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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의 도발 가장 비상식적인 가장 예술적인…

1 서상익의 ‘Portrait-M. Duchamp’(2012), Oil on canvas, 27.3 x 19 ㎝
남성용 소변기 하나가 20세기 초반 미술사의 지축을 흔들었다. 1917년 미국 그랜트 센트럴 팔레스에서 4월 10일부터 열린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출품된 ‘샘’이다. ’샘’은 작품이랄 것도 없고, 그냥 R. 머트라고 사인이 된 남성용 소변기였다. 모두 황당해 하고 있을 때, 아렌스버그라는 사람이 그 작품을 사겠다고 나서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그는 뒤샹의 후원자였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전시의 심사위원이었던 마르셀 뒤샹(1887~1968)은 “머트가 ‘샘’을 제 손으로 만들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자기가 바로 그 문제의 머트라는 것은 시치미를 딱 떼고 말이다.

2 마르셀 뒤샹의 ‘샘’(1917)
피카소보다 많은 영향력, 작가를 위한 작가
변기의 미술관 난입사건과 더불어 미술사에는 ‘오브제(object)’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오브제란 예술적 의미를 부여한, 예술가가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은 모든 기성제품(readymade)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브제가 없었다면 현대미술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뒤샹이 고른 오브제는 화장실에 있어야 할 변기였다. 아름다운 예술을 보면서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을 작정하고 놀라게 하는 ‘선택’이었다. 당시 젊은 뒤샹은 “그림과 미술의 전통을 산산조각내 버리는 새로운 양식들에만 관심이 있었다.” ‘모나리자’ 복제품 엽서에 콧수염을 그리고 ‘L.H.O.O.Q’라고 쓴 작품 역시 기성의 예술에 대한 조롱이었다.

오브제의 등장은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의 손(솜씨)보다 머리(개념)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오브제 덕분에 모든 사물이 미술이 될 가능성을 얻었다. 작가들은 전통 회화, 조각을 넘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창작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예술가에게서 배우는 것은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넘어서는 창의적 시선이다. 이 점에서 뒤샹은 가장 비상식적이고 가장 예술적인 작가였다. 아무리 겸손하게 말해도 20세기 내내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작가는 피카소가 아니라 뒤샹이다. 피카소가 대중을 위한 작가라면 뒤샹은 작가들을 위한 작가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가 찍은 사진 속에서 뒤샹은 정면을 찍는 상투성을 거부하고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의 뒤통수에는 별이 있다. 그 별을 보고 플럭서스, 아르테 포베라,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퍼포먼스, 대지 미술, 팝 아트 등 20세기 주요 현대미술의 유성들이 뒤를 이었다.

뒤샹에 관한 책은 국내 출판시장에서는 별로 많지 않다. 그중 데이브 홉킨스, 닐 콕스, 돈 애즈 세 명의 저자가 함께 쓴 『마르셀 뒤샹』(시공아트, 2009)은 작품 설명 중심으로 기술돼 있어 무난히 읽을 수 있다.

“예술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성상 파괴주의자”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뒤샹은 유명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의 작품을 남겼다. 많은 사람이 그가 체스를 두느라 예술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해서 1964년 요셉 보이스는 ‘뒤샹의 침묵은 과대평가되었다’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남몰래 20여 년간 ‘주어진 것들’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의 사후 발표된 이 작품은 문틈 사이로 벌거벗고 누워 있는 여자의 몸이 보이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책은 이 작품과 다른 대표작인 ‘거대한 유리, 또는 독신 남자들이 발가벗긴 신부, 조차도’(1915~23)를 중심으로 뒤샹의 전체 작품을 분석하면서 ‘욕망’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자본주의는 상품에 대한 욕망을 인간의 리비도적 욕망과 결부시키면서 끊임없이 갈망을 부추기고 소비를 권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 역시 소비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고급 상품이 되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비슷한 작품을 반복하는 예술가들을 혐오했으며, 그런 작품들은 무한히 만들어지는 공산품인 변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변기의 미술관 난입 사건이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미니어처로 만든 ‘여행가방’ 시리즈를 만들어 소장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상품’처럼 판매하면서 그 과정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때때로 잊혀진 예술가로 남고 싶다”
욕망과 관련해 뒤샹은 “나의 모든 예술은 완벽한 성교에 대한 환상에서 나왔으며, 심지어는 지성적인 추구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을 야릇한 상상으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그의 욕망은 이성에 대한 성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뒤샹은 한때 로즈(Rrose Selavy)라는 여자 이름으로도 활동했는데, 그 이름은 ‘에로스, 그것은 인생(eros c’est la vie)’ 혹은 삶을 위해 축배를 들라(arouser la vie)는 프랑스어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쾌락의 본성을 인정한 ‘쾌락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상업적 이용에 반대한 ‘금욕주의자’였던 그는 어떤 사물, 가구, 가정도 갖지 않았다. 프랑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뒤샹은 아주 조금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체스를 두는 것 이외에 특별한 일이 없었던 그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갔는지도 모두 궁금해 했다.

작품 파는 일을 혐오했던 작가 뒤샹은 자본주의적인 근면과 명성 획득에 반대해 게으름의 미학, 나태할 권리를 주장한다. 후에 한 대담에서 그는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살아 있는 그림이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 숨 쉬고 움직이고 상호작용한 것”을 최고의 만족스러운 일로 뽑는다. 그냥 그의 삶이 그의 예술이었던 것이다.

예술작품을 만들지 않는 예술가인 뒤샹은 기꺼이 후세에 “때때로 잊혀진 예술가”로 남기를 자처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우리는 여전히 그에 대해 연구하고 기념하고 말하고 글 쓰고 있다. 우리가 이러는 것을 그가 갸륵하게나 생각할까? “게다가 죽는 것은 언제나 타인들이다”라는 그의 묘비명은 ‘살아 있는 너에게 죽은 나는 한낱 구경거리일 뿐이다. 네 삶을 예술로 만드는 데나 신경써라’라는 의미가 아닐까? 묘비명조차 지독하게 뒤샹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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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