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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온라인 가격비교 업체 키운 마이클 양

[연합뉴스]

14세 소년은 부모 손을 잡고 미국에 이민 갔다. 1976년 서울 명륜동의 달동네 집을 뒤로하고서였다. 부모는 공장에서 일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아이는 꿈을 키웠다. ‘하이테크 쪽의 달인(達人)이 되겠다’는 포부였다.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마이사이먼닷컴(Mysimon.com)’이란 회사를 세워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 가격비교’ 업체로 키운 마이클 양(51) 스토리다. 소년 가슴에 불을 지른 건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고모부였다. 한국의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일하다 상관의 도움으로 60년대 중반 미국에 유학 간 황규빈(76)씨를 말한다. 황씨는 텔레비디오라는 컴퓨터 단말기 회사를 세워 한인 최초의 ‘나스닥 상장’(83년) 신화를 일궜다. 양씨는 마이사이먼닷컴을 매각한 뒤 2004년엔 비컴닷컴이란 온라인 쇼핑 업체를 세워 주목받는 등 이 분야 실력자가 됐다. 다음 달 8일 ‘테크플러스 2012’ 행사에 연사로 나서기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성공 비결이 뭔가.

 “큰 변화가 있을 때 잡아채는 힘이다. 마이사이먼닷컴을 만들 때도 그랬다. 인터넷이란 새 기술이 등장했을 때 남이 생각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성공할 거란 자신이 있었다.”

 -막상 실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소비자들이 뭘 생각하는지 알면 된다. 이민 간 뒤 고교 때부터 신발·오디오 등 같은 제품인데 가게마다 가격이 다른 걸 보고 신기했다. 비교하면서 사는 게 미국인 습성이다. 평소 이런 걸 눈여겨봤다가 쇼핑 가격비교 사이트를 만든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강조한 ‘소비자 지상주의’ 비슷한데.

 “우연인지 내가 이민 온 76년에 애플이 생겼다. 소비자 마음을 끌어당기려면 ‘단순함과 쉬움’(simple & easy)의 전략을 추구하면 된다. 나를 소비자로 가정하고 어떻게 하면 쉽고 편하게 물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하면 길이 열린다.”

 -기술만으로는 안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테크놀로지와 휴머니티(인간본성)를 잘 섞어야 한다. 사람 마음을 공략하라는 얘기다. 잡스도 그랬다. 붓글씨에 매력을 느낀 그는 이를 아름다운 컴퓨터 서체로 개발해 사용자에게 호평받았다. 서양인이 동양의 그런 아름다움을 간파한 게 놀랍다. 내가 만든 마이사이먼닷컴도 그렇다. 기술 면에선 다양한 가격을 비교해 주는 검색엔진 개발이 그때만 해도 쉽지 않았지만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성공했다. 또 회사 이름을 놓고 고민하는데 직원이 ‘사이먼 세즈’(Simon says, 사이먼 가라사대)라는 행동 따라하기 놀이를 거론하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사이먼이 똑똑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 상호로 등록했는데 미국인 감성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국에선 그게 잘 안 된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도 결국 그런 ‘소프트 파워’를 둘러싼 싸움 아닌가.

 “어려서부터 디자인·소프트웨어·창의력과 연계된 교육이 필요하다. 그뿐이 아니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근본적으로 수학에 강하고 모르는 분야를 실험하려는 의지가 투철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궁금증 코드’가 구글을 검색엔진 업체에서 모바일 회사, 나아가 무인자동차 사업까지 하는 회사로 키웠다.”

 -실리콘밸리의 ‘실패 문화’를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미국은 뭘 하다 안 돼도 ‘관용’으로 받아준다. 실패하면 본인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에게나마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방식이 다른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실패의 공포가 너무 강하다. 실패해도 뭔가 남는 게 있다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나도 마이사이먼닷컴을 만들 때 200곳에 투자요청을 했는데 195곳에서 거절당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생각의 크기를 달리하라. 페이스북과 유사한 서비스가 한국에 먼저 있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을 장악한 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하면 수십억 명을 상대로 서비스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한국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의 젊은이들은 ‘기하급수적 매출’이 가능한 사업모델을 늘 고민한다.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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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