 단기적으로 환율의 변동성 확대는 기업의 투자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원화의 추세적 강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아울러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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