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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등수 매기기…‘블라인드 심사’ 땐 인기투표 변질

제49회 대종상 영화제 15개 부문을 휩쓴 이병헌 주연의 ‘광해’. [사진 CJ E&M]

대종상 ‘광해’ 15관왕 논란으로 본 영화상 심사

제4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벌어진 영화 ‘광해’의 ‘싹쓸이’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광해’는 총 19개 부문 중 작품상을 비롯한 15개 부문 후보에 올라 모두 상을 탔다. 15개 부문 수상은 1962년 대종상이 생긴 이후 최초다. 대종상뿐 아니라 국내 다른 영화상, 아카데미 등 해외 영화상에서도 15관왕은 이례적인 기록이다. 아카데미상 최다 기록은 ‘벤허’ (1959) ‘타이타닉’(1997)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003) 등 3편의 11개 부문 수상이다. 대종상 시상식 후 영화평론가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광해’가 무슨 ‘벤허’냐. ‘아바타’도 못 이룬 업적을 세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공정성 시비가 계속되자 대종상 집행위원회는 1일 본심 심사위원 14명을 공개했지만 당분간 파장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영화상 선정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취향과 주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예술작품에 점수나 등수를 매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의 성격,심사위원의 성향, 후보작의 면면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결과가 다양한 건 그래서다. 예컨대 2010년 국내 영화상 남자연기상은 ‘아저씨’의 원빈과 ‘이끼’의 정재영으로 갈렸다.



방점을 대중적 인기와 연기력 중 어디에 찍느냐에 따른 결과였다. 2일 발표된 제32회 영평상도 좋은 예다. 이 상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소속 회원들이 투표로 정한다. ‘광해’는 미술상 1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반면 대종상에서 ‘광해’에 ‘물 먹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는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상을 가져갔다. 달라도 너무 다른 결과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대종상에선 여우주연상을 받는데 그친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




그래서 영화제가 끝나면 ‘나눠먹기’나 ‘몰아주기’ 논란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최대공약수를 뽑아냄으로써 잡음을 줄이는 게 영화상의 관록이고 수준이다. 세계적인 영화제들은 권위 있는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해 그들의 식견과 난상토론에 기댄다. 심사위원들은 후보작들의 미학적·산업적·사회적 요소를 두루 고려한다. 최종 결정을 위한 내부 조율도 거친다. 예술영화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칸 영화제는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수상작이 감독상이나 심사위원대상을 동시에 타지 않도록 하는 불문율이 있다. 아예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투표로만 결정하기도 한다. 아카데미상은 5800여 아카데미 회원들의 분야별 투표로 후보작을 정하고(작품상 후보는 전체 회원 투표) 전체 투표로 수상작을 결정한다.



몰아주기?나눠먹기 뒷말도 무성

최근 공개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의 감독 데뷔작 ‘주리(Jury)’에 등장하는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작품에 상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다 급기야 맥주잔을 깨고 멱살잡이를 하기에 이른다. 예술에 등수를 매기는 일의 어려움,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진통을 앓는 심사장 풍경이 생생하다. 올해 대종상엔 이런 진통이 없었다. 외형적으론 공정했다. 전문가 본심도 일반인 예심과 똑같이 서로의 의견

교환 없이 각자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를 은

행 대여금고에 넣었다가 시상식 때 개봉했다.



그런데 이런 ‘블라인드 심사’가 맹점으로 작용,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심사 시기와 흥행 시기가 맞물린 점, 대중성을 중시하는 심사위원들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걸로 보인다. 영화상 심사 경력이 있는 한 영화평론가는 “전체 후보작들의 수준을 두루 고려해 ‘몰빵’ 현상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심사위원의 자질인데, 올해 대종상은 인기투표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작품성에서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광해’ 입장에선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올해는 ‘광해’에 앞서 1000만 관객을 넘긴 ‘도둑들’을 비롯해 ‘부러진 화살’ ‘댄싱퀸’ ‘범죄와의 전쟁’ ‘건축학개론’ ‘은교’ 등 대중성과 작품성 양쪽 모두에서 성과를 낸 영화가 많았다. 어느 한 영화가 15관왕이란 초유의 기록을 낼 만큼 흉작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심사위원단의 자질 논란도 일고 있다. 14명 중 다수가 현업을 떠난 지 오래된 원로이거나 현재 문화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지적이다. ‘건축학개론’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2일 “심사위원 명단을 보고 우리 영화를 출품한 걸 후회했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취화선’은 원래 황금종려상”

영화상에서 기계적으로 공정성을 외치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칸 영화제 등 세계적 권위의 영화제에서도 심사위원들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심사위원장 성향이 중요시되는 게 대표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4)와 ‘박쥐’(2009)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건 그 해 심사위원장이었던 퀜틴 타란티노 감독과 팀 버튼 감독의 선호가 강하게 작용했다는게 정설이다. 유럽 중심적 시각, 국가나 대륙별 안배, 해당 국가의 영화산업 규모와 칸 영화제가 발굴한 영화인에 대한 호의 등도 작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가령 7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원래 ‘양철북’ 단독 수상이었지만, 미완성 상태로 출품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 공동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 시상식장에서 “영화제 집행위원회의 압력 때문에 시상식 직전결과가 바뀌었다”고 폭로하면서 알려진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발표 직전과가 바뀌는 일은 드물지 않다. ‘취화선’ (감독 임권택)의 제작자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는 2005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2002년 칸영화제 시상식 직전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취재한 결과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감독상 수상이었고 황금종려상은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게 돌아갔다. 이 대표는 “시상식 직전 상이 뒤바뀐 게 분명했지만 확증이 없으니 따질 수도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연 배우 윤정희의 연기상 수상을 믿을 만한 정황이 충분했다. 하지만 주최국인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에게 상이 돌아갔고‘시’는 각본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 감독은 시상식장에서 각본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당황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랐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을 경우 이를 국내영화제에선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골칫거리다. 영화제마다 권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서열을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강수연은 89년 대종상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반면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지만 대종상 작품상·감독상·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가 진보신당 홍보대사를 맡았기 때문에 정부에 밉보여서 그랬다는 설이 돌긴 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제49회 대종상 영화제 15개 부문을 휩쓴 이병헌 주연의 ‘광해’. [사진 CJ E&M]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대종상에선 여우주연상을 받는데 그친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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