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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때림의 철학'이 없다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서슬 퍼런 특검의 칼날이 정권 말기의 청와대를 정조준하고 있는 저간의 상황은 조금 안쓰럽다. 안쓰러운 마음도 달랠 겸 약간의 공치사를 하자면 이렇다. 대통령의 자격 중 중요한 게 외교인데, 대북정책을 뺀다면 MB는 그런대로 외교를 잘했다. 이른바 단독 플레이 외교다. CEO 사업수완과 쾌활한 성격이 외교무대에서도 잘 통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감동시키기도 했고, 정상급 회의를 몇 차례 따왔다. 말이 되든 말든 쏴대는 콩글리시로 정상회담 파티장을 비좁다고 다녔으니 그 활동량을 감당할 외국 정상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이라면 뭔가 해낼 거라는 기대감이 높아졌고, 덩달아 국제적 위상도 상승했다. 예기치 않았던 수확이었다.



 어쨌든 경륜이란 중요하다. ‘나는 가수다’의 노래 고수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훨씬 넘는 수련기간을 보냈다. 그래도 하나같이 떨리고 가끔 실수도 한다. 노래 실력이 비슷해도 청중을 열광시키는 사람은 따로 있다. 청중이 원하는 걸 아는 사람, 감성 흐름에 강약을 넣을 줄 아는 사람이다. 국민가수 조용필의 팁에 따르면 ‘때려줄 때를 아는’ 사람 말이다. 그건 무대 경력과 체험에서 나온다. 그 체험이 쌓여 공연철학, 가창(歌唱)철학으로 진화한다. 올 대선의 분위기가 여태 썰렁한 것은 매혹이 없어서다. 내키지 않지만 어쨌든 삼자택일을 해야 할 판이다.



 문재인 후보만큼 ‘때림의 철학’이 엇박자를 내는 사람도 드물다. 모범생 외모와 말투에 쏟아내는 건 멘붕스쿨의 극단 처방들이니 언제 열광해야 할지 헷갈린다. 거기에 단일화에 목매는 ‘동백아가씨’ 스타일이 좀 걸린다. 그런 그를 ‘그리움에 지치고 울다 지치게’ 하는 국민 대타 안철수 후보, 뭔가 때려주면 좋겠는데 그의 사전엔 ‘때림’이란 단어가 없다. 추임새도 없다. 그저 ‘국민들께 물어봐야겠죠~’다. ‘물어봐라, 물어봐, 얼른!’ 개콘 허경환이라면 이렇게 외쳤을 터인데, ‘물어보기’를 공약 1조에 내건 후보가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는 것이 희한하다. 구태 정당 혐오증이 그만큼 깊은 탓이다. 감동시킬 스토리가 가장 풍부한 박근혜 후보는 ‘자기 울타리’만 때리고 있으니 보는 심정이 딱하다. 역사와 경륜을 합친 엄청난 자원으로도 드라마틱한 공연무대를 만들지 못한다. ‘갈 데까지 가볼까’를 열창하는 싸이의 무대를 보면 감을 잡을 만도 한데 말이다.



 때림이 없는 정책공약 다발에서 통째로 빠진 것이 외교다. 경제, 통합, 외교가 대통령의 삼부인(三符印)이라면, 외교는 삼분의 일이고 또 한국의 사활을 좌우하는 영역이다. 지난달 18일, 한국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피선되었을 때 후보들은 아무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녹색기후기금(GCF) 본부를 한국에 유치하자 언론매체는 잽싸게 3800억원이라는 경제효과에 우선 주목했는데 그걸 한반도 미래구상과 연결해 따끔히 지적하는 후보는 없었다. 경륜이 없어서다. 김숙 유엔대사는 190개국 표심을 사느라 1년여를 뛰었다. ‘개도국과 선진국 간 교량역할을 해야 할 한국이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소감이었다. ‘공간 확보’- 이게 한국 외교의 큰 방향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얼마 전 감동적인 국회연설을 했다. “유엔과 한국: 함께 이루는 인류의 꿈”-얼마나 ‘때리는’ 비전인가. 이건 세계 국가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 현장감독 체험기다. 우리로선 성에 차진 않지만 빈곤, 교육, 인권, 온난화 등에서 우등생인 ‘한국의 이야기’를 ‘세계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건 사무총장의 몫이다. 그렇다면 후보들의 몫은? 세계가 한국에 거는 희망과 기대를 우리의 미래 이야기에 접목하는 것, 선진국과 개도국 간 교량을 구축해 ‘세계적 연대’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뭘 내놓고 계신가, 후보들은? 유엔은 고사하고 국제회의에 한번쯤은 가보시긴 하셨나? 그나마 박근혜 후보가 어제 신뢰·균형외교를 내놨다. 원칙일 뿐 냉철한 글로벌 구상에는 못 미친다.



 중국이야 권력이 닫혔으니 그렇다 치고, 일본이 점점 소국화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외교경륜이 전혀 없는 파벌 좌장이 내각총리로 추대된 탓이다. 대국외교의 좌표를 잃었다. 최근의 총리 아소 다로, 간 나오토는 물론 현 총리인 노다 요시히코 모두 재무상 출신이다.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서 일본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지, 돈을 세계 어디에 써야 자국의 연성권력(soft power)이 커질지 지도력을 기르지 못했다.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이때, 혹시 중동을 돌아본 후보가 있는지? 북한 실상을 직접 목격한 후보가 있는지?



 오늘도 정책팀이 건네준 공약집을 들고 동분서주하는 세 후보, ‘때림의 철학’이 배어 나오는 감동 공연은 아니더라도 배신은 때리지 않을 거라는, 초겨울 나목처럼 꿋꿋한 인고(忍苦)의 예감이라도 전해줄 수 있으실는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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