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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제대로 하려면 해부학·생태학…공부할 게 천지죠”

학창 시절 전교 꼴찌를 도맡아 하던 이 남자, 지난 3년간 웬만한 대학교수도 울고 갈 방대한 지식을 열 권의 책으로 내놨다. 일식 요리사 김원일(55). 책 속에는 도마 앞에 서는 자세부터 소재 선택과 손질 및 조리 과정, 그릇에 예쁘게 담는 노하우까지 37년 요리 인생이 수십만 컷의 사진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요리의 역사와 식품 위생의 기본, 요리용어집까지 부록으로 추가해 명실공히 일본 요리의 모든 것을 망라한 백과사전적 저술이다. 2010년부터 개인 돈 10억원 이상을 들인 이 프로젝트가 이제 곧 완성된다. 최근 출간된 『일본요리 1』『일본요리 2』와 자서전 『혼이 깃든 김원일의 외곬 요리인생』에 이어 다음달 나올 『면요리 백과』가 대미를 장식한다. 공부가 싫어 요리사가 됐다는 그는 왜 이런 엄청난 책을 쓴 걸까.

노트 100권 분량 원고, 사진 50만 컷 추려 10권 책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분당의 가이세키 요리점 ‘쯔루가메’. 주방 한가운데 김씨가 직접 뜬 대형 어탁 액자의 문구가 눈길을 끈다. ‘
(말발굽 자국에 괸 물에는 큰 잉어가 없다)’. 걸출한 인재는 좁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업 중인 가게를 내놓고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문구다.

“몇 년 내로 뉴욕으로 건너가 한국 요리문화를 가르치는 조리학교를 세울 계획입니다. 우리는 한식 세계화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전혀 안 되고 있어요. 외국에서 유명하다는 한식당에 가보면 한심합니다. 김치찌개, 곰탕 이런 게 어떻게 요립니까, 그냥 밥이지. 그래서 나서려는 겁니다. 우리 요리문화를 한번 제대로 알려보려고요.”

스무 살 때 부산의 한 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김씨는 한 일본인이 선물한 요리책에서 처음으로 진짜 요리의 세계에 눈을 떠 일본 유학을 떠났다. 작은 가게를 열어 손님들에게 제대로 배운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소박한 꿈은 일본 최고의 요리학교인 아베노쓰지 조리사 전문학교를 다니면서 변해 갔다. 아베노쓰지에 못지 않은 요리학교를 세워 한국의 요리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품게 된 것.

집필과 서도를 수련하는 작업실에서 김씨가 직접 쓴 코스 메뉴를 들어보이고 있다. 모든 메뉴판을 복사하지 않고 붓으로 한 자 한 자 직접 써서 손님 앞에 내는 것도 김씨가 강조하는 요리사의 기본 중 하나다.
수년간 일본과 프랑스의 유명 식당에서 수련을 쌓고 꿈을 이루려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04년 야심차게 문을 연 조리학원은 우여곡절 끝에 4년을 못 채우고 접어야 했다. 3층짜리 건물인 쯔루가메의 1층 식당을 제외한 지하와 2, 3층엔 미련 가득한 꿈의 흔적들이 아직도 그대로다.

“93년 귀국하자마자 조리학교 마스터플랜부터 만들었죠.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문화로 승부해야 한다고 정부에 호소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내 힘으로 해야겠다 결심하고 10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죠. 그런데 학교가 아닌 학원 인가를 해주더군요. 결국 식당과 병행해야 했고, 문제가 자꾸 생겼어요. 제대로 된 요리문화를 전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는데…. 교재로 삼으려고 평생 원고를 썼으니 오기로라도 책을 낸 거죠.”

93년부터 꾸준히 책을 써왔지만, 이 10권은 요리 인생을 집대성한 방대한 기록이다. 육필로 빼곡히 기록한 대학노트 100권 분량의 원고를 입력하고 50만 컷이 넘는 사진을 선별해야 하는 작업에 나서려는 출판사가 없자 ‘도서출판 원일’까지 차렸다. 권당 1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판매도 가게에서만 하지만 예비 요리사들에게 바이블로 통하는 그의 책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부해 보니 일본 요리가 다 우리 요리예요. 백제, 가야의 지배계급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전해진 우리 요리를 일본이 잘 발전시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원통한 노릇이죠.”

그의 책들은 여느 요리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생물학적인 개요부터 시작해 다각적이고 치밀한 학문적 접근법에 문외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생선 하나도 유형별로 꼼꼼히 분류돼 있고, 50~60컷의 사진에 묘사된 부위별 해체 과정은 집요할 만큼 디테일하다.

