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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만들고 며느리가 지키는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최순우·황수영·진홍섭 ‘개성 3인방’과 인연
이사장 시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며느리 관장이 전시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호림이 사랑하는 보물’ 코너다. 1971년 5월 26일 250만원을 주고 처음 소장한 고려청자 주전자 ‘청자상감유로연죽문표형주자’ 앞에서 윤 이사장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유색(유약색)이 좋구나.”

무역회사인 성보실업을 운영하며 유화증권에 이어 서울농약까지 인수해 사업에 매진하던 윤 이사장이 문화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9년. 나중에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동향(개성) 선배 최순우(1916~1984)·황수영(1918~2011)씨의 요청을 받고 ‘고고미술’이라는 잡지 발간을 지원해 주면서부터다. 문화재 대신 골동품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던 시절, “소중한 우리의 문화 자산이 몰래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선배들의 외침은 이상하게 가슴에 여운이 되어 남았다. 투자성을 따지는 대신 ‘진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인가’라고 물었던 것도 애초부터 박물관을 꿈꾸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기에 개성상고 선배인 진홍섭(1918~2010) 이화여대 박물관장까지 가세하면서 한국 고미술학계를 이끌던 이들 ‘개성 3인방’은 초보 수집가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됐다.
특히 1971년부터 77년까지 이어진 최순우 관장의 ‘편지 과외’는 유명하다. 윤 이사장이 직접 그림까지 그려 특징을 설명해 보내면 구입 여부를 조언하는 식이다. 74년 1월 8일자 스탬프가 찍힌 편지를 보면 모두 4개의 도자기 설명 중 2번에 대해서만 평을 적었다. “이 물건은 사 두십시오. 좋은 물건이고 비교적 주의를 끌 만한 장래가 있을 것입니다. 값을 좀 조절하셔서 놓치지 마십시오. 그 밖의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윤 이사장은 최순우 관장에 대해 “사심이 없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문화재 사 모으며 사기도 당하고 횡재도 하고
“무수히 조언을 해주셨지만 사례를 한 번도 받지 않았어요. 언젠가 서예 작품 하나를 드렸는데 알고 보니 내 이름으로 기증을 하셨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금을 내러 갔다가 현물 기증도 있다고 해서 알게 됐죠. 오늘도 이따 3시에 최순우 고택에서 강의가 있어요. 들러볼 생각입니다.”

나중에 국보 222호로 지정된 ‘백자청화매죽문호’ 매입을 권유한 것도 최 관장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상인이 부른 가격은 4000만원. 서울 변두리 집 한 채가 100만원 하던 시절, 시내 건물 한 채 값이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결단을 내렸죠. 그런데 알고 보니 15세기 제작된 ‘고청화(古靑華)’였습니다. 전체적인 모양과 색깔, 문양의 필체 등이 쉽게 찾아보기 힘든 최고 수준이었죠.”

1 백자청화매죽문호(유개), 조선 15세기, 높이 29.2㎝, 국보 222호 2 토기새장식호, 가야 4세기, 전체 높이 42.2㎝ 3 청자상감모란운학문귀면장식대호, 고려 13세기, 높이 48.8㎝ 4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2.7㎝, 국보 179호 5 청자호, 조선 15세기, 높이 23.4㎝, 보물 1071호 6 이경윤의 산수인물화첩 중 ‘시주도’, 조선 16세기,모시에 수묵,23.3 x 22.2㎝ 7 불정최승다라니경, 고려 12세기, 권수 8 최북의 ‘가을 토끼, 조를 탐하다’, 조선 18세기, 종이에 담채, 33.5 x 30.2㎝ 9 최북의 ‘산을 내려오는 표범’, 조선 18세기,종이에 담채,33.5 x 30.2㎝ 10 금동대세지보살좌상,고려 14세기, 높이 16㎝,보물 1047호
74년 구입한 ‘백자청화오족용문대호’도 마찬가지다. 높이가 56.9㎝나 되는 장대한 몸체에 발가락 다섯 개 달린 용이 꿈틀대는 형상이었다. 왕실에서만 쓰인다는 이른바 ‘오족용준(五足龍樽)’. “발가락이 네 개였다면 10만원 내외로 살 수 있었죠. 그런데 다섯 개였어요. 고민하다가 710만원을 주고 샀는데 솔직히 좀 과하다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을 아예 볼 수조차 없으니까요.”

