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논쟁] 한글 전용 정책 폐기돼야 하나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가 지난달 “국어기본법의 한글 전용 정책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추진회는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고유어보다 훨씬 크다”며 한자를 배척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에 한글단체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글 전용 정책이 폐기돼야 하는지를 둘러싼 양쪽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우리 문화 담긴 한자, 외국 문자 아니다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 원장
한·중·일 삼국은 근세기에 들어서면서 한자 폐지와 로마자 선망론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극심한 서사(書寫·글쓰기)의 변혁기를 거쳤다. 우리나라도 광복 직후부터 한글과 애국심을 결합한 한글 전용론이 한자 폐지 정책을 주도하며 60년 넘게 한글 전용 교육이 행해진 결과 오늘날에는 일부 노년층을 제외하면 한자(漢字)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 명실공히 한글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2005년 국어기본법 제정으로 한글 전용 정책과 한글 전용 현상이 확고부동한 우리나라 문자 쓰기 체제로 굳어가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 고시의 ‘교과서 한자 혼용 금지 규정’과 ‘한자교육 배제고시’가 국어기본법을 측면 지원함으로써 교육현장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오늘날의 언어문자 생활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한자를 읽고 쓰지 못하니 한자어 낱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져 정확한 의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종의 언어 공황상태가 빚어지고 있다. 잘못된 국어 사용으로 인한 폐단은 일류 문화 국가가 되겠다는 우리 한국 사람의 염원을 멀리 벗어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헌법소원의 요지(要旨)는 한자를 한국어가 아닌 외국 문자로 규정함으로써 한자 교육을 가로막고 있는 국어기본법이 위헌임을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국어기본법에는 ‘국어’의 개념 규정이 불분명하고 한자어는 국어에 포함시키면서도 그것을 한자로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제한해 외국어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문구도 들어 있으니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헌법소원 청구인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한글과 한자, 즉 국어는 관습헌법 사항이라는 것이요, 둘째는 초등학교 국어과목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하라는 것이다. 사회 일반의 글쓰기에서 한글 전용이나 한글·한자의 병용은 쓰는 사람 개인의 자유의사와 판단에 맡기되 한자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국어과 정규교과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초·중등학교의 정규 국어과목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알고자 하는 욕구, 배우고자 하는 학습권을 학생들로부터 박탈하는 것이요, 한자 가르치기를 원하는 학부모의 교육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한자는 한국어를 적는 국자(國字)다. 그것은 적어도 2000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서사문화(書寫文化)를 이끌어온 핵심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향찰·이두·구결과 같은 우리 식 표기 방식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간 그 글자로 우리의 역사·사상·문학을 개진했으며 그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밝혀왔다. 지난 2000년간 한자로 쓰인 우리 고전을 우리가 지키고 가꾸지 못하면 우리는 조상이 물려준 정신문화 재산을 잃어버리는 못난이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국민 모두가 고전한문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만이라도 초·중등학교에서 가르쳐 일상 언어생활에 불편이 없게 하면 그것이 곧 전통문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분들도 아름다운 고유어를 많이 발굴해 사용하는 노력을 기울이되 심오한 사고(思考)와 분석이 필요한 전문 학술용어의 기능을 인정하고, 한국어인 한자를 한문과 혼동하며 부정(否定)할 것이 아니라 한글과 한자가 다정히 공존하게 하여 한국어를 더 살찌우는 풍부한 어문생활 풍토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 원장





쉽고 편리한 한글의 가치 지켜야 한다



김진규
공주대 명예교수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위원
세종 임금께서는 우리말이 중국어와 다름을 아시고 가장 쉽고도 편리한 한글을 만드셨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말과 한글은 천시당하고 중국에서 밀려 들어온 한자만을 사용하여 금쪽같은 우리 토박이말들이 죽어 없어지거나 천한 말과 글로 밀려나 뒷방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에서 초·중·고등학생의 정규 교과에서 한자 교육을 시켜 달라는 등의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것은 우리의 국어 생활을 또 한번 어두웠던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소원서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를 반박해 본다.



 첫째는 한글 전용 교육으로 인해 한글 표기조차 정확히 쓰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으로, ‘희한(稀罕)’을 ‘히안’ 등으로 잘못 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자 혼용과 전혀 다른 문제이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이나 ‘희한(稀罕)’이라는 표기를 바르게 쓰기 위해 그 한자를 배우라는 뜻인데, 그 일이 훨씬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희한’의 ‘ㅢ’음은 이미 ‘ㅣ’가 표준 발음으로 인정되고 있다. 토박이말인 ‘늴리리, 무늬’를 ‘닐리리, 무니’로 ‘ㅢ’음을 자주 틀리는 것은 한자 교육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이다.



 둘째는 낱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니 한자 병용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00년 전 일제 강점기 때의 ‘기미독립선언문’처럼 한자말투성이로 쓰던 시대에는 한자 병용이 필요했을 것이나, 지금은 거의 토박이말이나 쉬운 한자말로 바뀌어서 염려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낱말마다 한자를 병용한다면 문서의 분량이나 작성 속도에서 큰 불편이 예상된다. 더구나 한자는 다의성이 많아서 낱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수도 있다. ‘선생(先生)’ ‘미국(美國)’을 한자로 표기하면 ‘먼저 태어남’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 된다. 낱말의 본래 뜻인 ‘스승’ ‘나라 이름’과는 멀어진다.



 셋째 한자의 사용이 전통문화 계승과 문화의 발전, 교류에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왕조실록을 읽거나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도를 읽으려면 옛날처럼 한문 서당을 오랫동안 다녀야 하는데, 자기 전공은 언제 공부하겠는가? 오히려 우리 전통문화 계승과 교류를 위해서는 더 많은 한문 전문가를 따로 지원해 그분들이 옛 서적들을 쉬운 우리 한글로 번역하게 하면 될 것이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를 이만큼 경제대국으로 이끌고 있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류문화의 중심에는 ‘한글’이 있다. 스마트폰의 자판만 보아도 세계의 어느 문자도 흉내 낼 수 없게 간결하고 과학적이다. 모음 ㅣ, ·, ㅡ, 자음 ㄱ, ㄴ, ㄷ, ㅂ, ㅅ, ㅈ, ㅇ 등 모두 열 개의 자판으로 40만~50만 낱말을 모두 적을 수 있다. 일본의 가나는 물론이고 서양의 알파벳보다도 훨씬 빠르고도 정확하다. 만일 한자를 병용한다면 자판을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가르침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고 간결해야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한글 전용이 정답이다. 지금 우리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한자 병용 정책이 아니라, 거리에 나가면 흘러넘치는 국적 모를 외국어 남용 문제나 저속한 욕설 등을 가다듬는 국어순화운동이다.



김진규 공주대 명예교수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