“요리란 기본이 전부예요. 유명 맛집의 할머니 비법처럼 숨길 것도 없어요. 비법이란 기본에서 오는 거니까. 다 가르쳐 주면 어쩌느냐고들 묻는데, 남들이 내 거 배울 때 나는 또 공부를 계속해요. 1년에 세 번씩 해외에 나가 시장도 가보고 유명 식당에서 먹어보고, 남의 책도 사 보면서 그 이상으로 계속 발전해 온 겁니다.”

매년 2000만원어치씩 원서를 사들여 공부해 왔다는 그는 세상에 요리만큼 어려운 직업이 없다고 말한다. 이미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남의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쓴 사람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충해 또 다른 것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공부하기 싫어 요리를 했는데 요리가 공부를 더 시켰죠. 해부학, 생태학까지 알아야 하니까요. 사람은 백인이나 흑인이나 해부 방법이 같지만 생선은 방추형, 둥근 것, 납작한 것 가지각색이라 그 모든 것을 다루려면 해부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생태학도 공부해야 하고, 영양학까지 알아야 건강한 요리를 만들 수 있어요.”

그가 졸업한 아베노쓰지 조리사 전문학교는 미국의 CIA,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와 함께 세계 3대 조리학교로 꼽힌다. 학생 6000명, 1년 학비 4000만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학교에서 가장 엄하게 가르치는 것이 그가 강조하는 ‘기본’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지금처럼 하려면 안 하는 게 나아요. 칼 하나에도 28개의 명칭이 있는데, 교수들이 그것도 모르면서 가르치니 학생이 뭘 배웁니까. 칼 다루는 마음 자세부터 가르치지 않으면 사고가 납니다. 칼은 반드시 응징을 하니까요.”

매년 원서 2000만원어치 구입 서도·꽃꽂이도 공부
아베노쓰지에서 프랑스·이탈리아 요리를 다양하게 배웠고, 프랑스에서 수련도 쌓았으니 요즘 유행하는 창의적 퓨전 요리를 시도할 법도 하건만 그는 정통 가이세키(일본식 정찬요리)만을 고집하고 있다.

“기본을 알면 창의도 자연스러운 겁니다. 소재의 해부학, 생태학을 다 알면 얼마든지 다른 맛을 끌어낼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자기가 만들어내려 하면 그건 창의가 아니죠. 우리나라 퓨전이 잘못된 게 그거예요. 프로가 된 상태에서 재료를 갖고 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기본도 모르면서 맘대로 만들어내면 요리라 할 수 없죠. 생선 한 마리를 해체하더라도 기본을 지키면 최상의 맛을 낼 수 있고, 그게 토대가 되면 고등어 하나로도 500가지 요리가 가능한 거예요.”

‘오감쾌락’을 추구하는 가이세키 요리는 접시 위의 미적 표현이 관건이다. 요리를 담을 때도 계절감, 음양사상을 기본으로 그릇의 여백과 형태, 색감까지 고려하는 디자인 감각이 필요하다. 김씨가 서도와 어탁, 꽃꽂이를 연마하는 것도 예술적 요리의 완성을 위한 수련의 일부다. 추사 6대 제자인 장헌(章軒) 조득상에게 배운 서도는 ‘2010 한·중·일 베세토 서울전’에 출품할 정도.

“요리의 기본은 맛과 멋입니다. 음식과 요리는 구별해야죠. 음식은 그저 수북이 담아 배불리 먹는 것이고, 요리란 재료의 미를 최대한 끌어내고 그릇에 담을 때도 여백, 공간의 미까지 살려줘야죠. 그래서 요리가 종합예술인 겁니다. 접시 위에 조각, 건축, 시를 다 담으려면 꽃꽂이도 하고 갤러리도 드나들면서 미적 감각을 길러야 해요. 서도는 정신수양입니다. 글 한 자를 쓰기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먹을 가는 인내를 배우는 거죠. 그런 수양은 요리에서도 기본입니다. 무조건 칼을 들고 주방에 서는 게 아니라 요리사로서 됨됨이부터 갖춰야 하고, 학교는 그런 것부터 가르쳐야 해요.”

그는 진정한 요리 발전을 위해서는 풍류와 문화가 함께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대로 된 접대문화가 있어야 해요. 우리는 기생문화가 없어지고 고약한 룸살롱 문화가 생겨 나라를 망쳤어요. 일본 게이샤들을 보세요. 노래도 하고 악기도 다루는 예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게 게이샤 문화예요. 개인적으론 기생문화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리 문화엔 풍류가 따라줘야 해요. 요리는 그냥 음식이 아니니까요. 외국인들도 요리에 깃든 문화에 매료되는 겁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도서출판 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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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