전체 7권 7책의 완벽한 상태로 소장하고 있던 고려 사경(寫經)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을 일본까지 날아가 재일동포로부터 어렵사리 구입한 것은 가장 보람찬 기억이다.

가끔 횡재하는 경우도 있다. ‘분청사기상감연당초문[공안]명’이 대표적이다. 이 상감분청사기는 품새가 별로 정교하지 못해 내키지 않았는데 중간 상인이 하도 애원해 어쩔 수 없이 사게 된 것. 그런데 알고 보니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공안(恭安)’이라는 글자 덕분이었다. 조선 초기 존속했던 관청 ‘공안부’에서 제작된 것으로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자료적 가치가 컸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 학계에서는 다들 궁금해 하고 있던 차였다. “300만원도 안 준 것인데, 매득했죠(시가보다 싸게 샀죠).”

41년간 문화재를 수집했으면 감식안도 이제 경지에 올랐을 법한데, 좋은 물건을 골라내는 안목을 묻자 윤 이사장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목을 높이는 비법은 없어요. 많이 보고, 수업료도 내는 수밖에. 가짜 청동은입사 정병과 통일신라 석등을 속아 산 적도 있죠. 그 뒤로는 절대 아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옆에서 오 관장이 거들었다. “우선 등록된 가게가 있는 중개인에게서만 삽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사지 않습니다. 분야별로 두세 분의 자문위원이 계신데 학예실에서 검토한 것을 다시 검증해 주시죠. 그런데도 의견이 갈릴 경우가 있어요. 값을 낮추기 위해 가짜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땐 이사장님이 일주일 정도 곁에 두고 보다가 최종 결정을 내리시죠.”

유물 구입 예산 한도 넘기기 일쑤
박물관은 문을 연 이후가 더 중요하다. 꾸준히 유물을 구입해야 하고, 연구해야 하고, 전시를 기획해야 하고, 공간도 관리해야 한다. 이게 다 돈이다. 웬만한 사립박물관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윤 이사장은 안정적인 운영과 재원 확보를 위해 성보문화재단에 유물 소유권을 모두 넘기고 부동산과 유가증권 같은 개인 재산도 기부했다. 강남 요지에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박물관 운영에 어려움이 없도록 한 것이다. 철저한 검약정신이 몸에 밴 ‘개성 상인’은 “좋은 의복을 입거나 좋은 음식 먹는 걸 삼가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한번 해본 것”이라고 말한다.
집에 있던 유물도 웬만한 것은 다 박물관으로 보냈다. “윤용이 교수님은 지금도 어머님만 보면 미안해 하세요. 아끼시던 사각형 편병을 당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님께서 개관을 앞둔 박물관에 갖다 놓으라고 주셨거든요.”

95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는 오 관장은 이화여대 도예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 전국 대학미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78년 셋째 며느리가 된 뒤 남편(윤재륜 서울대 공대 교수)과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88년 호림박물관에 입사해 학예연구사로 일을 시작했다. “아버님께서 쟤는 집안에서 살림만 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는 게 오 관장이 생각하는 관장 선임 이유다. 윤 이사장은 “전시 기획, 유물 대여, 도록 제작 등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은데 그걸 다 꼼꼼히 정확하게 해내더라”고 대견해 했다.

오 관장은 “옛 유물을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하던 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것저것 특이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치미술가와의 협업으로 철조망에 유물을 걸어놓는다거나 보존 유리를 걷어내고 토기를 시원하게 배치하는 등의 파격적인 전시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일로 신림동 본관 이사를 꼽았다. “저를 포함해 네 명의 직원이 1만 점에 가까운 문화재들을 매일같이 포장했어요. 1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지금처럼 무진동 트럭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 혹여 깨질까 봐 조심조심 트럭 앞뒤로 차를 타고 호위해 가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당초 윤 이사장이 생각한 박물관의 연간 유물 구입비는 좋은 물건이 나왔다 하면 마다하지 않는 덕분에 매번 한도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이사장님이나 저나 좋은 유물에 욕심이 많아요. 만약 수리한 부분이 있는 것이라도 ‘학자들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있으면 구입합니다. 저희는 박물관이니까요. 꼭 명품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연말이 되면 좋은 물건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럼 내년 예산을 미리 당겨 쓰네 마네 하며 내부적으로 실랑이를 하게 됩니다. 올해 연말에는 또 어떤 유물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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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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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