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서비스는 덤인가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두 개 사시면 하나는 서비스로 드릴게요.” “안주는 서비스입니다.” 여기서 서비스는 공짜 물건이라는 뜻이다. 서비스의 우리말은 ‘용역(用役)’이다. 서비스가 공짜 물건을 뜻한다면 용역은 험하고 굳은 일이라는 뜻이 배어난다. ‘용역업자’는 관청에서 부르면 즉시 달려가는 을(乙), ‘철거용역’은 남들이 기피하는 뒤치다꺼리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사전적으로 서비스는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勞務)를 제공하는 일이다. 따라서 상품이나 술안주를 서비스라고 부르는 것은 어법상 틀렸고, 서비스를 덤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틀렸다. 경제활동의 한 축인 서비스가 어쩌다가 공짜 물건이나 험한 일을 뜻하는 말로 전락했을까?

 한편 서비스에 ‘지식’을 붙이면 근사한 말이 된다. 지식서비스는 미래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도 각종 서비스산업진흥법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몇 개 업종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는 아직 제값을 주고 지식서비스를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식서비스의 정점에 법률과 의술이 있다. 변호사와 의사는 신체의 구금, 질병과 죽음이라는 인간이 가장 겁내는 지식을 독점한 전문인이다. 을이 된 피의자와 환자는 갑인 법조인과 의사 앞에 절대적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다. 설사 법으로 기준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수임료와 의료비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을은 많지 않다.

 반면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지식서비스는 그야말로 헐값으로 매겨진다. 건축설계비가 10년 전보다 오히려 낮아진 실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저가 입찰제도와 민간의 설계비 후려치기가 관행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건축사의 지적 활동을 도면과 같은 물리적 결과로만 판단하는 제도가 버티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는 건축계의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이를 가격경쟁의 혜택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공정거래의 틀로 바라보고 있다. 건축계의 항변은 업역을 감싸기 위한 집단이기주의로 무시된다. 문제는 이것이 건축계의 생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설을 지식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체력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과 토목을 포함한 건설산업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떠받쳐온 일등공신이었다. 중산층이 내 집을 마련하고, 기업이 개발 사업을 통해 몸집을 키운 것도 건설경제 덕분이었다. 2007년 현재 국민총생산 대비 건설투자 비율은 17.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평균보다 7% 이상 높다.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국가부도까지 거론되는 스페인이 한국과 같다. 반면 지식서비스산업 비율은 25%로 OECD 선진국 평균 42%의 절반 수준이다. 건설산업을 기술과 설계(디자인)를 결합한 고부가가치의 지식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한국 경제 전체의 숙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건설산업 피라미드의 바닥에서 건축이 허덕이고 있다.

 작가가 몇 년간 심혈을 쏟아 두툼한 책을 썼다고 하자. 만약 종이와 잉크 값만으로 책의 가격을 매긴다면 작가가 생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작가는 원고 교정을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다면 책의 질은 어떻게 될까?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간했다고 하자. 책 표지에 저자는 빼고 출판사 이름만 적는다면 어떨까? 극단적 비유지만 건축설계의 현실이 이렇다.

 정부는 건축을 포함한 20여 개의 업종을 지식기반서비스업으로 지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이미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출판·영상·음악·소프트웨어 등 기타 지식기반서비스업도 밖으로 드러나는 겉모습과 달리 실상은 건축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두뇌 노동도 노동이다. 이를 제대로 지불하는 사회가 공정사회다. 대학진학률이 전 세계에서 최고인 한국에서 젊은이들은 사회로 나아가 두뇌 노동을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 지식서비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지식서비스산업은 성장할 수 없고, 젊은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공정거래와 공정사회의 모순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